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책이 만나는 곳
나의 책, 마지막 장(章)이 끝났다.
한 사람의 인생이 장편 소설이라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의 상황이었다.
책을 닫으면, 나의 삶도 이제 끝이 난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내가 가진 모든 것, 그리고 기억까지 모두 깨끗이 사라지는 드라마틱한 설정의 꿈이었다.
삶이 끝난다고 하면 지난날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클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련이 남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였고, 방을 하나씩 돌며 손에 닿는 것을 살피고 마음을 정리했다.
모든 방을 돌아본 뒤,
‘이제 다음 책으로 넘어가도 되겠구나.’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서재 앞을 지날 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다음 책으로 가게 되면,
이 서재와 책들과 얽힌 기억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책은 지극히 평범한 책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모아 왔고,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면 울기도 웃기도 하며 시간을 쌓아 왔다.
삶이 끝나 가는 순간 나는 서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좌절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비록 꿈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그 감정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가슴이 미어지고 고통스러웠다.
이 서재를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한 아픔이라고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정말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왜 서재 앞에서 그렇게 울었는지 곱씹어 보았다.
서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의 공간은 서재라 부를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의 책장일 뿐이다.
결혼 후, 작은 방 하나에 책장과 책상을 두고 나는 그 방을 서재라 불렀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 공간은 나의 로망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책장이 점점 늘어나 지금은 일반 책장 4개와 전면 책장 1개가 서재를 채우고 있다.
서재 안에 있는 책은 오로지 내 취향의 책들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아이 방에 따로 두었는데, 아직은 내 책이 더 많다.
젊은 시절부터 그림책이나 아동 및 청소년 문학 등도 좋아했기에, 아이가 종종 내 책장에서 재미있는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아이 방에 있는 책장은 주로 아이 취향의 만화책 또는 줄글 책이 꽂혀 있다.
아이가 한 명 이기에 남는 방 하나는 공부방으로 꾸밀 수도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늘 개인 공간을 소중히 여겼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서재를 포기한 적이 없었고, 방이 모자랐을 시절에도 책상과 책장을 꼭 사수했다.
우리 집에서 서재가 내 공간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이전에는 남편과 내가 함께 쓰던 공간이었고,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의 책과 내 책을 함께 보관했었다.
지금은 내 책장과 책상이 있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서재는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루 중 오랜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생각하고 사유하는 나만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이곳에 시간을 보낼 때면 세상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온전한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소설책보다는 만화책을 더 좋아했다.
주변에 친구나 어른들 중에서도 책을 즐기는 이는 거의 없었고,
“이 책은 네가 읽기 좋을 것 같아.”라고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읽는 것 자체를 즐겼기에, 스토리가 촘촘한 만화책을 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고등학교 때는 내 취향의 만화책을 찾아 서점에 가는 일을 즐겼고,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한 시기는 20대 초반 무렵이었다.
좋아하는 장르와 작가가 생기면서 나만의 독서 취향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비좁은 책장에서 만화책을 치우고, 일본 소설을 하나둘 모았다.
시간이 나면 자연스럽게 서점을 향했고, 도착하면 좋아하는 작가의 책장을 먼저 확인했다.
그 시절 차곡차곡 모았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지금도 내 책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소설은 모두 읽었고 재독도 했지만,
결혼 후 구매했던 그녀의 소설 중에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더러 있다.
책등만 봐도 그 시절의 내가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녀가 만들어 놓은 소설 세계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아이를 낳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했을 무렵, 글쓰기 책이나 시나리오 작법서, 육아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시절, 시간이 나는 대로 읽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뒤에는 글쓰기 모임과 독서 모임 등을 찾아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의 독서 취향이 견고해질수록 책장의 책은 점점 가득 차기 시작했다.
더 이상 책을 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점에 가면 오늘은 무슨 책을 살까 고민하고, 이미 서점 앱에는 책이 가득하다.
아니, 이걸로 뭐 대단한 걸 할 것도 아니고…
난 그저 읽기만 할 뿐인데…
왜 이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꿈에서까지 서재를 놓지 못하고 펑펑 울었던 걸까?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읽었든 읽지 않았든,
그 순간의 내가 붙잡고 싶었던 삶의 단서들이다.
아이를 낳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했을 무렵, 글쓰기 책이나 시나리오 작법서, 육아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시절, 시간이 나는 대로 읽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뒤에는 글쓰기 모임과 독서 모임 등을 찾아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의 독서 취향이 견고해질수록 책장의 책은 점점 가득 차기 시작했다.
더 이상 책을 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점에 가면 오늘은 무슨 책을 살까 고민하고, 이미 서점 앱에는 책이 가득하다.
아니, 이걸로 뭐 대단한 걸 할 것도 아니고…
난 그저 읽기만 할 뿐인데…
왜 이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꿈에서까지 서재를 놓지 못하고 펑펑 울었던 걸까?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읽었든 읽지 않았든,
그 순간의 내가 붙잡고 싶었던 삶의 단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