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이자 쉼, 쉼이자 도피
우리는 두 달만에 다시 떠나기로 했다. 이유를 말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시작은 한없이 단순했다.
“푸꾸옥 가볼까?”
아내가 건넨 한마디.
가볍고 무심한, 마치 일요일 오후 마트를 고르듯 던진 말이었다.
그 섬은 당시 한국인들에게 덜 알려진 곳이었다. 아내의 지인들은 입을 모아 추천했다. 화려한 리조트, 사파리, 워터파크, 케이블카. 사진 속 풍경은 무결점처럼 보였지만, 내겐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쉼이라기보다는 미션.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일정표 같았다.
“리조트나 워터파크보다는 그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 푸꾸옥은 나중에, 짧게 놀러 가자. 지난번엔 카오락, 푸켓 좋았잖아. 이번엔 크라비나 뜨랏을 찍고, 기회 되면 치앙마이까지 가보자.”
아내는 푸꾸옥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태국의 바람을 상상하고 있었다.
느슨한 골목, 잔잔한 파도소리, 바닷바람에 엉킨 머리칼.
“크라비, 좋네.”
아내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언제나 너답다’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항공권을 검색했다. 크라비에는 직항이 없었다. 방콕을 경유해야 했고, 국내선은 다음 날 아침. 둘의 여행 때 처럼 공항에서 노숙할 수도 있는 상황. 무모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결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3일 뒤 출발하는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했다. 아내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말 없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동의와 체념, 그리고 작은 이해와 ‘다시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말자’는 농담 같은 경고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아내는 ‘가볍게 떠나자’고 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지금 당장 떠나야 산다’고 외치고 있었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된 한 문장은, 결국 서로 다른 속도로, 서로 다른 심장으로 달리고 있었다. 예전, 둘이 처음 태국으로 떠났을 땐 ‘다른 생각’이 ‘같은 방향’이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방향도, 리듬도, 숨결도 엇갈려 있었다.
숨 쉴 틈 없이 쌓여가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좀처럼 눈을 감지 못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머릿속은 폭주하듯 달렸고, 조용한 밤은 늘 전쟁터였다. 내일의 실수를 미리 써내려가고, 오지 않은 문제에 벌써 짐을 졌다. 잠든 게 아니라, 눈만 감았던 날이 많았다. 회사에서는 무거운 책임이 어깨를 짓눌렀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말라붙어 껍질만 남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안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자존심은 사소한 일에도 찢겨 나갔고, 그럴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다. “가족 때문에 참는다”는 주문처럼 내 입술을 맴돌았고, ‘월급날까지 며칠 남았지?’라는 계산만이 나를 위한 유일한 셈법이었다. 하지만 월급은 언제나 조용히, 말없이 사라졌다. 마치 내 존재처럼.
밤이 깊어지면 술잔을 붙잡았다. 시간은 술처럼 밀려났고, 귀가 시간은 점점 뒤로 물러났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던 다짐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고, 아내와의 말끝은 쉽게 칼날로 변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마음은 금세 긁혔고, 그 서러운 감정은 눈물로 바뀌어 가슴 언저리를 떠돌다 방향을 잃었다.
가장이라는 존재는 말이 없었다. 대신 끝없이 목록을 만들었다.
할 일 목록, 결제 내역, 장바구니, 회의록.
그 목록들 속에서 ‘나’는 언제나 맨 마지막이었다.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간절했다.
회사에서는 고립된 섬 같았고, 집에선 이해받고 싶었지만, 말로 꺼낼 줄 몰랐다. ‘가장’이란 이름은 가족사진 속 가운데 자리했지만, 기억 속에선 늘 가장자리였다. 아무도 탓할 수 없기에, 그 외로움은 점점 깊어졌다.
유일한 친구는 술이었다. 입을 열지 않아도 알아주는 유일한 존재, 잔이 비워지면 다시 채워주던 친구. 술잔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그 잔만이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가장’이라는 단어는 점점 많은 것을 감추게 만드는 역할 같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이라고도 하겠지만, 나는 그저 ‘실종’이라고 불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는 조용히 중심에서 멀어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조용히 사라졌다.
수없이 혼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떠난다는 건 결국 자신을 버리고 나를 구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도피인지, 쉼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경계조차 흐려졌다.
달아나고 싶어서 떠난 건지, 쉬고 싶어서 달아난 건지.
그 두 문장은 내 안에서 하나의 숨결처럼 얽혀 있었다. 나는 나를 구한다는 핑계로 도망쳤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쉼이라 불렀다.
아내가 가볍게 던진 한마디는 어쩌면 내가 가장 바랐던 말이었다. 아니,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파열음을, 그리고 그 파열음을 잠재울 마지막 손길을.
다음 날, 나는 앞뒤를 재지 않고 과감하게 10일의 휴가를 만들어냈다. “또 가?”라는 물음에, 나는 담담히 “가야만 한다”고 답했다.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건 ‘나’였고, 동시에 ‘우리’였다.
여행은 결국 타이밍이다. 두 달 만에 떠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휴가철이라서, 혹은 ‘해외여행은 1년에 한 번’이라고 정하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가 만든 틀에 갇힌 여행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많은 것을 아껴가며 살더라도, 여행만큼은 빚을 내서라도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것.
그것이 진짜 여행이고, 진짜 설렘이다.
셋이 떠나는 여행에 익숙해질수록, 계획은 줄어들었다. 숙소는 이번에도 이틀만 예약했다. 원래는 ‘즉흥’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언제부턴가 반복된 패턴이었다. 이틀만 예약하면 언제든 다시 옮길 수 있다는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늘 그 숙소에 며칠 더 머물렀다. 그 도시에서 조금 더 머문 뒤, 다시 떠나겠다고 말만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늘 ‘일단 이틀만’이라고 말하는 의식을 치렀다. 마치 자유를 부여잡기 위한 주문 같았다.
아내는 그 과정을 다 알고 있었다. 숙소를 둘러보는 내 손길, 마지막 순간까지 사진과 가격을 확인하는 내 표정, 그리고 결제 직전에 한 박자 멈추는 그 숨결까지.
아이가 옆에서 “수영장 있어?”라고 물으면, 아내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 웃으며 화면을 넘겼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여 주면, 그제야 나는 결제를 눌렀다. 즉흥이라는 이름을 빌렸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너무도 익숙한 순서였다.
짐을 싸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번엔 진짜 미니멀리즘이다. 무려 속옷 두 장을 뺐다. 다음엔 속옷 없이 수영복만 챙겨가 볼까?”
옆에서 듣던 아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내껀 못 빌려줘.”
아내는 한심한듯 쳐다봤다.
유모차는 늘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이번엔 빼자. 우리도 이제 자유롭게 다녀보자.”
아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자유롭게, 나중에 네 어깨랑 허리는 병원에서 자유를 누리겠지.”
마사지를 보장하는 우리의 여행 파트너, 결국 유모차는 마지막 순간, 말없이 캐리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 ‘자유롭게 떠나자’는 말은 잠시 물러나고, ‘그래도 이번엔 덜 가져왔다’는 자기 위안으로 바뀌었다. 그 패턴은 어쩌면 우리의 안전핀 같았다.
우리는 늘 즉흥적으로 떠난다고 자부했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의식들이 있었다. 떠날 결심을 하고, 숙소는 이틀만 예약하고, 짐을 줄이고, 유모차를 챙기고… 이 반복되는 의식은 매번 다를 것 같았지만, 결국 늘 비슷한 풍경 속에서 안도감을 줬다.
처음에는 이 패턴들이 나를 가두는 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작은 틀 안에서 나만의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예측 가능한 작은 의식 속에서,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감정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여행 방식이자, 동시에 나를 버티게 하는 호흡이었다.
방콕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1시.
배낭여행객들은 여전히 좋은 노숙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다. 우리는 호텔 대신 7년 전, 둘이 함께 첫 침대로 삼았던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번에도 같은 자리, 같은 주문.
그때의 따뜻한 라떼 한 잔.
아이는 로고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아빠, 여긴 별이 세 개야?”
천장을 올려다보던 시선이 내 눈에 닿았다. 스타벅스를 호텔 로비쯤으로 착각한 듯했다. 확실히 조명은 고급스럽고, 사람들은 조용했다. 단지 침대가 없을 뿐, 어른들은 모두 자고 있는 사람들처럼 무표정했다. 그 순간,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조금은 이해됐다.
예전 푸켓 여행책을 들고 있던 아내의 손은 이제 잠든 아들을 토닥이고 있었다. 스타벅스도 이제 24시간 운영하지 않았다. 새벽 5시가 되자 다른 노숙지를 찾아야 했다. 아내는 점점 지쳐갔고, 나를 향한 눈빛은 ‘이제 이런 일정은 무리’라고 말했다.
“다음번엔 호텔 예약 좀 하고 와. 나 이번엔 정말 뼈마디까지 춥다.”
아내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 말엔 피곤함도, 여전히 나를 믿는 눈빛도 함께 섞여 있었다.
마치 7년 전 모습처럼.
공항이 점차 밝아지고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들이 잠에서 깨자 투정을 부렸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에서 Thank you라고 하네"
엄마가 말하자 아들은 응수했다.
"나도 알아. 캅쿤 캅"
곧이어 흘러나온 숫자.
"One, Three, Six...."
"저것도 알아. One은 이찌"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다양한 나라를 경험한 아이의 머릿속엔 여러 나라 말이 뒤섞여 있었다. 언어가 정확히 어디서 온 것인지 몰라도, 여행은 분명히 그의 세계를 넓히고 있었다.
한 시간쯤 비행 후, 우리는 크라비 공항에 도착했다.
내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 익숙한 렌트카, 자연스러운 숙소 이동.
혼자 여행할 때는 낯설음을 견디는 것이 여행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익숙함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여행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행의 시작은, 계획하지 않음조차 하나의 계획이 되어 있었다.
즉흥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된 우리의 작은 의식들.
도피이자 쉼, 쉼이자 도피.
그 모호한 경계에서 나는 다시, 우리를 만났다.
※ 7년 전, 둘이 방콕 공항에의 순간이 궁금하다면—아래 링크를 눌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