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2.0] 2. 온전히 가족

아오낭에서

by 남해바다

2-1. 온전히 아오낭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수영복을 찾았다.

체크인도 전에 이미 몸은 여행 중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수영장 쪽으로 달려갔다. 작은 발로 첨벙거리며 물가에 손을 담그고, 한 움큼 물을 떠 자기 머리에 부었다. 물방울을 얼굴을 스치자, 볼은 한껏 부풀며 웃음이 터졌다.


“아빠! 시원해!”


나는 달려가 아들에게 물을 뿌리고 도망쳤다. 그 순간, 나는 도망치듯 떠나온 모든 이유를 잊었다.

이 한순간만큼은 오직 쉼이었다. 도피도 아니고, 계산도 아니었다.


뒤에서 아내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찍는 척하면서도, 시선은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머물렀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표정. 그 미세한 안도감.


지난 여행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기억한 아들에게, 이곳은 ‘다음 이야기’일 뿐, 새로운 챕터가 아니었다. 그의 세계 속에서 그 짧은 두 달은 숨 고르기였고, 여행은 멈춘 적이 없었다. 우리에게는 준비와 이동, 계획과 계산이 필요했지만, 아이는 늘 지금을 살고 있었다.

이번 숙소, 아오낭 해변 근처의 피스 라구나 리조트 & 스파.

이름처럼 조용했고, 산자락의 초록이 깊게 담겨 있었다.


체크인까지 두 시간이 남았지만, 프런트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Welcome. Your room is ready.”


예정보다 빨리 찾아온 환대, 아들은 더욱 빠르게 마음을 열었다.

객실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침대 위로 점프.

아내는 침대에 다가가며 말했다.

“이 침대만큼은 점프 선수 말고, 엄마가 먼저 눕겠다.”

아들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엄마보다 더 크게, 더 넓게 침대 전체를 품듯 누웠다.


아이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도피인지 쉼인지 복잡한 이름표를 달고 있을 때, 아이는 그저 한 순간, 한 숨, 한 점프로 모든 답을 주고 있었다.

바다는 흐렸고, 물결은 잔잔했다.

아이는 파도를 쫓아 뛰었고, 나는 그를 따라갔다.

파도가 아이를 밀고, 아이는 나를 불렀다.

잠시 순서가 바뀐 듯, 나는 그를 따라 삶의 리듬을 배웠다.

그날, ‘휴식’이라는 단어는 필요 없었다.


돌아보면, 아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이제서야 그 자리로 걸어간 것뿐.

아들의 시간을 나는 이제야 달리고 있었다.


아빠로 산다는 건, 아이를 앞세우고 따라가는 일었다.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일.

앞서기보다 함께 숨 고르는 일.

저녁이 되자, 우리는 피자가게에 들어섰다.
피자 한 입, 허기진 몸. 말은 없었다. 대신 웃음과 소스 묻은 얼굴. 아이는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말했다.

“아빠! 나 오늘 피자 괴물 됐어!”

옆에서 아내가 한 조각 더 건네며 웃었다.

“우리 괴물님, 오늘은 접시도 다 먹겠네?”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알았다.

아무 말 없는 접시 위에도, 파도에도, 아이의 입에도, 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쉼은 내 안에서 도피의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나를 살리는 리듬이 되고 있었다.

눈앞엔 바다. 바람, 소금기, 아이의 깔깔거림.

그리고 아내의 조용한 시선.

우리는 거기 있었다.


도망치듯 떠났지만, 결국은 나를 찾아가는 길 위였다.

그 도피는 결국 쉼이 되었고, 그 쉼은 다시 나를 보게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은,

카메라 뒤에서 웃고 있던 아내였다.





2-2. 아들과 노는 법을 배운 하루


얼마나 신났는지, 아이의 그림에는 비행기, 석회암 절벽, 밤하늘의 별, 그리고 우리 가족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어제 하루, 아이 눈에 비친 우리는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다.

오는 길은 고됐지만, 여기서는 작은 것까지 전부 기쁨이 되었다. 아침부터 설렘이 몸 안을 채웠고, 무엇이든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풍온한 풍경을 배경으로 조식을 시작했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태국의 맛을 탐닉했다. 접시 위 음식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순간만큼은 아이도 나도 온전히 여기에 있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켰다. 붉은색과 파란색이 춤추는 숫자들. 이틀 숙소 값이 오갔고, 숫자들은 매초 내 호흡을 끊어놓는 듯했다. 아내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좀 그만 보면 안 돼?”


나는 화면을 끄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ceiling fan 아래 흐르는 공기,

아이가 한 입 가득 베어 문 망고 한 조각.


그 순간 깨달았다. 현실은 늘 주머니 속에서 나를 부르지만, 여행은 그 주머니를 비워내는 시간이라는 걸. 나는 폰을 뒤집고, 바람 냄새를 맡았다. 주식 그래프 대신, 내 앞에 놓인 작고 선명한 행복의 파동을 바라보기로 했다.

조식을 마치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스며들었고, 빗소리는 음악처럼 공간을 채웠다. 아이가 스르륵 품에 안기는 순간, 어린 시절 마당에 부딪히던 빗방울 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혼자 놀던 아이였다. 빗속을 달리며 온몸으로 느끼는 물방울이 좋았다. 폭우가 내리면 서둘러 집으로 달려와, 창밖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 소리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젖은 나를 혼냈지만, 그 눈물은 혼남 때문이 아니라 기다림 끝에 느낀 따뜻함 때문이었다. 빗방울과 눈물이 뒤섞인 그 감각은 몸 깊숙이 새겨져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비는 달라졌다.

비가 오면 뉴스 특보를 떠올려야 했고, 홍수 현장을 달려가야 했다. 더 이상 반가운 소리가 아니었다. 아파트에서의 빗소리는 창을 열어야만 들을 수 있었고, 오히려 물내리는 소리가 더 익숙했다. 그렇게 빗소리는 내 삶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이 낯선 태국의 리조트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는 어린 시절의 설렘을, 그 감각의 결을 다시 불러왔다. 이건 어릴 적 기억과도 같고, 동시에 일상에선 누리지 못하던 호사였다. 비를 피할 이유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다.

비속에서 우리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흩뿌리는 빗물에 젖은 수영장은 어린 시절 동네 냇가 같았다. 그 냇가에서 친구 하나 없이 혼자 물장구를 치고, 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올려다보던 나. 그 고요하면서도 시끄러운 순간들이 내 안 어딘가에 여전히 파도처럼 살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절의 나를 아들에게 건네주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자신 있게 깊은 쪽으로 향했지만, 발이 닿지 않아 허우적거렸다. 옆의 유럽 아이들은 구명조끼없이도 자유로웠지만, 우리 아이는 물에 떴을 뿐,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즉흥적으로 놀이 하나를 만들었다.

록스를 던지고, 누가 먼저 잡는지 겨루는 게임. 아들의 경쟁심에 불을 지폈다.


"내가 먼저 잡을 거야. 아빠는 열까지 세고 출발해."


단순했지만, 효과는 강력했다. 어느새 아들의 몸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또 하자!" 외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이미 기진맥진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한때 내 외로움을 달래주던 빗소리가, 지금은 아이의 물보라 소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때의 쓸쓸함과 떨림, 흥분과 두려움이 한 세대를 건너 지금 여기, 아이의 웃음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우리의 루틴은 일정했다.

수영 후, 옷을 갈아입고 거리를 거닐 시간.

아들 옷을 갈아입히는데, 물기 탓에 팬티가 잘 입혀지지 않았다. 팬티를 입지 말자고 했더니, 아들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꼭 입어야 돼.”


말끝이 단호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부끄러움과 규칙 사이 어딘가에서 머뭇거리는 그 얼굴. 나는 바지를 슬쩍 내보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빠는 팬티 안 입었어.”


아이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봤다. 웃고 싶지만 웃으면 안 되는 눈빛.


"왜, 팬티를 안 입어?"


"아빠는 팬티를 2장밖에 없거든. 한 장은 올 때 입었고, 하나는 한국으로 갈 때 입어야 해. 지금 입으면 집에 못 가."


아들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나는 펜티가 많아서 괜찮아."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잘 생각해 봐, 팬티를 안 입으면 언제든지 바로 물에 뛰어들 수 있어"


끝내 아들은 진심을 드러냈다.

"팬티를 안 입으면 엄마한테 혼나."


나는 깨달았다. 아이에게 중요한 건 팬티가 아니라, 규칙을 어기는 ‘불안’을 견디는 것. 그래서 나는 그 불안을 함께 감당하기로 했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단지 장난이 아니라, 신뢰가 만들어내는 작고 단단한 약속이었다. 아들은 여전히 엄마의 눈치를 봤지만, 동시에 아빠와 비밀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가끔 우리 둘이 눈빛을 교환하면, 아내는 "뭐야, 너희들?" 하고 물었고, 아이는 잠깐 놀랬다가 킥킥 웃었다. 우리의 비밀 게임은 하루 종일 긴장감과 설렘을 안겼다.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라 있었고, 다시 활기가 넘쳤다. 우리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카페로 들어갔다.


절묘한 낮잠. 그것은 우리의 골든 타임.

한국에선 출근길을 버티게 하는 '약' 같던 커피가, 여기서는 향기였다. 한 모금 머금자, 오늘 아이와 또 이어질 놀이를 준비할 힘이 차올랐다. 가져올까 고민했던 유모차가, 이 순간만큼은 천군만마 같았다.

역할을 다한 유모차를 잠시 쉬게 하고, 거리를 걸었다. 남자아이의 놀이엔 늘 경쟁심이 필요했다.


결승점을 정하고 달리기.

출발은 내가 외쳤고, 팔을 밀치며 거친 몸싸움 끝에 내가 이겼다. 아들은 더 멀리 있는 곳이 진짜 결승점이라며 뛰었고,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최종 승리는 아들!" 아내가 소리쳤고, 나는 아들 편을 든 아내에게 마음이 상했다.

해가 기울자 배가 고팠다. 거리에 늘어난 인도어 간판들. 카레집이 많았지만, 우리는 무난하게 이탈리안으로 향했다.

분명 파스타집이었는데, 메뉴판은 거의 유엔 총회 수준.
태국 요리부터 케밥, 버거, 초밥까지, 없는 게 없었다. 각자 하나씩 ‘자기 요리’를 골랐고, 평화롭게 주문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음식이 나오자, 협정은 깨졌다.

내 접시에 꽂힌 아들. 한 입 먹더니, 눈을 반짝이며 선언했다.

“나도 이거 먹을래!”
“그럼 너 것도 내가 먹어도 되지?”

협상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게임의 룰은 속도전. 내 포크가 연속 세 번, 아들 접시를 향했다. 아들은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엔 경계심이 그득했다. ‘놀이’와 ‘진심’이 뒤섞인 눈빛.


아들은 내 포크를 노려보며,

“아빠... 내거 다 먹지 마.”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평화는 다시 유지되었지만, 접시는 결국 공정하게, 내가 조금 더 비웠다. 아내는 ‘또 시작이구만, 둘이 정말 똑같아’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바로 나, 아빠였다. 식성이 비슷해 늘 ‘숟가락 전쟁’이 벌어졌다. 내가 먹는 건 꼭 먹어봐야 하고, 자기 건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나도 가만있지 않는다. “저기, 저거 뭐야?” 하며 시선을 돌린 뒤, 그 틈에 아들 접시를 슬쩍 비웠다. 그런 날엔 대성통곡과 아내의 호통이 이어졌다.


그래도 오늘은 전쟁이라기보다, 꽤 품격 있는 협상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접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며 함께 먹는 법을 배웠다.

밤거리를 걷다 도착한 밤바다.
아들에게 공포체험이라며 겁을 줬고, 불빛이 적은 한 적한 해변을 걸었다. 아들은 어깨가 움츠리고 내 팔을 꽉 잡았다.

“아빠... 여기 너무 무서워...”

울먹이는 목소리, 떨리는 눈동자, 삐죽 나온 입술. 아내도 무서웠는지 “애를 왜 놀래켜!”라며 나를 타박했다. 나는 힘겹게 웃음을 삼켰다.


오늘 하루,

‘크록스 게임’, ‘비밀 놀이’, '식탁 협상' 등 놀이로 채웠다. 아들을 위해 시간 같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많이 웃고, 가장 많이 배운 하루였다. 어쩌면 내 어린 시절에 하고 싶었던 놀이를, 이제야 마음껏 즐긴 날이기도 했다.





2-3. 두 시간의 해방이 남긴 것


그렇게 웃었던 밤이 지나고, 아침은 다시 익숙한 루틴으로 우리를 끌어당겼다. 마치 어제의 웃음이 잠깐 켜졌던 불빛처럼, 허무하게 꺼져버렸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햇살은 따뜻했지만, 손은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향했다.

아이보다 먼저 눈을 뜬 우리 부부는, 마치 자동 재생 버튼이 눌린 듯 각자의 화면 속으로 다시 입장했다.


서로를 힐끔 쳐다봤지만, 말은 없었다.

이건 싸움이 아닌, 무언의 항복이었다.


아이도 곧 깼고, 투정을 부렸다.

우리는 잠깐 달래고는 자연스럽게 TV를 켰다.

채널은 어린이 방송, 손은 다시 스마트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손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으로 간다. 나도, 아내도.

그런데 막상 대화를 시도하려 하면, 상대가 화면을 보고 있을 때 느끼는 그 미묘한 서운함.


"그만 좀 봐."


툭 튀어나온 말.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았다.


“일 때문이야.”


우리는 늘 같은 변명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결국 싸움이 됐다.


스마트폰은 도구였다.

그러나 곧 습관이 됐고,

습관은 집착으로 변했다.


아이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를 따라 스마트폰에 빠졌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에게만 금지령을 내렸다.


"너는 보면 안 돼."

"핸폰은 엄마, 아빠만 봐. 나랑 안 놀아! 미워!"


사실 아이는 부모의 눈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구나.”


이런 믿음이 아이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쌓인다. 그것이 사회성을 키우고, 도전할 힘을 주며, 감정을 다루는 토대가 된다.


하지만 부모의 시선이 스마트폰 화면에만 머무르면, 아이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받는다.
“나는 지금 중요한 존재가 아니구나.”


그때 아이는 힘을 잃기도 하고, 반대로 더 크게 떠들며 관심을 구걸한다.
작은 울음 같지만, 사실은 온몸으로 내지르는 무거운 외침이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었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돌아온 저녁. 육아에 지쳐 한없이 무거운 아내의 얼굴을 보면, 아무 말 없어도 다 읽혔다. 그럴 때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잠깐만’이라는 말로 스마트폰에게 육아를 넘겼다.

그게 10분이든, 1시간이든.


그렇게 쌓인 시간이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와 노는 시간보다 화면 속 ‘누군가’와 노는 시간이 더 즐거운 순간이 되어버렸다.


답도 사실 우리 안에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밖에서만 찾았다.


스마트폰은 작은 화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시선은 갇혀 있었다. 스마트폰은 필요할 때 구원자였지만, 동시에 우리 사이를 조금씩 갈라놓는 칼날이기도 했다.

비 내리던 아침,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나… 요가 수업 좀 갔다 올게.”


평소 같으면 흘려들었을 말. 그날은 달랐다. 그녀의 목소리엔 간절함과 조심스러움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한 작은 자유’를 구걸하듯.


몇 초의 침묵. 불안이 올라왔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내의 눈가에 안도와 설렘이 동시에 지나갔다.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잃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산을 들고 나서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툭툭이 기사와 흥정하는 얼굴엔 오래 잊고 있던 빛이 스쳤다. 돌아보는 눈빛에는 긴장과 떨림, 오랜만에 느끼는 작은 해방감이 섞여 있었다.


나는 아내가 깊은 숨을 내쉴 때, 지금 이 순간이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임을 알았다. 아이와 가족을 돌보는 데만 쓰이던 에너지가, 자신을 돌보는 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툭툭이가 멀어질 때, 나 역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나와 아들이 함께 맞이한 그 순간의 공기는 가볍게 흐르고 있었다. 눈빛 한 번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TV를 보다가 갑자기 베개 싸움을 시작했고, 소리 지르며 춤을 추고, 온 방을 뛰어다녔다. 두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그리고 돌아온 아내.

툭툭이에서 내린 얼굴엔 변화가 있었다. 무겁던 표정 대신, 상기된 볼과 가벼운 눈빛. 단 두 시간이었지만, 아내는 ‘엄마’, '아내'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했던 해방이었다.


아내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엔 “이제 좀 괜찮아”가 담겨 있었다.


그날 밤, 문득 생각했다.

'내일은 쿠킹 클래스도 보내볼까.'


그날 이후, 우리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을 자연스레 덜어냈다. ‘그보다 더 즐거운 것’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 몇 초가, 어떤 영상보다 선명했고, 어떤 알림음보다 긴박했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곁에 있었지만,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는 도구가 아니라, 필요할 때만 꺼내는 작은 조력자가 되었다.

육아든 삶이든, 결국 중요한 건 연결이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

눈이 아니라 마음.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은 해방감이었다.




2-4. 세상속, '우리 것'


아들은 여행할 때마다 숙소에 이름을 붙인다. 그에겐 호텔 이름보다, 직접 지은 애칭이 더 중요하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곳은 ‘자기만의 공간’, ‘세상 속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냈던 곳은 무지개처럼 빛이 스며들어 ‘무지개 집’이 됐고, 카오락의 작은 빌라는 주변이 온통 나뭇잎 모양이라 ‘나뭇잎 집’이라 불렀다. 이번 크라비에서도 그 놀이는 이어졌다.


리조트 한가운데를 느릿느릿 기어가던 커다란 도마뱀을 본 뒤 ‘도마뱀 집’이 후보에 올랐고, 산책 중 높게 솟은 코코넛 나무 덕에 ‘코코넛 집’이 마지막까지 경쟁했다. 고민끝에 아들은 결국 이곳을 ‘코코넛 집’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이에게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자아를 확인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작은 의식이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이름을 붙이며, 그는 자신이 이 세계에 발을 디딘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렇게 낯선 땅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세계’는, 결국 여행의 가장 귀한 기록이 된다.


작은 목소리로 “코코넛 집!”이라고 부를 때마다, 아이는 세상 속에 또 하나의 작은 섬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용기와 기쁨, 그리고 ‘나는 여기 있어도 괜찮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부모인 우리는 그 세계에 초대된 손님이 되었다.

'코코넛 집'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익숙해진 풍경과 아이의 웃음이 이 집에 정을 붙이게 했다. 아이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지난 며칠 이야기를 쌓아온 ‘작은 세계’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에 작은 변화를 주기로 했다.


걸어서 100미터쯤 거리, 어제 커피를 마셨던 호텔. 실내에 아이를 위한 놀이 기구가 있어, 아들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한 곳. '코코넛 집'과 이름도 꼭 닮은 '코코텔'.


짐을 옮기는 동안, 아들은 코코넛 집을 떠나는 걸 아쉬워했다. 문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또 올 거지?”라고 물었다. 그러나 새 숙소의 놀이 공간을 마주한 순간, 그의 표정은 금세 환해졌다. 익숙함을 떠나는 건 주저함을 동반하지만, 아이에게 중요한 건 낯섦이 아니라 그 안에 숨은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다. 낯선 것에 이름을 붙이며 불안을 달래고,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가는 존재. 아이를 바라보면, 그 안에서 오래전의 나를 본다. 아이의 세계를 지켜본다는 건, 결국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방콕 공항은 '3스타벅스 호텔',

피스 라구나 리조트는 '코코넛 집',

이탈리안 식당은 메뉴판 덕분에 '유엔총회',

아오낭 해변은 흙빛 파도가 넘실거리던 '갈색 바다',


그렇게 이 낯선 땅, 태국의 크라비는 하나씩 이름이 붙여지며, 조금씩 ‘세상 속 우리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우리 것’을 만나러 간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