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1. 7년 만에 '셋'이 되어

다시 카오락

by 남해바다

아내는 육아에 지쳐 있었다.
그건 어떤 징후처럼 보였다.

아침마다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아이 밥을 먹이는 손끝이 점점 빠르고 거칠어졌고, 밤에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 날, 반쯤 식은 커피를 들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피로와 바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쌓여온 것이었다. 나는 반응 대신 휴대폰을 꺼냈다. 검색창에 ‘태국’을 적어 넣을 때, 손가락 끝에 묘한 떨림이 생겼다.


혼자, 그리고 첫 커플 여행, 신혼여행, 결혼 후에도 여러 번 찾았던 태국.

그곳은 늘 우리 사이에 어떤 감정을 새롭게 불러일으키는 나라였다.


처음 함께 간 푸켓에서는 낯선 길 위에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도,
해질녘 피피섬 해변에 나란히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웃음을 되찾았고,
코사무이에서는 새벽 수영장 물속에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마치 처음 만났던 날처럼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니까 태국은 우리에게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놀라움, 서툼, 웃음, 다툼, 그리고 다시 손을 잡는 일. 그 모든 감정들이, 그곳에서는 허용처럼 자연스러웠다.


일주일 뒤 출발하는 푸껫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아무런 고민없이.


혼자 여행을 떠나던 시절이 생각났다. 파리, 독일, 프랑스, 아바나,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방콕. 그 도시는 늘 나 혼자였다. 가벼웠고, 공허했고, 또 자유로웠다. 그 자유에는 나만의 리듬이 있었다.

준비는 없었다. 배낭 하나, 수영복, 슬리퍼.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고, 도착하자마자 마음에 드는 골목을 찾아 방을 구했다. 어쩔 땐 공항 의자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물론, 예상치 못한 고독도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 셋이 되어 떠나는 여행은 준비만 해도 반나절이 걸렸다. 아이의 여벌 옷, 물티슈, 비상약, 간식, 장난감. 가벼웠던 배낭은 어느새 중형 캐리어로 바뀌었고, 손에는 유모차가 하나 더 들려 있었다.


“이거 다 가져가야 해?”


내가 묻자, 아내는 무심히 말했다.


“응. 혹시 모르니까.”


‘혹시’라는 말은 아이가 생긴 뒤부터 우리 삶의 키워드가 됐다. 혹시 비 올까 봐 우비, 혹시 넘어질까 봐 보호대, 혹시 배탈 날까 봐 소화제. 계획은 그저 도구일 뿐, 결국 아이가 정해주는 속도와 방향에 맞춰야 했다.


항공권을 구매할 때까지만 해도 여행은 여전히 즉흥적이었다. 하지만 호텔 예약과 공항 픽업, 주변 검색…


이젠 조금의 계획 없이는 불가능했다.

예전 같으면, 숙소? 가서 구하면 되지.

지금은, 아이가 밤에 울면? 에어컨이 너무 차면? 침대가 너무 좁으면?

떠나기 전에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신중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포기 못한 한 가지. 아내의 허락 아닌 허락 하에 숙소는 이틀만 예약했다.


가방을 챙기며 아내는 말했다.


“이번에는 그냥 쉬고 싶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바다 보고, 맛있는 거 먹고, 낮잠 자고… 그런 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 여행.

그러나 ‘쉬는 여행’이란 말은 언제나 계획보다 어렵다.

낮잠을 자려면 아이가 먼저 잠들어야 하고,

맛있는 걸 먹으려면 아이 메뉴를 먼저 골라야 하며,

바다를 보려면 모래가 들어간 신발을 털어야 한다.


아내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원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출국 날, 공항에서 카운터에 짐을 올리며 나는 잠시 생각했다. 혼자 떠났던 시간들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던 이유. 그땐 몸 하나만 책임지면 됐다.


이젠 셋의 짐을 챙긴다. 마음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내 숨을 막진 않았다. 오히려 가슴 어딘가가

익숙하지만 낯선 긴장으로 조용히 데워지고 있었다.

푸켓에 도착하자, 태국의 끈적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땀이 비집고 나오는 속도가 혼자 여행 때보다 빨랐다. 아이가 낯선 기운에 긴장해 내 손을 꽉 잡았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는 휴식과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나오는 순간,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았다. 기분이 묘했다. 한때는 공항에서 나와 무작정 로컬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며 떠돌았는데, 지금은 이름이 적힌 종이가 나를 기다린다.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차량에 탔을 때, 나는 조수석에 잠든 아이를 발견했다. 기사 아저씨의 아이였다. 문득 우리 아이와 그의 아이를 비교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비교는 여행을 망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일하듯 여행하고, 누군가는 여행하듯 일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자정을 넘었지만, 리조트 직원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우리를 맞았다. 마치 우리가 오기를 오래전부터 기다린 것처럼. 원래 예약한 방보다 더 좋은 단독 빌라를 받았다.


아내는 책 한 권을 꺼냈다.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비행 중 읽던 책이었던 ‘우리 둘’. 아내는 다 읽었다며, 책 첫 페이지에 조용히 적었다.


“7년 만의 카오락, 둘이 셋이 되어”


그리고는 리조트 서재 한쪽에 꽂았다.


내가 물었다.

"재밌어?"


아내는 대답했다.

"그냥 그랬어."


처음엔 둘이었고, 오래도록 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셋.

우리의 여정은, 더 이상 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그 밤 우리는 또렷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한쪽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우리는 작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맥주병을 땄다. 아내는 한숨 돌리듯 창밖을 봤고, 조용히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네.”


그 말 안엔 무수한 밤이 있었다. 잠들지 못한 아이를 번갈아 안고,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서로의 눈을 피하던 날들. 그 모든 순간들이 '괜찮네'라는 말 한 줄로 접힌 느낌이었다.


나는 아내를 바라봤다.

“여행 중에 제일 좋은 순간이 언제야?”


아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모두 잠든 뒤, 이렇게 맥주 마실 때.”


아내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피곤했고, 동시에 살아 있었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이 여행은 휴식이자 시험, 해방이자 책임, 새로운 시작이자 과거의 연장선이었다.


나는 혼자 걷던 길, 둘이 걷던 길, 그리고 지금 셋이 된 길을 동시에 떠올렸다. 모든 길에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었다.

혼자 걷는 길은 가벼웠지만 차가웠다.

둘이 걷는 길은 더덨지만 따뜻했다.

셋이 걷는 길은 무겁고 느리지만, 그 안엔 처음 보는 웃음과 낯선 고요가 섞여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파도 소리와 함께 숨어 있던 진심이 조금씩 떠올랐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길 위에서, 앞으로도 셋이서 계속 걸어가고 싶다는 걸.

그건 소망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