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우리로 걷는다.

by 남해바다

우리는 같은 날, 같은 공항에서 같은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같은 비행기 안에서도, 각자의 여행은 전혀 다른 표정으로 시작됐다.


나는 침묵 속에서 출발했고,

아내는 일기를 쓰듯 카메라 셔터를 눌렀으며,

아들은 모든 것이 새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돌아보면,

내가 가장 자주 떠올린 건 우리가 있었던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머물렀던 ‘사이’였다.


사진 속 웃음보다,

웃음 너머의 감정들.

그 틈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은 다른 마음도 있었다.

출판 편집자인 아내에게 내 글을 인정받고 싶었다.


누구보다 글에 진심인 그녀는,

유독 내 글엔 냉정했다.


“이야기가 너무 산만해.”
“무슨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처음엔 서운했다.
도움은 없었고, “회사일은 안 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도 썼다.

퇴고하고, 다시 쓰고.

한 문장씩 밀어붙였다.


그녀가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

그게 원동력이었다.


글이 중반에 다다랐을 때,

아내가 무심히 말했다.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네.”


나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선 조용히 기립박수를 쳤다.

하지만 이 글은,
인정을 받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쓰다 보니 점점 더 분명해졌다.


이건 내가 아내에게 건네는 편지였다.
말로 다 하지 못했던 마음,
제대로 전하지 못한 진심을
조금 늦게, 글로 꺼내는 중이었다.


나는 표현이 서툴다.

다정한 말은 사투리에 눌려 무뎌졌고,

화내지 않았는데도 화났냐는 말을 듣곤 했다.


정작 화가 났을 땐 말 대신 침묵했다.
그 밤들엔, 말보다 한숨이 먼저 흘렀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도 모른 채,
나는 입을 닫았고,
아내는 등을 돌렸다.


그 불씨는
어느 날 식탁 위에 놓인 말 한마디로
부모에게까지 번졌다.


내 침묵은 오해를 낳았고,

감정의 불은 조용히 퍼져

‘우리’의 문제를 ‘가족 전체’의 분위기로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고,
멀어진 마음은 그대로 두었다.


그 사이, 나는 글을 썼다.

내 안에 가라앉은 말들을

한 문장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서히 깨달았다.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믿었던 건
단지 착각이었다.


우리는 같은 풍경을,
다만 각자의 창문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창이 좁았을 뿐.

그녀의 창을 보려 하지 않았을 뿐.


가족은 늘 곁에 있지만,

때로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다른 세계에 산다.

창문 하나가,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른다.


무심히 외면당했던 듯했지만,

그래서 아내가 꼼꼼히 읽을 수밖에 없었던 글들.

글은 우리를 서로 마주보게 했다.


이제야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이 글엔 또 하나의 수신인이 있다.
우리 아들.


언젠가 그 아이도,
배낭 하나 메고 세상 어딘가로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이 글이,
아빠의 흔들렸던 순간들을
다시 일어섰던 이유를,
그리고 다시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빠도 그랬다고.
그리고 결국 잘 지나왔다고.


방황하는 날이 있다면,

말없이 곁에 서 있을 뿐이지만

언제나 네 편인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 걸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발신인이자 마지막 수신인,

바로 나였다.


나는 글을 쓰며 처음으로 알았다.
글이란 결국 남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동안 내가 쓴 건 보고서, 기획서, 논문 같은 것들이었다.
딱딱한 글을 쓰다 보니, 나 역시 굳어갔다.
표정은 굳었고, 문장은 메말랐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달라졌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리워했고, 잊었던 마음을 불러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 숨어 있던 나를 다시 만났다.


그래서 이 글은 여행기라기보다, 작은 자서전 같았다.
여행이 우리를 돌아보게 했듯, 이 글 또한 나를 돌아보게 했다.


여행이든 글이든, 결국 도착지는 같았다.
나, 그리고 우리.

결국 이 여행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꿰어 만든 하나의 여정이었다.


불완전했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다운 이야기.


소설 같기도, 다큐 같기도,

혹은 우리만의 작은 모험담.


우리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새로운 우리를 만나기 위해.
다시, 우리로 걸어가기 위해.



이 글을 끝까지 따라와 준 여러분 덕분에,

나는 다시 우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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