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 Aug 02. 2023

DAY9. 꽃  

Written by. ED

DAY9. 꽃


 내가 봉오리와 지는 꽃, 떨어진 꽃잎마저 아름답다고 했더니, 그녀는 활짝 핀 꽃이 제일 아름답다고 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얼굴은 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시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생에 어디쯤 와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뭉뚱그려 좋다고 하는 것을, 그녀는 정확하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이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자 마음의 안정과 충만함을 느끼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겠지. 활짝 피어있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나의 시간은 거꾸로 갈 수도 있고 제 멋대로 갈 수도 있다. 나는 애초부터 떨어져 있는 꽃잎, 죽어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피어나지 못한 봉오리이기도 하고, 활짝 피어있기도 하고, 시들어가기도 한다. 모든 시간대에 내가 있다. 성장하는 시기가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땅 속에 묻혀 있는 씨앗일 수도 있고, 씨앗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으므로,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뒤를 돌아보면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로 제멋대로 살아왔다. 꽃이라면, 꽃잎을 피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생 전체를 바쳤을지도 모르겠다. 살아남기만 하면 되니까. 살아남기만 하면. 온몸이 멀쩡한 채로 살아남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내가 어떻게 생겼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옆에 있는 꽃이 크든, 작든, 꽃잎이 몇 개이든, 색깔이 아름답든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지.

 어린 시절의 절반을 그렇게 살았다.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본능과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남기 위한 이성사이에 발을 걸치고 그렇게 살았다. 어두워지면 끝없이 어두워쳐 추락할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추락해 아주 깊은 심연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엎드려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울거나 누워있거나, 그런 시간들로 절반의 삶을 보냈다. 보이지 않는 머릿속 공간에서 끝없이 추락하고 떨어지면서 죽어있는 나를 상상하며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꽃을 피우는 나를 상상하며 현실에 주어진 일에 어떻게든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하며 나를 속이지 않으려 애썼다. 요행을 바라지 않았고 힘든 일도 가리지 않고 했다. 마음이 바뀌면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지도 모르니까 후회할 일을 되도록이면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열심히 살았다. 끝이 보이는 삶은 누구에게나 예정되어 있으니 그것이 나의 희망이자 두려움이었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닥칠 마지막을 상상하는 일이, 그 소용돌이 안에 있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고 견디고 싶지 않아서 죽음이 다가온다면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또 다른 내가 다시 돌아와 침식하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많은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여태까지 잘 이겨냈다며 모른 척하면서 시치미를 뗐지만, 한꺼번에 오는 일들에 대한 면역력이나 대처방법이 현저히 부족했다. 아직도, 멀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피거나 지거나 상관없이 남아있는 삶을 살아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DAY9. 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