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고래작가 Sep 26. 2020

어쩌면 나의 전생

너의 현재와 나의 지난날 

아이를 낳고 오랜 시간 육아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내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하는 삶을 살다 보면 아이를 낳기 전 일상은 전생같이 느껴집니다. 


어제는 유독 어린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마도 지금은 아이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내가 저 나이 때는 그랬지~' 아이를 보고 있으면 '라떼는~'이 저절로 나오는 감성이 쑥쑥 올라오는데 진짜 그 일이 전생에 있었던 일처럼 아득하다. 내가 말하는 라떼는'엄마가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힘들게 했는데 너는 복 받은 줄 알아라'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 나도 아이와 같은 시절을 보내던 때가 있었지... 있었나? 있긴 했나? 전생이었나?' 그런 느낌이랄까?

최근 아이는 천문학에 관심을 많이 두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관련 영어 영상도 보고 한글 영상도 본다. 거기에 내가 서포터즈 신청해 놓은 관련 책들을 받아서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나 때는 자료와 정보가 넘쳐나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생긴 (엄마가 사준 것인지 어디서 물려받았을지 모르는) 행성들 이야기가 나와 있는 과학 책 한 권을 주야장천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있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로망이 있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마 아이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이 든다. 


지금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때가 정말 전생같이 느껴진다 아득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정말 있었던 시절 인가? 누구와 그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건 부모님도 잘 모르는 나만의 어린 시절 감성이다.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추억들은 마치 전생같이 느껴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만 알고 있는 지난날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뿐만 아니라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 시절 모두 내 곁에는 추억을 같이 공유할 만한 인물들이 남아있지 않다.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그 시절을 어렴풋이 복기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금은 딱히 없다. 

출산을 하고 아이와 남편과 복닥복닥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나는 지난날의 인연들과 마주 않아 추억을 나눌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배경 이미지 출처 : https://www.pexels.com/

작가의 이전글 불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