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DKS
불안하다 내 삶이, 불안하다 내 모든 것들이, 내 한 생 그냥 바람처럼 살다가 철없는 이슬처럼 말라버리려 했으나 세상은 날 그냥 두질 않는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거의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바다를 생각한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나 생각은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바다 언저리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생각을 하면, 내 속의 격랑이 차분한 물결처럼 가라앉는다. 아직은 짧은 범위의 생각들 정리 안 된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르지만, 늦은 밤 잠자리에 들면 꿈속을 휘젓고 다니는 망령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강제로 내 손을 부여잡고 과거로, 과거로 미친 듯이 날 끌고 내 달리는 수많은 죽음이 밤마다 떠올라 날 불안하게 만든다.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외할머니는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내 곁에 남아있지 않고 전부 세상을 등졌다. 쉰아홉에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예순일곱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여든셋에 조용히 눈 감으신 외할머니 그들은 내 곁에 없다. 다만 원망과 그리움만 남겨놓았을 뿐이다. 다섯 명의 자식을 낳고 그 생때같은 자식들을 세상에 놔둔 채로 훌훌 이승을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 생전엔 사업 핑계로 다른 여자 만나서 딴살림 차리신 아버지, 첫딸은 첫돌 되기 전에 잃어버리고 자식 넷만 살아서 삶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다른 여자 만나서 새살림 차리고 집을 나갔고, 내 밑에 남동생을 낳고 신경쇠약으로 듣지 못하게 된 어머니는 홀로 남아서 어린 자식들 데리고 생명줄 위에 위태롭게 올랐다. 생명줄 위에서 뒤뚱거리며 혹여 새끼를 놓칠까 봐 양손에 새끼 넷을 힘껏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셨을 테고, 핑계 아닌 핑계로 처자식을 저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미웠을 거다. 외할머니는 외할머니대로 방방 뜨다가, 눈알만 멀뚱멀뚱 굴리고 있는 네놈의 새끼들을 쳐다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밉기도 해서 외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딸과 손주들인데 버릴 순 없고 앞으로 데리고 살 생각에 무척 힘드셨을 것이다. 다른 년 손잡고 도망치면서 다짐 아닌 다짐을 해놓고, 앞으로 돈 많이 벌어서 처자식 잘 먹이고, 잘 가르치고, 잘 살아 보겠다고 한 사위 놈이 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을 것이다. 정말로 불쌍한 우리 어머니는 삼십 대 후반에 아버지랑 헤어져서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셨다. 나는 지금도 우리 넷을(이남이녀) 버리고 떠난 아버질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불안하다. 그때 내 나이는 겨우 아홉 살 초등학교 이 학년이었다. 어리니까 떠나는 아버질 그냥 바라만 봤고, 울고불고하시며 이 세상 마지막처럼 발악하시는 어머니도 그냥 바라만 봤고, 외할머니는, 처자식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다고,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도망가는 사위를 놈을 보며 황당해하시고,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안절부절못하시는 모습도 그냥 바라만 볼 수밖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아버지를 붙잡고 떠나지 못하게 애원이라도 해봤을 텐데 하는 생각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 나이 벌써 육십을 넘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나이보다 사 년을 더 살았다. 내게도 아내와 딸, 아들이 있다.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이런 생각들은 삶의 초반 환경에서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했듯이 내 자식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아무 생각 없이 나만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한번 버림받은 적이 있는 난, 절대적으로 처자식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한 가지 강박 때문에 많은 상처를 아내와 자식에게 입혔다. 그랬던 나의 행동들이 지금은 어슴푸레하게나마 느껴진다. 그러나 난 아직도 다 깨닫지 못하고 나만의 불안감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오로지 자식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자식들이 나처럼 되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이제라도 좀 더 생각을 집중해서 나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어디부터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스스로 되물어 보자. 안 그래도 되는데, 왜 불안에 떨었는지, 단지 어릴 적 충격 때문에 지금까지 이유 없이 나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강박과 불안 속에 살아와서 그러한 것들을 자식들에게 유전시켰는지, 잘 살아 보겠다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겠다고 불안에 떨며 초조하게 살아온 내 삶의 반성문을 써본다. 이제 나도 인생의 황혼기로 점점 다가서는 과정인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자식들을 믿고 나만의 불안감을 감소시키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태껏 구태의연하게 살아온 내 삶을 깊이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