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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Nov 01. 2020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아직 사랑하는 B에게 

사랑하는 B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네요. 예전에는 편지도 꽤 자주 썼던 것 같았는데 점점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줄어드나 봐요. 최근 독서모임에서 아주 달달하지만 현실적인 로맨스 소설을 읽어 우리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오만과 편견]은 젊은 남녀가 밀고 당기는 로맨스 서사가 있는 소설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서사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이에요. 베넷 가문 다섯 딸의 결혼 성공기를 다룬 소설이 아닌가도 생각하지만 다섯 명의 딸 성격에 맞는 연애와 결혼 그 사이 사람들의 성격을 면밀히 보여주고 있어서 꽤 흥미로운 소설인 것 같아요. 

소설의 중심은 베넷 가족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베넷 부인이 다섯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사교계에 목숨을 걸고 발을 들여놓고 딸들을 소개하려는 모습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을 느꼈어요. 다섯 딸을 둔 베넷 부인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네요. 아마 내가 일찍 결혼했으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면 엄마의 잔소리에 내 귀가 남아나지 않았을 걸 생각하면....


베넷 집안에는 제인, 엘리자베스, 메리, 키티, 리디아 이렇게 다섯 딸이 있는데 주인공인 둘째 엘리자베스를 주축으로 딸들의 사랑관이나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드러나요. 이런 대화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에 존재했을 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한 소설의 재미인 것 같아요. 


나는 우리가 별 위기 없이 흘러가듯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을 해서 그런지 위기가 있는 연애담이 가장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런 위기가 찾아오고 비로소 사랑이 이루어질 때 소설의 긴장미가 넘쳐나고 더 극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첫 만남은 운명적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반대이죠 엘리자베스는 오만하고 겸손하지 못한 다아시를 경멸하기까지 했었요.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위치 때문이기도 하며 신중한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하군. 그렇지만 내 구미가 동할 만큼 예쁘지는 않아. 그리고 난 지금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들을 우쭐하게 해 줄 기분이 아니네. 자넨 돌아가서 파트너의 미소나 즐기라고. 괜히 나하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

빙리 씨는 그의 충고를 따랐다. 다아시 씨는 다른 쪽으로 가버렸고, 엘리자베스는 그에 대해서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첫 만남 때문인지 둘의 만남은 계속해서 운명처럼 만나지는 것 같지만 그때마다 삐걱거리고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운명이 비껴가고 말아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고 말아요. 옛 기억을 되짚어 보면 우리도 첫눈에 반한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서로에게 큰 호감이 없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겨우 이어지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첫 만남 때 서로에게 전혀 운명이라는 걸 느끼지도 못했었는데 이렇게 결혼까지 한걸 보면 아직까지도 신기해요. 아마 엘리자베스도 훗날 자신이 다아시와 인연을 맺게 될 거란 것을 첫 만남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죠.  


[오만과 편견]에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서로의 신분 격차 혹은 집안의 치욕스러운 사건 때문에 엘리자베스와 다이시의 사랑은 때때로 장애물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하지만 그런 사건들 덕분에 엘리자베스를 향한 다아시의 마음은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의 경우 결혼하기까지 큰 위기 없이 정말 물 흐르듯 흘러왔지만 주인공 남녀의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지기까지의 그 과정들이 남달라 보였어요. 원래 사람이란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동경하기 마련이니까요. 


닿을 듯 말듯한 엘리자베스와 다이시의 마음이 나타난 글들을 읽으며 우리의 옛 기억을 조금씩 꺼내 보았어요. 굉장히 오래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설레었던 그 순간은 아직도 어제처럼 기억이 선명하게 나기도 하네요. 저도 엘리자베스처럼 이 남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나 없나 속으로 끙 앓기도 했었고 만남이 시작되었을 때 신기하기도 했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푸릇푸릇한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서 감회가 새롭네요. 


당신이 이 소설을 읽어주었으면 좋겠지만 강요는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내용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우리가 오래된 고전 문학을 읽는 이유는 소설 속 나오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보고 우리의 삶에 닮은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현실에서는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속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글을 통해서라면... 소설의 한 문장을 통해서라면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한 아주 좋은 수단인 것 같아 나는 고전소설이 좋아요. 당신도 고전 소설에 묘미를 알아갈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함연:문학] 모임을 끝으로 소설 리뷰를 편지 형식으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한 달간 제인 오스틴의 언어에 푹 빠져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뜻밖의 과제에 오랜만에 남편에게 편지를 써보니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옛날 기억이 나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좋은 기회를 열어주어 감사해요. 사랑하는 동네책방 [소예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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