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행복해지는 시간.
올해도 찾아온 8월 22일.
8년 전 8월 22일. 아내와 사귄 날이다. 당시의 나는 연애 숙맥에, 내향적인 성격,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위 '찌질이'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나한테 있는지조차도 몰랐던 용기라는 것을 짜내 아내에게 고백했다.
저랑 사귈래요?
참 멋없는 고백이었다.
아내와 썸을 타고 있는 중, 아내가 잠시 떠나야만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많이 봤다. 떠나기 전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고백하는 것을. 떠나기 전에 고백을 해야 하나...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나는 결국 아무 표현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내는 그대로 떠났다.
다행히 전화는 할 수 있었다. 아내가 떠난 날 저녁, 눈 앞에서 그녀를 볼 수 없으니 마음이 애달펐던 것인지, 혹은 용기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전화를 했고, 아내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했다. (아휴... 지금 생각해도 참 못났다. 전화 고백이라니 한심할 따름이다.) 아내는 바로 답변하지 않았다. 조금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이런 고백, 정말이지 멋도 없고, 막연히 대답을 기다려야만 하니 답답하다. 두 번 다시 이런 고백은 안하리라 다짐했다.(아내가 고백을 받아줬고, 결혼까지 했으니 결국 두 번 다시 하진 않았다.)
사실 아내는 회사 교육으로 2박 3일 대전으로 떠난 것이었다. 외국도 아니고 같은 대한민국, 그것도 고작 3일. 뭐가 그렇게 조급했을까? 3일 동안 혹시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만나게 되면 어떡하나 불안했던 것일까? 당시의 내 감정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이유야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건 난 그 3일의 헤어짐을 참지 못하고 전화로 고백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고백은 참 멋없었다는 것이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아내는 나보다 7살이 어리다. 24살에 나를 만났다. 25살에 결혼을 했다. 요즈음 여성분들의 평균 결혼 연령 대비 조금은 이른 편인 것 같다. 허니문 베이비가 생겨 신혼생활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26살에 첫째를, 28살에 둘째를 낳았다. 현재 아내의 나이는 32살. 어쩌면 인생에서 물리학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활력 있는, 그리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금, 아내는 7살 5살 두 아이의 엄마로, 아니 39살의 철없는 늙다리 아들까지 포함해, 세 아이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대 때의 아내는 정말 멋쟁이 었다. 미니스커트와 스키니를 좋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이라인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0cm가 넘는 하이일도 척척 신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운동복을 제일 좋아하고, 화장은 귀찮다며 쌩얼을, 하이힐은 커녕 쪼리와 운동화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은 여전히 문화와 트렌드의 중심에서 자신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반해 아내는 나까지 포함한 세 아이의 중심에서 즐기기는커녕 진땀을 흘리고 있다. 조금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결혼과 육아로 인해 동년배들과 조금 다른 궤적의 삶을 사는 아내를 보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끔은 내가 죄인 같은 기분도 든다.
이런 내게 아내는 항상 말한다. 빨리 결혼해서, 빨리 아이를 낳아서 너무 좋다고. 40이 되면 아이들은 다 컸을 테니, (첫째는 중2, 둘째는 초6) 그때부터 내 인생 즐길 거라고 말이다. 분명 20~30대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텐데, 언제나 괜찮다고 말해주는 아내가 나는 그저 고맙다.
나의 Only 독자가 즐겁길 바라며...
오늘은 8년 전, 아내와 내가 사귄 날이다. 특별한 날인 만큼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다른 때였다면 아마도 평소에 잘 가지 않는 근사한 곳에서 오늘을 기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평범한 것들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은 공적인 장소에서 얌전히 있지 못하는 두 아이들이 있기에, 혹시나 타인에게 염려를 끼칠까 섣불리 집을 나서진 못하겠다.
하지만 오늘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아내를 기쁘게 해 줄 다른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러다 최근 읽은 『나는 말하듯이 쓴다』책의 저자인 강원국 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은 글을 쓸 때, 자신이 잘 아는 한 명의 독자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 한 명의 독자가 좋아하고 만족할만한 글인지를 생각하며 쓴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아내에게 손편지를 쓴 적은 있지만 글을 써본 적은 없다. 강원국 님처럼 글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롯이 아내만을 독자로 떠올리며, 아내가 좋아하고 만족하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글을 말이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생각하고 글을 쓰니 그 독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도 되고 한편으로는 염려도 된다. 아내가 이 글을 읽고 감동받아 눈물까지 주르륵 흘리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조금이나마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은 모자란 남편과 함께 했던 지난 세월들을 아내가 썩 나쁘지 않았다고만 회상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