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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다람쥐 May 06. 2023

어른이 어린이가 돼서 노는 날.

Day 65

어린이날 연휴. 아이들과 캠핑을 가려했다. 하지만 주말에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온다는 소식에 취소했다. 대신에 아이들과 실내 위주로 놀 계획을 짰다. 사람들이 실내로 몰릴 것이 뻔히 예상되기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혼잡해지기 전에 재빠르게 움직이니 아쿠아리움 오락실 볼링장까지 어떠한 대기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캠핑보다 더 재밌어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캠핑장 놀이방은 이제 시시하다.)


다음날(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양가 부모님 집에 방문할 계획이었다. 오전에는 장인어른 댁에, 오후에는 부모님 집 순서였다. 다음날 오전 장인어른 댁에 방문할 계획이었기에, 저녁에 아이들을 하루 먼저 맡겨도 되는지 여쭤봤다. 당연히 OK였다. 그렇게 어린이날 저녁은 아내와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 야식이 빠질 수 없었다. 아이들을 맡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60계 치킨 '더 매운 고추 치킨'을 주문했다. 픽업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TV 앞에 간이 식탁을 펼치고, 야식 먹을 세팅을 완료했다. TV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김희철 김민아 님이 진행하는 〈이십세기 힛-트쏭〉에 멈췄다. (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늘의 주제는 '육퇴 후 즐기는 나이트클럽 힛-트쏭'이었다. 돌아오면서 아내와 "별밤이나 갈까?"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다음날을 위해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타이밍 기가 막히게 나이트 힛-트쏭이라니, 나이트와 육퇴라는 주제가 지금의 우리 부부에게 완전 딱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이십세기 노래를 주제별로 10위부터 1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10위로 가장 먼저 소개된 노래는 김현정의 '멍'이었다.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몸에 슬슬 신호가 온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일어나서 두 손을 번쩍 위로 들고 팔과 허리를 돌리며 한 바퀴 턴한다. 아내는 "잠시만 기다려봐"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들 장난감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불을 끄고 노래방 미러볼과 야광 팔찌를 들고 아내가 등장한다. 순식간에 집이 나이트가 됐다. (우리 집은 1층 없는 2층 필로티 구조라 층간 소음은 없다. 그리고 노래는 작게 따라 불렀기에 절대 주변 분들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았다.)

 


9위는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이다. 허리를 숙이고 양 무릎을 번갈아 가슴까지 올리며 두 손을 아래로 쭉쭉 내뻗었다. 지금 당장 후드티를 입지 않은 게 못내 아쉬울 뿐이다. 8위는 스페이스 A의 '성숙'이었다. 개인적으로 해당 가수의 '섹시한 남자'를 더 좋아한다. 7위는 그 유명한 자자의 '버스 안에서'.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중학교 때, 버스에서 여학우들을 보며 혼자 설렜던 기억이 떠오른다. 6위는 R.ef의 '이별공식'. 당시 멤버 이성우 님을 보며 '세상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구나' 미모를 질투했던 생각이 난다. 5위는 당연히 순위에 있을 거라 예상했던 벅의 '맨발의 청춘'이다. '간다 와다다다다다다다~~' 아내와 함께 신나게 발을 구른다. 4위는 DJ DOC의 'Run To You'.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쪼그려 앉아 두 손을 올리며 방방 뛰면서 불렀던 노래다. 아내와 순위를 맞추며 1등이라 예상했던 노래인데, 4위인 게 조금 의외였다. 3위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국내 음반판매 330만 장이라는 기네스를 보유한 노래(앨범)다. 다만 나는 김건모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었던 나였기에, 1대 3으로 붙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를 견제했었다. 2위는 코요테 '비몽'이다. '난 나나나~'이후 아내와 함께 '쏴!!'를 발산했다. 개인적으로 '오오오~오오오~'로 시작하는 '순정'이 순위에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틀렸다. 그리고 대망의 1위는.... 터보의 'Twist King'이다. 게스트로 출연했던 빽가 님이 말한다. 인트로 영어 랩이 "껌하나 필통 만년필"로 들린다고. 노래를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 그렇게 들린다. 핑클의 '개미 두 마리, 개미 세 마리, 다 합쳐서 다섯 마리'이후 최고의 랩 번역이다. 




5월 5일 어린이날 저녁, 아내와 나는 어린이가 돼서 신나게 놀았다. 어린이날이 꼭 어린이만을 위한 날일까? 어른도 어린이로 돌아가, 어린이날을 즐기면 안 되나? 비록 나이는 40대여도 나는 여전히 10대의 마음을 갖고 있다. 돈과 사회생활이라는 때가 조금은 묻었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낭랑 18세다. 개인적으로 평생 철 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순간순간에 흥이나면 리듬에 몸을 싣고 즐기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십세기 나이트 힛-트쏭 순위는 다음과 같다. 각 노래별로 유튜브 영상을 첨부하니, 나와 동일한 시대를 살아왔고 공감하는 어른들은 이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일요일 보내길 바란다.      


10위 - 김현정의 멍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zojBIStEPmc

9위 -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1992)

https://www.youtube.com/watch?v=T9savn_zTgk

8위 - 스페이스 A 성숙(1999)

https://www.youtube.com/watch?v=aOYZIZkdFpw

7위 - 자자 버스 안에서 (1996)

https://www.youtube.com/watch?v=JcxZWrqHCUQ

6위 - R.ef 이별공식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0OtxUJ8amDU

5위 - 벅 맨말의 청춘 (1996)

https://www.youtube.com/watch?v=S5SS7yC5QYY

4위 - DJ DOC Run To You (2000)

https://www.youtube.com/watch?v=ZTcbsD3h37Y

3위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4)

https://www.youtube.com/watch?v=kXXFlw5n6LE

2위 - 코요테 비몽 (2002)

https://www.youtube.com/watch?v=9HhRZwHmpU4

1위 - 터보 Twist King (1996)

https://www.youtube.com/watch?v=Ngyjoe86h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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