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가족
다음 날 아침.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낯설 만큼 평화로웠다. 리조트 전체가 이름처럼, 문패도, 거울도, 심지어 수영장까지 전부 나뭇잎 모양이었다. 비수기라 그런지, 리조트엔 우리 가족 말고는 거의 손님이 없었다. 방 앞 수영장은 우리만의 풀빌라처럼 느껴졌다.
조식은 특별했다. 손님이 많으면 늘어놓는 뷔페 대신, 오늘은 오직 우리 가족을 위한 맞춤식이었다. 아들은 한 손에 식빵을 쥐고, 입으론 엄마가 떠먹여주는 볶음밥을 받아먹었다. 양손 플레이로 아침을 즐기는 모습이, 여행 중이 아니라 집 안 거실에서 노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비는 간헐적으로 내렸지만, 우리는 빗속에서 마음껏 물놀이를 했다. 아들의 얼굴에 맺힌 물방울과 웃음이 한데 섞여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됐다.
물놀이 뒤엔 아들의 낮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은 엄마와 아빠에게만 허락된 잠깐의 “오프타임”이자, 짧지만 깊은 “골든타임”이었다.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우리는 마사지 숍으로 향했다.
마사지 침대에 누워, 옆에서 곤히 자는 아들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아마 여행을 와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우리 셋'이 함께라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평소 같으면,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가고,
오후에는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기다렸다가,
밤늦게 술 냄새 풍기며 들어오는 아빠를 반겼을 것이다.
시간대별로 돌봐주는 사람이 다른 하루하루 속에서
‘늘 함께 있는 가족’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은 꺼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 없이 자란 나에게 아빠의 역할은 언제나 어색했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감격스러움보다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던 기억. ‘이 작은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책임감이 가슴 깊이 내려앉았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종종 술로 피했고, 핑계처럼 늦게 들어오던 밤들도 있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는 말은, 사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문장에 가까웠다. 진짜 좋은 아빠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을 텐데. 늘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가 자라는 동안 벽 너머에서만 존재했다. 아이가 잠든 얼굴을 보며 ‘내일은 더 잘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그 ‘내일’은 언제나 오늘과 똑같이 흘러갔다.
그런데도 아이는 여전히 내 옆에 기대어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는다. 그 손에 담긴 신뢰를 떠올리면,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나는 과연 그만큼의 믿음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이런 질문은 끝이 없고, 답은 늘 모호하다. 하지만 그 질문들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 여행에서 만큼은 다짐하고 싶었다.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떤 역할도, 어떤 불안도 내려두고, 그저 ‘아빠’라는 존재로 머물기로.
아이가 가장 바라는 건 멋진 아빠도, 돈 잘 버는 아빠도 아니었다.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같이 웃어주고, 함께 바보같이 뛰어노는, 그저 ‘옆에 있는 아빠’. 그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나왔는지 모른다.
아마도 아이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할 것이다.
아들이 흘리는 물방울, 웃음소리,
“또 해줘!”라고 외치는 그 간절한 표정.
그 모든 순간이,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흔들림 속에서 아이와 함께 자라고 싶다. 어쩌면 그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마사지 침대 위에서, 몸은 천천히 풀렸지만, 내 안 어딘가는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와 함께 나눈 이 ‘시간’만큼은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이 나에게 물어올지도 모른다.
“아빠는 그때 왜 그렇게 나랑 놀아줬어?”
그때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다.
“아빠가 그 순간이 제일 행복했거든.”
그 답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게, 지금 이 여행의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