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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Sep 07. 2020

가장자리에서

삶의 지나온 날들을 기억하며

주말 동안 한지민, 김혜자 주연의 [눈이 부시게]를 보았다. 드라마 끝 무렵에 주인공인 김혜자의 나레이션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중에서


그러다 문득 작년 이맘쯤 온라인 독서모임 함연에서 읽었던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가 생각이 나서 책을 뒤적였다. 파머의 글은 작년 독서모임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여 즐겁게 읽었고 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책이다. 나이가 지긋한 작가가 삶을 되돌아보며 끝에서 지나온 날들의 것들을 마치 풍경을 보여 주 듯이 읊어주는 책이었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환상이 깨져 자신과 세상에 대해 더 알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으려 한다. 삶은 내게 뭔가를 줄 것이라고 언제나 기대할 만하다. 오늘 그것이 무엇일지 누가 알겠는가? (...)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다른 쪽에서 희망적인 현실이 드러날 때까지 나의 길로 정진할 것이다. 후회는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 비판은 우리 일의 초점을 다시 잡고 결심을 다지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힘쓰지 못한다고 확신할 때, 그때가 우리 영혼을 누군가에게, 어딘가에서 드러낼 시간이다. 또한 그것은 재앙에 의한 명상가가 되어 얻을 수 있는 결실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삶은 마치 꿈같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나온 과거들은 어디를 지나쳐 왔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떠한 일들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오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학교 다닐 때는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했었으나 그것도 지루하다 칭얼거리며 도망치려 했고 겨우 어른이 되어서는 도무지 변화가 없는 일상에 지치고 찌들어간다. 내가 지금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다면 나는 어디쯤에 다다랐을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가 꿈꿔왔던 미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수 있으며 계획한 것들이 마음먹은 만큼 잘 실행이 되지 않아 실망하는 일도 많다. 현실에 지쳐 적당히 합리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는 길이 험난하고 고될 지라도 파커 J. 파머는 희망적인 현실이 나올 때까지 나의 길을 묵묵히 걷기를 다독여 준다.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 하지만 우리는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다. 우리의 삶이 찬란하게 빛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추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눴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공유할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 없다면 추억은 그것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은 더더욱 한순간의 꿈과 같고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더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처음에는 타임리프를 소재의 판타지 드라마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주인공이 긴 잠에서 깨어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지나 온 생이 참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찰나의 순간 마지막에 내가 붙들고 행복이라 이름 붙일 만한 기억은 어떤 장면일까? 삶의 가장자리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배경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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