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 속, 물과 함께 생생했던 꿈의 기억
남편의 늦은 여름휴가를 맞아 아이와 함께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1년에 한 번쯤은 제주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은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 해외 휴양지도 알아봤지만,
체력과 시간, 비용을 따지다 보면 결국 국내이면서 비행기 타고 기분을 낼 수 있는 제주를 선택하게 되었다.
여름 끝물이고 9월 제주에는 계속되는 비 소식이 있었다.
남편은 여행을 가면 날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왕이면 맑고 좋은 날을 선호하며, 비가 오거나 하늘이 흐리면 기분이 축 처지는 것 같다. 이러한 영향으로 9월 초로 계획했던 여행은 일정을 미뤄 중순에야 다녀올 수 있었다.
출발하기 직전까지 흐린 하늘과 비 예보가 신경 쓰였다.
거기에 바닷가 근처 숙소에 머무는 내내, 나는 물과 관련된 꿈을 많이 꿨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꿈은 여행 마지막 날 밤에 꾼 대홍수 꿈이었다.
꿈의 시작은 전철 안 배경이었다.
전철을 타고 어딘가 가고 있었는데, 내 시야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전철 안에 있는 나였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은 전철의 움직임, 선로 등이 뚜렷이 보였다.
이 두 시점은 내 앞에 번갈아 가면서 보여서 시간 흐름이 정신없었다.
전철에는 나 혼자 탄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단체 사람들과 함께 탔었다.
나는 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선로 갈림길에 다다른 전철은 잠시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는 곧 뒤집히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서 다른 칸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안간힘을 쓴다고 한 들 옮겨 가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다.
지나가려고 하는 연결 통로는 심하게 흔들려 제대로 서있기조차 어려웠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틈 사이 빠져서 밖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전철 칸과 칸을 이어 주는 통로는 매우 불안정해 보였는데,
심지어 그 넘어 다른 칸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별 수 없이 원래 있던 칸으로 되돌아왔다.
전철이었던 꿈 배경은 어느새 바뀌어 집에 와있었다.
내 옆에는 내가 주어온 ‘애완 비둘기’가 있었다.
꿈에서 설정은 내가 주어온 비둘기였지만
현실의 나는 비둘기를 비롯한 모든 새를 싫어한다.
단순히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는 것에 가깝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데 비둘기는 나를 무서워 하기는커녕 내 옆에 계속 머물며 따랐다.
비둘기는 싫지만 동물이라 측은한 마음이 들어 먹이를 주고 보살펴 주었다.
“앵무새였다면 더 좋았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나는 새가 싫다!”라는 결론을 이르렀다.
비둘기는 도무지 정이 들지 않는다.
한참 비둘기 때문에 고생하던 중 서재 창밖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26층인 우리 집 창문 절반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물이 넘실대는 모습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마치 제주도 바닷가의 높은 파도 같았다.
창밖의 물은 홍수가 난 것치곤 유난히 맑고 파랬다.
바람이 거세질 때마다 파란 물결이 일렁이며, 마치 부서질 듯 창문에 세차게 부딪혔다.
파도가 우리 집을 집어삼킬까 두려움에 떨었다.
계속해서 물살이 유리창을 내리 친다면 창문이 터지고,
우리 가족이 있는 이곳은 물바다가 되어 모두 휩쓸려 갈 것이다.
거실로 나가봤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거실은 이중창 중에서 바깥 창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물이 밀려 들어오고 있어 더 무서웠다.
맞은편 동은 완전히 잠겨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꿈은 여행 중 호텔 주변을 산책할 때 높은 파도를 보면서 아름답기도 하면서 동시에 무섭기도 한 내 감정과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부모님 방으로 갔다.
꿈의 배경은 분명 결혼 후 우리 집이었지만
뒤쪽에는 부모님의 방이 있었고,
그 방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 살던 안방 분위기와 매우 닮아 있었다.
부모님 방도 밖에 물이 차오른 모습이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아빠를 깨우고 홍수가 나서 모두 대피해야 한다고 알렸다.
그때 밖에서 옥상으로 대피하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서 옥상으로 올라가서 구조 헬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누군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 헬기를 기다리는데,
모두 탈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이 말은 내 마음속 생각이기도 했다.
26층까지 물이 차올랐으니 늦은 건 맞지만 그럼에도 대피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잠깐, 대피하고자 했던 순간에 싫어하던 비둘기는 그냥 두고 갈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죄책감도 함께 따랐다.
아무래도 비둘기까지 거두기엔 마음이 후하지 않은 것 같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너무 생생했기에 씻고 나와 기록했다.
원래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커피를 마시고 잠깐 일기를 쓸 때 조금 쏟아지고, 이후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여행 내내 날씨 걱정을 한 것치곤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고,
비 때문에 고생하는 일도 없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제주에 있는 로또 판매점에 가서 남편과 함께 로또 복권을 샀다.
보통은 복권을 그냥 주시지만 복권 크기에 맞는 봉투에 예쁘게 담아 주셨다.
날씨가 화창했고, 꿈도 복권 구매의 경험도 좋았다.
비록 당첨의 기회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