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2. 기억이 되는 법

마음, 순간, 선택, 체험이 어떻게 기억으로 남는가

by 남해바다

2-1. 함께 있는 아빠


그렇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이곳의 아침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낯설 만큼 평화로웠다. 리조트 전체가 이름처럼, 문패도, 거울도, 모든 게 차분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비수기라 그런지 손님은 거의 없었고, 방 앞 수영장은 우리만의 풀빌라럼 고요했다.


아이의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아침 공기보다도 선명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조식은 특별했다. 늘어놓은 뷔페 대신, 오늘은 우리만을 위한 식탁이 준비돼 있었다. 아들은 한 손에 식빵을 쥐고, 입으로는 엄마가 떠먹여주는 볶음밥을 받았다. 두 손과 입을 동시에 쓰며 아침을 즐기는 모습이, 집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 편안하게 느껴졌다.

비는 간헐적으로 내렸지만, 우리는 빗속에서 마음껏 물놀이를 했다. 아들의 얼굴에 맺힌 물방울과 웃음이 반짝이며 뒤섞였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물놀이 뒤엔 아들의 낮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허락된 짧지만 깊은 “골든타임”.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우리는 마사지 숍으로 향했다. 부드러운 음악과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감싸며, 긴장이 서서히 풀려갔다.

침대에 누운 채, 옆에서 곤히 자는 아들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아들은 아마 여행을 와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우리 셋이 함께라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평소라면,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가고,
오후에는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기다렸다가,
밤늦게 술 냄새 풍기며 들어오는 아빠를 반겼을 것이다.

그 속에서 ‘늘 함께 있는 가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은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 아빠를 늘 그리워했던 나는,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의 두려움과 책임감, 그 무게에 눌려 종종 피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문장에 가까웠다. 늘 바쁘다는 이유로 벽 너머에서만 존재했고, ‘내일은 더 잘해야지’라는 다짐도 오늘과 똑같이 흘러갔다.


그럼에도 아들은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는다. 그 손에 담긴 신뢰를 떠올리면,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나는 그만큼의 믿음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답은 늘 모호하지만, 그 질문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 여행에서만큼은 다짐했다. 어떤 불안도 내려두고, 그저 ‘아빠’로 남겠다고.

아이가 바라는 건 멋진 아빠도, 돈 잘 버는 아빠도 아니었다. 웃어주고, 뛰어놀고, 옆에 있는 아빠였다.


아마도 아이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할 것이다.

아들이 흘리는 물방울,

웃음소리,

그리고 “또 해줘!”라고 외치는 간절한 표정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그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흔들림 속에서 아이와 함께 성장하려 한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사랑일 것이다.

마사지 침대 위에서 몸은 천천히 풀렸지만, 내 안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와 함께 나눈 이 ‘시간’만큼은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이 나에게 물어올지도 모른다.

“아빠는 그때 왜 그렇게 나랑 놀아줬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아빠가 그 순간이 제일 행복했거든.”


그 한 문장만으로 모든 시간이 충분해진다.

그게, 지금 이 여행의 가장 단순하지만 확실한 이유다.




2-2. 맛집을 찾아서


그날 밤, 아이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오랜만에 긴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음 날.

6월의 카오락은 예상보다 거칠었다. 파도는 세찼고, 스콜은 예고 없이 쏟아졌다. 우리는 밖 대신, 안에서 여행을 이어갔다.


눅눅한 공기는 에어컨 바람에 씻기고, 뽀송한 이불 아래 몸을 묻은 채 창밖의 빗소리를 들었다. 집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평화였다.

한때 집에도 호텔 침구를 들인 적이 있었다. 그 부드러움이 여행의 감흥을 대신해 줄 거라 기대했지만, 감동은 오지 않았다.


결국 모든 감정은 TPO였다.

‘시간, 장소, 마음’이 어우러진 조합에서만 특별한 순간이 태어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기억에 남는 건 늘 화려한 조건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 표정, 그리고 그 안에 스민 기분이었다.

배가 고파질 즈음, 숙소 근처에서 허름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Happy House]

낡은 벽, 희미한 불빛, 오래된 테이블.

특별할 것 없는 식당이지만, 그날의 우리에겐 충분했다.


나는 원래 ‘소문난 맛집’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특히 여행 중에서 더더욱 그렇다. 많은 경우, 그곳에 대한 평가는 ‘낯선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한 끼’라는 마법이 덧입혀진다. 웬만하면 다 맛있단다. 바퀴벌레만 안 나오면, 오히려 ‘진짜 로컬 맛집’이라며 감탄까지 한다. 게다가 처음 가본 집을 ‘내가 발견한 숨은 명소’처럼 남기고 싶은 SNS 심리도 한몫한다. 그래서 나는 검색보다 발걸음과 기분에 기대어본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들려온 건 다름 아닌 한국말, 그것도 어딘가 익숙한 억양이었다.


"부산에서 몇 년 살았습니더."


삐걱거리는 사투리. 오히려 그 삐걱임이 정겨웠다.

나도 부산 사람이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잠시 눈빛을 멈추더니 말했다.


“아, 고향사람이네예.”


그 한마디에 테이블 위 공기가 달라졌다. 한국에 계셨는지 묻자 말은 아꼈지만,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 억양 하나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이국의 입속에 스며든 한국말.

그 안에 담긴 상처와, 버틴 시간.


그날 아주머니의 억센 한국말은 단순한 말씨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견뎌낸 세월, 자기 자신을 지켜낸 언어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억양이 잊고 있던 ‘나의 말’을 불러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나는 사투리를 버렸다. 끝을 올리고 억양을 낮췄다. 그게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매끄러운 말이 입에 붙을수록 마음은 거칠어졌다.


말은 표준어를 흉내냈지만, 억양은 가끔 나를 배신했다. 특히 고향 사람을 만나면 그랬다.

혀를 돌리기도 전에 튀어나온 사투리.

몸은 기억보다 정직했고, 마음은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서울에서 익힌 말과 떠나온 고향의 억양이 부딪히는 순간, 나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고향을 떠나 한국말을 붙든 사람.

서울에서 제 말을 잃어버린 사람.


서로 다른 길 끝에서, 같은 억양을 마주한 것이다.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들이 조용히, 스며들 듯 교차했다.

식당의 불빛이 그제야 유난히 따뜻하게 번졌다.

볶음밥, 팟타이, 오징어 튀김. 튀김에 약한 몸이지만, 이날만은 예외로 두었다. 한 입, 두 입. 어느새 아들과 경쟁하듯 그릇을 비웠다. 배탈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모든 다짐이 무너졌다.


아주머니는 그런 우리를 보고 말했다.

"잘드시네예"


그리고는 튀김 한 접시를 더 내어주셨다. 그 한마디에 우리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먼 곳에서 돌아온 사람들 같았다.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건 언제나 강렬한 맛보다, 그날의 표정과 마지막 한 입의 온기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의 말처럼, 우리는 경험 전체가 아니라 ‘가장 강렬한 순간과 마지막 순간 (Peak-End Rule)’을 중심으로 기억을 구성한다. 그 기준에서 본다면, 이 한 끼는 완벽에 가까웠다.

식사를 마치고 비 내린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젖은 아스팔트, 느슨해진 마음.

그러다 낯익은 로고를 발견했다. 맥도널드. 한국에선 좀처럼 가지 않는 곳인데, 여기선 오히려 반가웠다.

줄도, 소란도 없었다. 아이스크림과 감자튀김. 단순하지만 정확한 단짠의 공식.

매번 뻔한데도, 이상하게 행복했다.

다시 작은 골목. 또 하나의 카페.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커피가 목적이었지만, 메뉴판 앞에서 식탐은 주저하지 않았다. 배는 이미 찼지만, 허기를 가장한 욕심은 틈을 찾아냈다. 주문하자마자 음식이 도착했고, 아들과 나는 다시 유쾌한 경쟁에 돌입했다.

“맛있으면 0칼로리.”

언제나 농담처럼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종종 묻는다.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지?”

“줄!”

나는 줄 서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유명한 맛집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다. 긴 줄 끝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고, 결국 평범한 맛을 확인하면 드는 생각.


‘이걸 먹으려고 내 시간을 저당 잡혔나.’


줄을 서지 않는다는 건 내 시간에 대한 예의다.

그날 해피하우스도, 맥도널드도, 조용한 카페도 줄이 없었다. 그 순간, 카오락은 마치 우리 세 식구만의 작은 마을 같았다.


예약 없는 식사,

우연히 발견한 가게,

줄 없이 앉을 수 있는 자리.

그 여유 속에서야 여행은 비로소 기억이 되고, 즐거워졌다.


여행의 진짜 맛은 결국 ‘맛집’이 아니라, 순간의 결, 공간의 온도, 마음의 움직임이 만든다.


무심한 친절.

뜻밖의 환대.

그 자리에서 피어나는 나의 기분.

이 작은 조각들이 모여 여행의 깊이가 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말했다. 계획된 만족보다 즉흥적인 몰입이 인간을 더 깊이 살아있게 만든다고. 그 말처럼, 완벽한 플랜보다 우연의 조각들이 모여 진짜 여행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그날, 가장 소박한 테이블 위에서 우리는 완벽의 맛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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