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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다람쥐 May 17. 2023

독서...그까이꺼 대~충~~

Day 75

최근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속독까지는 아니지만,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기만 한다. 훑어보다 느낌 있는 문장이나 실생활에 도움 되는 내용을 만날 때서야 속도를 조금 늦추고 해당 부분을 천천히 읽는다. 하지만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실용 도서를 좋아한다. 소설 인생 행복 등과 관련된 책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감정 위로보다는, 더 풍족한 삶에 다가가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성향이 독서 책 목록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전처럼 독서에 시간을 많이 투여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에 시간 투자 대비 얻는 효율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약 300페이지 전부 도움이 될 리 없다.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실체적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은 흘겨보기만 할 뿐, 마구 건너뛴다. 도움이 될 것 같은 부분에 밑줄을 긋지만, 여전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계속 다음으로 진도를 나아간다. 책을 다 읽은 후, 밑줄 친 부분만 별도로 메모장에 수집한다. 책의 전체 내용에는 전혀 관심 없다. 그저 부분만 채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분명 독서라는 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인터넷 서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보의 바닷속에서 대충 훑어보다 이거다 싶은 정보를 발견하면 수집함에 넣어 놓는 행위와 동일하다. 이러다 보니 독서가 생각과 지혜, 경험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닌, 실용적 정보 탐색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사실 정보는 구글 네이버 유튜브에 훨씬 많은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걸까? 돋보기 검색창에 몇 글자 입력하면 쉽게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독서는 저자와의 교감이자 대화, 그리고 생각과 지혜의 시발점이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저자님, 대화는 됐고요. 그냥 핵심 정보만 알려주세요.'라며 저자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현실 타파가 가능한 실효성 관점에서만 독서의 유효성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독서의 장점에 의문이 들며, 책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책을 다 의무적으로 서문부터 결론까지 읽을 필요는 없네.”
“선생님은 그럼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의무감으로 책을 읽지 않았네.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나비는 이 꽃 저 꽃 가서 따지, 1번 2번 순서대로 돌지 않아.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먹진 않는다고. 그런데 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그 책이 법전인가? 원자 주기율 외울 일 있나?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그 기나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나는 세 번을 읽었어. 의무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말이네.(...) 책 많이 읽고 쓴다고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것 같아? 아니야, 제 머리로 읽고 써야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이어령 저, 열림원 -


어쩌면 내가 독서라는 행위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던 걸까? 이어령 선생님도 독서를 하다 재미없으면 그냥 던져버린다고 말한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문자를 읽는 독서의 산출물은 울림과 사색, 그리고 내 지혜로의 연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자괴감으로 책과 멀어졌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은 내가 다시 독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극이 된다. 


‘어떤 게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지? 뭐가 진리일까!’ 이런 고차원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아무 문장이나 골라도 상관없다. 글쓴이가 강조하는 말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서 내 삶에 적용해 보면 된다. 그 순간, 자신의 상황에 필요한 문구가 진리인 것이다.

 -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 내성적인 건물주, 메이트북스 -


독서를 그리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 문장이 참 좋다. 사색을 통해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무엇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은 떨쳐버리고 그저 내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골라 삶에 적용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이 문장이 완전 내 취향이다. 울림이 없으면 어떤가, 꼭 문장과 내용을 곱씹는 사색을 하며 내 지혜로 전환을 해야 하는 걸까? 저자와 대화를 해야만 하는 걸까? 그저 지금의 내게 필요한, 도움이 되는 것들만 내 임의대로 추출하면 그걸로 독서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게 아닐까?


한결 독서의 무게감이 가벼워졌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말 나온 김에 오늘은 오랜만에 책이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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