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비치로 가는 마음의 이동
카오락에서의 세 번째 아침. 조용했던 바닷가와 나무 그림자 아래의 수영장. 리프 오션사이드 리조트에서의 평화는 어느덧 끝자락에 와 있었다.
어젯밤, 우리는 특별한 대화 없이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자연스럽게, 신혼여행지였던 푸켓의 카타비치로 향하기로.
문제는, 이동 수단이었다.
아내는 단호했다.
“시원한 에어컨, 렌트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로컬버스. 진짜 여행은 발로 하는 거야.”
아내의 표정은 ‘또 시작이구나’였다. 결국 합의는 없었다. 그저 내 쪽으로 기울어진 일방적 타협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 말로 싸우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웃었다. 그 미소의 뜻은 분명했다.
'짐 옮기는 건 당신 몫이야!'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고집에 취해 트렁크의 무게를 깜빡한 걸.
직원은 우리가, 아니 내가 짐을 들고 정류장까지 걸어갈까 봐 카트를 불러줬다. 알았더라면 당연한 서비스였겠지만, 몰랐기에 더 고마웠다. 기대 없는 친절은 언제나 깊다.
정류장은 간이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표지판도, 시계도, 안내도 없었다.
“1시간쯤이면 올 거예요”
그런 말은 대개, '최대치'다.
아내의 표정에서 점점 빛이 사라졌다. 아들은 잠시 뛰더니 지쳤는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심심해…”
덥고 습한 공기.
식은땀이 옷을 눅이듯 스며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기억은 늘, 완벽함보다 어색함 쪽에 남는다.
이 순간도 언젠가, 웃으며 떠올릴 거라 믿었다.
그곳은 ‘정류장’이 아니라, 기다림의 공간이었다. 버스가 오면 손을 흔들어 세워야 했다. 나에게 익숙한 일이지만, 이날만큼은 긴장이 필요했다. 나는 군 시절 헌병으로 돌아간 듯, 도로를 응시했다. 버스를 놓치면, 평화도 철학도 무너지는 날이었다.
다행히 30분쯤 지나 버스가 왔다.
나는 고요하게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티켓을 사자 생수 한 병이 딸려왔다.
총 330밧트. 한 사람당 4,000원 남짓. 렌트카 비용의 10분의 1.
내 고집은 비싸게 굴지만, 싸게 먹힌다.
버스는 느릿하게 푸켓을 향해 나아갔다. 창밖의 야자수들이 영화 속 장면처럼 미끄러졌다. 나는 천천히, 평화라는 이름의 풍경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버스를 타고 가만히 있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5시간, 아니 길면 10시간도 좋다. 누군가에겐 고역일 긴 이동이, 나에게는 일종의 해방이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은 안도.
밖에서는 풍경이 움직이고, 안에서는 내가 멈춘다.
누군가는 묻는다.
“10시간이나 버스를 어떻게 타?”
그럴 땐 웃으며 대답한다.
“그 시간이 가장 편안해."
버스는 내가 세상과 거리를 두는 조용한 성소였다. 음악도, 대화도 필요 없는 시간.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들 사이로 생각들은 천천히 흐른다. 졸음이 스며들면 잠에 들고, 휴게소에 내리면 따뜻한 국물로 속을 달랜다. 그렇게 시간을 안고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평온도 오래가지 않는다. 한 시간이 지나면 풍경은 반복되고, 세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회의가 몰려온다. 그리고 다섯 시간 쯤 지나면 지난 세월이 떠오르고,그리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가슴이 먹먹해져 배낭을 부여잡고 쥐어짠다.
지나간 말들, 하지 못한 고백들, 참았던 눈물들.
그 모든 감정들이 긴 진동 속에서 흔들리고, 비워지고, 소멸된다. 그 시간은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지금도,
여전히 버스는 나에게... 작은 손이 나를 당겼다.
“아빠… 오줌 마려워…”
내 평화는 그렇게 깨졌다.
생수병을 비우고, 임시 화장실로 변신시켰다.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건 침착함과 집중력이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그러게 렌트카 타자니까.”
명백한 승리 선언.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응수했다.
가족 여행이란, 평화와 혼란이 나란히 앉은 풍경 같은 것.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모두 품는 건 언제나 아빠의 몫이다.
2시간쯤 지나 푸켓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고집을 내려놓았다. 혼자였다면 다시 버스를 탔겠지만, 가족의 평화를 위해 이번엔 택시를 탔다.
버스에서 예약한 센타라 카타 리조트에 도착하자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층층이 쌓인 건물, 북적이는 수영장, 거리마다 빼곡한 상점과 사람들.
카오락의 고요와는 결이 달랐다.
2시간 남짓 거리.
국경을 넘은 것도 아닌데, 전혀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수영을 하고, 쇼핑을 하고, 저녁을 먹고, 마사지를 받았다. 모든 것이 꽉 찼고,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밤이 깊어졌다.
아내는 휴대폰을 넘기며 말했다.
“그래도 버스 타길 잘했어. 기억엔 남겠네.”
기억에 남는 건, 늘 아슬아슬한 쪽이다.
아내의 웃는 얼굴엔, 둘이던 시절의 자유로움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이제 조심스러움과 함께 머문다. 그건 가끔,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심한 투정으로 흘러나왔다.
아내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이는 손으로 사인을 보냈다.
나는 그 둘을 번역하느라,
내 목소리를 잃어갔다.
가족 여행이란 결국, 서로의 결을 맞추는 일이다.
혼자였다면, 아니 둘이었더라도, 아마 고집 하나로 끝까지 밀어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셋이 되면서, 나는 속도를 늦추고, 말투를 낮추고, 나를 내려놓았다. 내 방식의 모서리가 사라질수록, 그 자리에 가족의 체온이 들어찼다.
우리는 더 이상 ‘어디로 갈까’를 두고 다투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함께 있을까’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