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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Sep 08. 2020

감각으로 느끼는 세상

당연한 것들의 감사함

모처럼 비가 그치고 향긋한 가을바람이 창가로 불어 들어온다. 나는 오늘 어느 문장을 낚아 올릴까 뒤져보다가 최근에 만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에서 한 문장을 낚았다. 


앞쪽에 목적지인 모래곶이 있다. 모래곶과 우리 사이엔 나눔의 표시가 될 만한 게 하나도 없고 드넓은 바다의 나른한 철썩거림만이, 그 풍부함과 반짝임만이 존재한다. 우리, 바닷세계의 시민들은 그 위를 자유로이 거닌다. 땅에서 발로 돌을 밟고, 손으로 대문을 열고, 정원의 자갈 깔린 길을 지나고, 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지고, 들판의 진창을 걷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땅에서는 엄청난 무게가 우리의 어깨를 찍어 누른다. 중력이 우리를 집에 머물게 한다. 하지만 물에서는 무게를 벗어던지고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우리는 하나뿐인 흰 날개에 바람을 가득 안은 날씬한 바닷새의 승객들이다.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발 끝에 느껴지는 돌을 밟는 느낌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대문의 느낌 모래 속으로 수욱 들어가는 발의 느낌.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계절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었고 바깥세상의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움에 사무치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는 유난히 가을 햇살이 맑고 따스하게 느껴지며 살랑이는 바람에 가을 냄새가 흠뻑 묻어져 있다. 뉴스에서는 아직도 답답한 소식이 들려오지만 뉴스를 끄고 창밖을 바라보면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늘과 나무를 마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지만 나무와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삶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어 보인다.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비추는 빛이 달라져 마치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더위에 지쳐 수업을 듣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바로 옆에 있던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이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어떤 수업이었는지 내 옆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창밖에 나뭇잎들이 반짝 거리며 움직이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무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오늘따라 생생하게 마주했던 자연의 당연한 것들이 그립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자연도 시시때때로 그 얼굴을 달리하여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그립다. 작년 이맘쯤엔 날씨가 선선하여 아이가 유치원 하원을 하고 오면 바로 놀이터로 가서 한두 시간 놀고 집으로 들어왔다. 깨끗이 씻고 저녁을 준비하면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고 세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코로나 이후 아이는 크게 동요하지 않아 보였는데 간혹 "코로나가 어서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먹먹하다.  


올해는 계획한 모든 것들이 무너져 버렸다. 그렇다고 삶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계획한 것들이 틀어졌을 뿐이지 모든 것이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다. 적어도 자연만큼은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한 번 더 믿고 계획해 볼만 하다. 다만 우리가 이전에 품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것들을 품어야 할 것 같다. 


배경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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