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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다람쥐 Aug 15. 2021

이 여름의 끝을 잡고...

추억을 소환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새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너무 더웠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날씨가 변했다. 이제는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시원하다 못해,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불을 덮어야 했다. 어느덧 올여름도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물론 여전히 낮에는 덥다.) 


어젯밤에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할 때였다. 싱크대 앞에는 자그마한 창문이 하나 있는데, 그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세차게 들어왔다. 꿉꿉하지 않은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었다. 바람을 얼굴과 머릿결에 맞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갑자기 흥이 올라 신나는 노래를 듣고 싶었다. 유튜브를 켜 90년대 여름 노래를 틀었다. 블루투스를 연결해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물론 이웃들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약하게) 막상 찌는듯한 무더위가 한창일 때는 여름 노래를 들을 기분이 그다지 나지 않았는데, 여름이 끝무렵에 접어드니 아쉬웠나 보다.


인간은 추억으로 먹고 산다고 한다. 과거의 노래는 나의 흥만 올려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잊고 살았던 당시의 추억들을 소환했다. 있었는지도 기억조차 안 나던 그때의 시절을 말이다.    


1. UN의 '파도'

<출처 : 유튜브 정원이의 감성노트>

나는 01년도에 대학을 들어갔다. 20살만 되면, 대학만 들어가면, 누구도 관여하지 못하는, 내 인생을 살 거라고 벼르고 있었다. 당시 나는 망나니였다. 매일 당구를 치고(고3 가을에 시작했던 당구는 대학교 1학년 때 250이 됐다), 수업을 째고 잔디밭에서 술 먹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일상이었다.


대학교 입학 이후에도, 같은 동네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주 노래방을 갔다. 당시 여름에 UN의 '파도'가 유행이었다. 너도나도 '오우 오~~~'를 부르짖으며 양팔을 번갈아 휘둘렀던 기억이 난다.(지금 생각해보니 우리의 몸동작은 'DOC와 춤을'의 관광버스의 그것과 더 비슷했던 것 같다.) 당시 대학 신입생이었던 우리는 UN의 멤버 중, 김정훈을 부러워했다. 똑똑한 데다(서울대 치의예과 출신)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잘 생기고, 말도 잘하고...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었지만 김정훈은 얄미웠었다. 


2. 이정현의 'Summer Dance'

<출처 : 유튜브 캐내네 뮤직>

대학교 때, 2살 어린 같은 과 아이를(아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좋아했었다. 우연히도 사는 곳이 근처여서 함께 집에 가는 길이 잦았고, 저녁에 둘이 놀이터 벤치에서 자주 만나 이야기를 했었다. 그 아이는 이정현의 노래를 참 잘 불렀다. 특히 '줄래'는 춤 동작까지 똑같이 따라 했다. 여름 노래인 'Summer Dance'를 불렀던 것은 아니지만 이정현의 노래를 들으니 오랜만에 그 친구가 생각났다. 지금 그 아이는 어디서, 뭐하고 살고 있을까?(이미 결혼하고 두 아이의 아빠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잘못인 걸까?) 그리고 당시 함께 어울렸던 대학 친구들이 떠오른다. '다들 잘 살고는 있을까?...' 어젯밤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이, 함께 철없이 자유를 만끽했고, 얼마 못가 취업 때문에 고생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서도 바로 잠들지 못했다. '대학 친구들에게 연락해볼까?'라는 생각에 말이다.        


3. 버즈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출처 : 블로그 Oddppo>

04년 1월에 군에 입대해서 06년 1월에 제대를 했다. 당시 MP3는 소위 말하는 군바리들의 필수품이었다.(나는 아이리버 MP3를 사용했는데, 고장이 나서 휴가 나오자마자 집이 아니라 수리센터 먼저 들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최애 라디오는 박철의 '2시 폭탄'과 정지영의 '스윗 뮤직 박스'였다.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버즈였다. 입대할 때는 나의 우울한 기분을 버즈의 '모놀로그'가 달래줬고, 어느덧 수교(교도관 출신이라 병장이 아니라 수교라 부른다.)가 됐을 때는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내 들뜬 기분을 대변해줬다. 


나는 지금도 버즈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현재 8살 6살 두 아이들이 있는데, 언젠가 가족밴드를 결성할 예정이다.(이를 위해 나는 2년간 드럼을 배웠다.) 그리고 첫 번째 연주곡으로는 가족의 동의 없이 내 마음대로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으로 정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가슴이 두근댄다. 하루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외에도 추억 가득한 여름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 DOC의 '여름 이야기',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정말 오랜만에 듣는 문차일드의 '태양은 가득히', 그리고 신화의 '으쌰 으쌰'까지. 혹시 지나가는 여름이 아쉽다면, 그리고 과거의 청춘을 소환하고 싶다면 90년대 여름 노래를 모아둔 이 유튜브 콘텐츠를 추천하다.(URL : https://youtu.be/ob8tsW_veP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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