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범받는 나의 공간/ 불안과 안정 사이
나는 보통 오전 12시에서부터 오전 5시까지 깊은 잠을 자고 꿈을 꾼다.
나에게 있어 깊은 잠이란 꿈을 꿀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을 말한다.
꿈을 많이 꾸는 사람들은 잠을 깊이 잘 수 없다고 하니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나는 꿈을 꾸지 않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니 내게는 오히려 꿈을 꿔야
“아! 오늘은 잠을 잘 잤구나.” 하고 느낀다.
최근 다양한 꿈을 기록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꿈을 꿀 때마다 더 선명하고 자극적인 꿈을 꾸는 듯하다.
대체로 꿈의 배경은 우리 집이거나 학교가 나오는데,
얼마 전 주말에 꾼 꿈은 집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상황이 펼쳐졌다.
아빠와 함께 걷다가 낯선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집의 구조와 효율성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 중이었는데,
아빠나 내가 집의 모양에 대해 말하면서
그 말에 따라 우리가 있는 공간이 시시각각 변했다.
“천장이 높은 건 조금 별로지 않아?”
하면 실제로 집의 천장이 높아졌고,
“조명은 부드러운 주황색이 좋지!”
하면 아늑한 조명이 켜졌다.
이런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남편과 나의 주된 대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생활하는 공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집,
또는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낯선 집에 함께 들어온 이가
아빠인지, 남편인지 살짝 헷갈렸다.
한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때,
집 안으로 누군가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나가려고 했는데,
사람을 피하다 보니 오히려 더 집안 깊숙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낯선 집’이라는 설정은 ‘우리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실 창에서 밖을 바라보니
건너편에는 다른 동 건물이 아니라 절벽이 보였다.
절벽 위에는 굉장히 커다란 덤프트럭이 있었고,
그 트럭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위로 올려다보니 절벽은 너무 가까이에 있고
덤프트럭은 떨어질 것만 같고 나의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꿈에서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면
‘어… 이런 상황이 펼쳐질 것 같아!’라는 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
나는 그 덤프트럭이 절벽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곧
트럭은 우리 집 거실 창을 덮칠 듯한 기세로 떨어졌다.
다행히 거실 창으로 부딪히지 않고 아래로 떨어졌고,
안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트럭에서 튕겨져 나와
우리 집 창 난간에 매달렸다.
나는 안심하며 재빨리 창문을 열어 운전자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본건 운전자가 아니라 운전자의 헬멧이었다.
사람은 없고 헬멧이 놓여 있으니 얼마나 놀랐지 모르겠다.
기겁을 하며 남편에게
“사람이 아래로 떨어진 것 같아!”라고 말하자마자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한 남자가
거실 창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절벽에서 떨어진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지가 멀쩡했고, 피를 흘리긴 했지만 그는 성큼성큼 잘 움직였다.
분명 덤프트럭 운전자였는데,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처럼 헬멧과 옷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남편의 부축을 받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피가 흥건한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남편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꿈의 배경은 여전히 집 안이지만,
거실이 아닌 작은 방으로 옮겨졌다.
중형견 크기의 큰 새들이
작은 창 앞에 여럿 모여 있었다.
흰색에 샛노란 부리를 가진 새였는데,
아무리 외형이 귀여워도 새는 새이다. 나는 새를 혐오한다.
최근 내가 혐오하는 새가 내가 있는 공간에 침범하는 꿈을 종종 꾸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는 새가
닫혀있는 창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와서 날개를 펄럭거렸다.
나는 최대한 빨리 집에서 내쫓으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들어왔던 새가 밖으로 나가니
다른 한 마리가 다시 들어오려고
애를 쓰다가 이중창 사이에 끼어버렸다.
그 새는 오도 가도 못하고 창틈에서 버둥거렸다.
그렇다고 문을 열어 줄 수는 없었다.
싫어하는 새가 또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창문을 ‘탕탕’ 쳐내서
새가 멀리로 날아가 버리길 바랐다.
그리고, 집 안의 에피소드는 끝이 났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4년 정도 되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다.
이곳에서 생활과 루틴은 이제 안정적이며, 나는 이 안정감을 잃고 싶지 않다.
요즘 남편과 이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정적인 공간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싶은 내 마음과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함에 불안이 공존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은 늘 불안을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