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여행이었다.
5-1. 내가 바라는 삶은 틀 바깥에 있다.
그해 겨울, 몸도 마음도 추었다. 얼어붙은 거리 위를 걷는 내 몸도, 거세게 몰아치는 불안에 떨던 마음도 매서웠다. 사람들이 스치는 시선이 날카롭게 느껴져 숨쉬기조차 불편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에 갇힌 듯, 존재감에 대한 끝없는 의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당시의 내 삶은 누군가 써놓은 각본을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선택한 적 없는 길 위에서,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는 걸까.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를 다시 보게 됐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트루먼이라면, 진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1998yr.
트루먼은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세트장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삶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지도 모른 채, 그 안에서 울고 웃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의문을 품는다.
“저 너머에 진짜 세상이 있지 않을까?”
그는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로 배를 몰고, 온갖 장치가 그를 막으려 하지만 결국 커다란 돔의 벽 앞에 도달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In case I don't see ya, good morning, good afternoon, and good night.”
그 장면이 끝날 무렵,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나가면 안 돼’라는 공포가 ‘나가야 돼’라는 열망으로 바뀌는 그 순간, 트루먼은 결국 문을 나선다.
누군가에겐 하나의 장면일 그 선택이, 내겐 오래도록 남는 질문이 되었다.
“남들이 바라는 삶을 살 것인가, 내가 바라는 삶을 살 것인가.”
트루먼이 문을 나선 그 순간, 내 안에도 조용히 남아 있던 질문이 자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도착한 코타오, 그 낯선 섬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트루먼이 마침내 도달한 ‘문 너머’일지도 모른다고.
5-2.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여행이었다.
대학교 1학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대학생활은 고등학교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가고, 시험기간엔 밤을 새워 공부했다. 여전히 누군가 짜놓은 흐름 위를 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선배들을 보며, 나도 졸업할 때쯤이면 당연히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아스팔트 위에 오르기만 하면, 고속도로에서 처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선배들의 길은 명확했다. 일부는 대기업으로, 일부는 공무원이 되었고, 취업에 실패한 일부는 대학원으로 향했다. 누구든 어딘가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느슨한 안도감에 머물게 했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술집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기도 했다. 우리에겐 그것이 '통제'를 벗어난 자유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매일 같이 술을 마셨고,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도서관은 가방 보관소가 되었고, 이론 수업보다 당구 기술 연마가 더 중요했다. 중요한 고민은 하나였다. ‘오늘 어디서 술을 마실까?"
술자리는 늘 비슷했다. 허름한 식당, 김치찌개, 소주. 가끔은 취업에 성공한 선배가 한턱 쏘며 대패삼겹살을 사줬고, 그 자리에선 어김없이 무거운 충고가 이어졌다.
"지금 놀기만 하면 나중에 취업 못 한다. 토익이든 학점이든 미리 준비해 둬야 돼."
우리에겐 그 말이 현실감 없이 들렸다. 학점이나 토익보다는 내기 당구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이겼을 때 가는 술집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1학기를 보낸 결과는 명확했다. 성적표에는 F가 가득했고, 복학한 선배들은 "나도 그랬어. 군대 가기 전엔 놀아야지. 안 그러면 군대 가서 후회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말은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되지 않았다.
스무 살. 법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희미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선명하지 않았다. 그저, 대학에 들어왔으니 언젠가는 대기업에 들어가겠지. 안 되면 중소기업, 공무원, 그래도 안 되면 대학원. 주변 모두가 그렇게들 말했고, 나 역시 그것이 삶의 기본 경로인 줄로만 알았다. 그 길의 끝을 알지 못하면서도, 남들처럼 걷는 것이 곧 정답인 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선택이 아니라 순응이었다. 정해진 미래를 따라가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보단, 어쩌면 그 불안마저도 ‘정상’이라 믿으려 애썼다. 매일 밤 술집을 전전하고, 다음 날은 수업을 빼먹고, 시간은 흘러갔다. 마치 청춘을 낭비하는 것이 청춘다운 것인 양, 기성품 같은 삶에 스스로를 맞춰 넣고 있었다.
그러다 1년이 지나고 군 입대 영장이 도착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섰다. 그 순간, 깊고도 묵직한 공허감이 밀려왔다.
“내가 정말 이러려고 대학에 온 걸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인생일까?”
그 질문 앞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2년이 넘는 시간 뒤 군대를 제대하고도 변함없이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눌렀다.
나는 정해진 레일 위에 놓인 기차처럼 살아가고 있었고, 그 기차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기준과 기대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나답지 않은 방식으로, 나도 모르는 삶을 향해 흘러가는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군 입대를 2주 앞둔 어느 날.
당연히 가야 하는 군대. 무감각한 작별 대신, 단 한 번이라도 내 방식으로 세상과 작별하고 싶었다. 술에 취해 훈련소에 끌려가듯 떠나는 대신, 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막노동으로 모은 26만 원을 들고, 부산역에서 새마을호에 올랐다. 목적지는 없었다. 단지, ‘멀리’ 가고 싶었다. ‘다르게’ 있고 싶었다. 그때의 여행은 계획도, 목적도 없었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정한 방향으로 움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아주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서울역에 내렸을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몰랐다. 명동을 지나 종각, 남산, 여의도를 걷고 걷다가, 어느 순간 KBS에 닿았다. 그곳은 내게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보였다.
그 앞 노점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주변을 3시간쯤 서성이다가, 우연히 공개홀 입구까지 가게 됐다. 경비가 없던 그 순간,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가수 현철 선생님이 무대에 서 있었다.
당시 유명했던 '빅쇼'의 마지막 장면.
입장은 짧았지만, 그 장면은 내 인생의 긴 여운을 남겼다.
그날 이후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고, 그 질문은 언젠가 내 걸음이 방송국을 향하도록 이끌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우연한 하루가 내 진로의 씨앗이었다.
나는 지금 그때 문밖에서 바라보던 그 방송국 안에서 일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첫 터닝포인트는 정처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그땐 몰랐다. 막막함 속에서 무작정 떠났던 그 여정이,
누군가의 기대가 아닌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삶을 움직이기 시작한 첫 순간이었다는 걸.
삶은 늘 예측할 수 없지만, 변화는 가능하다. 그 시작은 언제나 아주 사소한 데 있다. 한 편의 영화에서, 우연히 들른 건물에서, 혹은 트루먼처럼 ‘밖으로 나가보기로 결심한’ 작은 용기에서.
"우물 안 개구리는 바깥세상을 동경할 수는 있지만, 강과 바다를 상상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걸 ‘아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진다."
여행은 그 '존재'를 알려주는 경험이다. 지식이나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나다운지를 몸으로 깨닫게 한다.
코타오의 파도 소리 속에서,
낭유안의 바람 속에서,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여행은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내 삶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행위'라는 것을.
흘러가는 인생 속에서 주도권을 되찾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