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 달렸어요.

달리기

by 달빛한줌

올해 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딱히 달리기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내게 영감이 되는 분들 중, 상당수가 습관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퍼스트 무버는 안돼도 패스트 팔로워는... 그것도 안될 것 같고, 그냥 팔로워인 나는 그저 그들을 따라 해보고자 했다. 그들처럼 하다 보면 나도 내가 닮고 싶은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말이다. 또한 최근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내겐 너무 심심해 보였던 그것에 무슨 매력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뛴 것은 아니다. 내 몸을, 그리고 의지를 잘 알기에 일주일에 3일씩만 무리하지 않고 달렸다. 3km로 시작을 해 조금씩 거리를 늘렸다. 약 4개월간 한 주도 3회 이상을 달리는 것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렇게 꾸준히 달린 지난 6월. 나는 한 달 동안 총 101.9km를 달렸다. 한 번에 13km도 달려봤다. 1시간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두 발을 앞뒤로 움직인 것이다. 사실 달리기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별것 아닌 수치지만, 나에겐 놀랍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루 5천 보도 겨우 걷던 내가 1시간 20분을 쉬지 않고 달리다니 말이다.


달리다 보니, 달리기의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된다. 인생과 같다느니, 모두가 승자라느니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실질적으로 체감한 달리기의 매력 말이다.




회사 생활 10년 동안, 나는 12kg이 쪘다. 턱과 얼굴의 경계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와이셔츠를 입고 앉을 때면 복부 부분의 단추들 사이에 올록볼록 엠보싱이 형성되는 전형적인 아저씨가 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나이가 들면 노화와 함께 두둑한 뱃살은 당연한 자연현상이라 생각했다. 내 주변을 봐도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지난 2월 말부터 달리기 시작했으니 달린 지 4개월이 조금 넘었다. 4개월 동안 체중 5kg이 빠졌다. 인바디를 재보지 않아 근육량과 지방량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을 감안하면 아마도 지방은 5kg 그 이상이 빠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최근 《놀면 뭐하니?》에 비가 나오는데 그의 턱선이 화제다. 정말 남자인 내가 봐도 멋들어진 턱선이다. 당연히 그와 비할바는 아니지만 최근 10년 넘게 자취를 감췄던 나의 턱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뭉툭해 무언가를 벨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히 얼굴과 목의 경계를 어렴풋하게나마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선이 생겼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으나 그게 내 경우에는 마음처럼 잘 안 된다. 후덕해진 내 몸의 부피만큼 나의 자존감은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라테'인간으로 별로 찬란하지도 않았던 과거조차도 너무 그리웠다.


달리기를 통해 체형의 변화를 체감하고, 최근 스키니도 입어보고, 칼라풀한 옷도 입어봤다.(1년 전 4kg, 최근 4개월 5kg 해서 10년 전 체중에 3kg 차이로 근접한 상태다) 꾸미고 싶었던 스타일이었지만 전형적인 아저씨 체형을 보이는 내가 이런 옷을 입는 것이, 스스로 민망했다. 하지만 지금, 40을 목전에 두고 그런 옷들을 입어 볼 수 있었다. 대학생 때 느꼈었던 '오늘은 뭘 입고 나가지?' 하는 설렘을 요즘 옷장 앞에서 느끼고 있다. 아내에게 이 옷은 어때? 하며 묻기도 한다. 내 삶에 재미있는 순간이 하나 추가됐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너무 철없는 아저씨인 것 같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달리기를 통해 정신적으로, 혹은 내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됐다,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등등... 이런 멋진 말들을 해보고 싶으나 사실 내가 지금 가장 체감하는 변화는 이것인데 어떡하랴. 아직 달리기 수련이 부족해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한다. 하긴 이제 한 달 100km, 최장거리 13km 밖에 뛰지 않았으니 그런 높은 수준을 깨닫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언젠가 풀코스를 뛰는 순간이 올 때면 나도 조금은 그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다시 한번 달리기 매력에 대해 쓰는 것을 기약하며, 지금은 10년 전 내 체형에 근접해가는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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