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를 벗어나 만난 진짜 내 모습
간혹 생생하고 현실감 넘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애써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 마치 오래 우려진 차 한잔 같다.
오래 우려진 차라고 해서 늘 맛있지는 않듯,
여운이 진한 꿈은 한 동안 내 마음에 남아 이런저런 잡념을 불러오기도 한다.
최근에 꾼 꿈 역시 진했던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시작은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었다.
지하를 통해 목적지에 쉽게 이동하려고 했지만, 어느 출구로 나갈지 몰라서 한동안 헤맸다.
아무래도 지하라 지상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우왕좌왕하며 걷던 중, 나는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출구 쪽으로 따라 올라갔다.
지하에서 걸을 때는 분명 우리 아파트 주차장이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다른 아파트 단지여서 꽤 당황했다.
사방팔방이 높은 아파트 건물로 둘러싸여 있었고,
건물이 마치 내게 쏟아질 듯 기울어져 보였다.
음침했고 서늘한 느낌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주위를 살피고 있으니 내 뒤에 오던 아기 엄마가 이곳이 어디인지,
출구가 왜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이미 저 앞으로 지나갔고,
그녀는 대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내 옆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불편해 그녀가 먼저 떠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움직일 마음이 없어 보였고, 참다못해 내가 먼저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주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내 걸음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쇼핑몰 같은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공간은 높은 고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이건 꿈이니까!’하는 자신감도 생겨
달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내가 달리는 길 왼편에는 상점 또는 룸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창문이 없는 난간만 있었다.
난간 너머로는 중국 관광지에서 볼 법한 높은 산들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마치 새처럼 난간 안쪽 안전한 곳에서 달리다가
가속도가 붙어 난간을 붙잡고 그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난간을 잘 붙잡고 있어 떨어지진 않았고
다시 안전한 안쪽 복도로 돌아오곤 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문득 ‘나는 수영을 할 거야!’ 하는 마음속 소리가 들렸다.
달리던 중 빨려 들어가듯 어떤 룸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수영장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룸 안으로 들어갈 때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허들을 뛰어넘듯 바로 수영장으로 빠진 느낌이었다.
현실의 나는 수영을 배운 적이 없어서,
물놀이를 가도 물속에서 걷다가 올뿐, 단 한 번도 수영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꿈속의 나는 수영장 레일을 따라 물개처럼 날렵하게 헤엄쳤다.
수영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 느낌이 묘했다.
한 번도 수영한 경험이 없으니
아마도 상상 속의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물 밖에서 허우적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헤엄을 치는 순간, 수영장 물은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났고, 그 감정이 매우 좋았다.
수영을 충분히 즐긴 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몸에 착 붙는 수영복을 입으면
더 빠르고 신나게 수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속에 앉아서 수영복에 대해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참견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는데,
꿈을 꿀 때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깨고 보니 남편이었던 것 같다.
평소 그의 모습과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수영복은 비키니였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위아래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어떤 참견을 듣고는
갑자기 내 뱃살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 아무래도 비키니는 힘들겠다.’
다시 생각하니 아래는 회색 운동복 바지로 바뀌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이 독특해 보였다.
물속에 있는 나는 아래는 운동복 바지를,
위에는 비키니 상의를 입고 있었다.
운동복 바지 때문에 수영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내 꼴이 너무 우습다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오가는 와중에도
오동통하게 나온 내 뱃살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바지를 입었다고 해서 감춰지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