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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Sep 14. 2020

학종이 접기의 추억

학종이 접어 보셨나요?

얼마 전부터 아이는 색종이로 무언가 접고 싶다고 두 장씩 들고 와 함께 하자 했다. 올해 초 아이와 함께 종이접기를 하기 위해서 색종이를 많이 사두었는데 생각보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방치되어 있었는데 유튜브에 색종이 접기 관련 콘텐츠를 보더니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내가 초중학교 때는 한창 학 접기나 별 접기가 유행이었고 이제 막 이성에 눈뜬 아이들은 상대 이성에게 고백하기 위해서 학 천마리 별 천 개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접어서 유리병에 고이 담아 포장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간이 많아서 학을 천마리 씩이나 접었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기 위해서 절실해졌던 걸까 생각이 든다. 최근 로맨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이제 이런 것만 봐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호기심이 많고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중학생 또래 여자 이이들은 일곱 여덟 명이 모였다 하면 관심이 가는 남자아이들 이야기를 했었고 누구든 가슴에 품고 있는 짝사랑 상대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신기하게도 평소에는 별생각 없었던 남자아이를 친구들 앞에서 짝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몇 번 하다 보면 내가 정말 그 아이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게 정말 사랑이었는지 그냥 단순한 이성 호기심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시절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짝사랑 상대가 당연히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더러는 아이돌을 좋아하듯 한 명의 남자아이를 여러 명이서 짝사랑하기도 했었고 지극히 평범한 아이를 짝사랑하는 나 같은 아이도 있었다. 내가 짝사랑을 하던 아이는 초등학생 때 만해도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는데 중학교로 진학하고 남녀 반이 갈라 저서 대면 대면하던 사이었다. 

짝사랑을 하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아이들은 차츰 상대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친구들처럼 '고백을 해야지!'하고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학을 접었다. 초등학생 때는 반 뒤에서 친구들과 모여 학종이 따먹기 같은 시답지 않은 놀이를 했었는데 고작 1년이 지나 중학생이 되자 짝사랑하는 친구를 생각하며 학을 천마리를 하나하나 접기 시작했다. 


학종이 천마리는 다 접어 책상 아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놓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모여 한껏 단장을 한 뒤 명동에 다녀왔다. 사실 그날 엄마는 성적이 안 좋게 나왔으니 집에 있으라 하셨는데 오전 일찍 엄마가 아버지 가게로 나가시는 것을 보곤 금세 채비를 해서 친구들과 놀러 다녀온 것이다.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나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 계셨고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간 딸을 보곤 화가 많이 나있으셨다. 왜 인지 모르겠는데 화가 난 엄마는 내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하셨고 고이 접은 학 천마리는 들키고 만 것이다. 나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엄마에게 드리기 위해 접었다고 말씀드렸고 살짝 감동을 받으신 듯했다. 위기는 모면했으나 나의 '짝사랑'상대에게는 고백하지 못했다. 아마 또 학을 천마리 접을 엄두는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 아이가 함께 접자고 들고 온 색종이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언젠가는 내 아이도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서 그런 정성을 들일까? 요즘도 아이들은 고백을 하기 위해서 학이나 별을 천 개씩이나 접을까? 나는 그때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학을 접고 별을 접었을까? 아이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별별 생각이 퐁퐁 튀어 오르는 건 아마 가을바람 탓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유독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성이 넘쳐나 옛 생각이 떠오른다. 


배경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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