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스친 자리.
여행을 하다 보면,
목적지보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어떤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
그날이 그랬다.
다음 숙소를 고르기 위해 리조트 주변을 걷다,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아내가 말했다
"기억나?"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기억이, 풍경보다 먼저 다가왔다.
7년 전.
우리 여행의 한 '점'이었던 그 호텔이 눈앞에 있었다.
로비의 식물, 벽면을 따라 흐르던 갈라진 페인트 자국, 창문 넘어 조명까지—
시간이 비켜간 듯,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 호텔 앞에 멈춰 선 나는
그날의 내가,
문득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와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아직 청춘이었다.
젊었고 무모했고,
감정의 저편까지도 여행처럼 믿고 떠날 수 있었다.
내일이 늘 불확실해서,
매일이 기회였던 시간.
청춘은 그런 것이다.
그날, 거리에서는 마침 음식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푸드트럭에서 튀겨지는 기름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졌고, 테이블마다 맥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배고팠고, 그 이유만으로 충분했다.
우리에겐 젊음이 입맛이었고, 시간이 허기였다.
가격도, 칼로리도, 위장도 잊은 채
우리는 감정을 삼키듯, 모든 걸 맛보았다.
그날 밤, 나는 쓰러졌다.
몸은 기억보다 정직했다.
급체였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았고, 병원도 약국도 몰랐다.
밤은 예상보다 깊고, 차가웠다.
그녀는 조용히 내 이미를 짚었다.
귀고리를 풀어 바늘을 만들고, 내 엄지를 따주었다.
그녀는 손을 놓지 않았고,
밤을 건너 나는 깨어났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 사람이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는 걸 .
사랑보다 묵직한 감정이었다.
떠올려 보면, 그 밤은 우리에게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호텔 앞에 서 있다.
같은 위치. 그러나 전혀 다른 시선.
우리는 변해 있었다.
훨씬 멀리 돌아왔고, 더 가까이 닿아 있었다.
그 사이, 아이가 생겼고
말보다 표정을 먼저 읽게 되었으며,
이제는 각자의 길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걷는다.
시간은 기억의 구조를 바꾼다.
같은 장소라도, 다시 찾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곳엔 여전히 그때의 내가 있다.
지금의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있다.
기억은 한 방향이 아니다.
나는 그때의 나를 바라보지만,
그때의 나 역시, 지금의 나를 보고 있다.
그런 느낌은 누구에게나 있다.
너무 오래 된 기억인데도,
그 속의 내가 지금도 나처럼 느껴지는 순간.
심리학자들은 그걸 ‘자기 연속성’이라 부른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감각을 지닌다.
그 끊긴 고리를 잇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장소와 공기, 잊고 있던 풍경이다.
그 호텔은,
내가 남겨둔 나의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은, 조용히 나에게 묻고 있었다.
"너, 잘 살고 있니?"
그날 우리는
과거의 우리와 마주쳤고,
잠시, 말이 없어졌다.
시간이 만든 균열 속으로 시선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같은 방향으로.
여행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어디로든 떠났다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
“그날의 고단했던 밤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