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어떤 기업이 투자를 잘 받을 수 있는가? - 사례가 주는 교훈
『3부. 어떤 기업이 투자를 잘 받을 수 있는가?』 편에서는 정부기관과 민간 투자기관에서 투자를 결정할 때 어떤 기준을 두고 기업을 평가하는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부의 다양한 사례에 있는 상당수의 창업주들이 초기에는 여러분과 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창업을 하게 된 생계형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 불과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죽의 김철호 회장은 외환위기 때 빈털터리가 되어 공터에서 리어카로 호떡을 팔고 있는 호떡장사에 불과했고, 이삭의 김하경 사장은 남편의 발병으로 전업주부에서 토스트 장사로 시작했다. 내가 만나 보았던 식당 주인들도, 대리운전기사님들도,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도 한결같이 이전에 대기업에 있었거나, 크게 사업을 하셨거나 하며 하나같이 사연이 없는 분이 없었다. 그런데 2부에 소개된 창업주들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1. 처음엔 바닥에서 출발했다.
학벌이나 나이, 집안 배경과 무관하게 처음엔 무일푼에서 혹은 아주 작은 가게에서부터 출발했다.
2. 실패를 극복하고자 했다
대다수 창업주들이 실패를 경험한 분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일어서기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재기의 희망을 찾아냈다.
3. 관찰의 대가들이다
모두 하고 있던 일에서 열심히 관찰했던 사람들이다. 실패 속에서 실패한 원인을 찾아내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다른 가게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개발했고, 틈새시장을 찾아냈다. 이런 것들은 관찰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4.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몰입했다
창업 초기에 정한 아이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몰입을 했다. 몰입을 통해 품질을 높일 수 있었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발해 낼 수 있었다.
5. 살고 있는 동네에서 시작했다
대부분 집 근처에서 시작했다. 자본도 없었거니와 차비, 식비 등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가까이에서부터 시작했다.
6. 고객 타깃을 아주 좁게 잡았다
거창하게 4,500만 국민들 대상으로, 300만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등 타깃을 넓게 잡지 않고 동네의 새벽길 학생들, 치맥을 즐기는 동네 사람들, 놀이터를 지나가는 아이들 등 소수의 고객들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키워 나갔다.
7. 꿈만 꾸지 않고 이루려고 노력했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하지만 꿈을 이루려는 땀과 노력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루어냈다.
8. 작을지라도 창업자금을 손수 마련했다
처음부터 빚을 내어 사업을 한 게 아니라, 자기가 벌어서 작은 가게를 빌릴 정도로 창업자금을 모았다.
9. 차별화된 상품을 가지고 출발했다.
모두 아이디어에서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고객들이 볼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제품을 성공으로 연결했다.
10. 사람들과 가치를 공유했다.
자기의 이익을 채우기보다는 주위 사람들과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에도 언급되겠지만 사회적 가치는 최근 투자의 기본처럼 되어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
물론 다른 성공 이유도 많겠지만, 누구나 쉽게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것들이다. 본서를 읽고 있는 여러분 또한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이유들인 것이다.
3부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투자기관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굳이 본서를 통해 언급하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에 대한 결정 이전에, 투자를 받는 기업 관점에서 투자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상기하기 위해 2부의 사례들을 정리해 보았다.
생각해 보니 중요한 사실을 빠뜨린 것 같다. 투자를 받기 이전에, 사업을 하기 이전에,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남들 밑에서 주는 월급 받으며 내 꿈을 포기하며 사느니 차라리 사업을 하겠다며 창업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만만하지가 않으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창업은 의도하지 않게 많은 희생을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폐업률이 높은 우리나라의 기업 중 상당수가 준비되지 않은 창업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2013년 중소기업청에서 조사한 창업기업 실태조사에서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자금 확보의 어려움(52.7%), 실패 및 재기의 두려움(32%), 경제활동 문제(28%), 지식, 능력, 경험 부족(18.8%), 아이디어 및 아이템 부재(5.6%), 부정적인 사회분위기(2.1%), 지인의 만류(1.1%), 기존 직업 활동제한(0.3%) 등의 이유를 꼽았다.
이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풍부한 자금을 쏟아붓는다면 사업이 잘 될까?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실패 및 재기에 대한 걱정 없이 지원제도가 마련된다면 사업이 잘 될까? 지식, 능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지원해 준다면 사업이 잘 될까? 아이디어와 아이템, 특허를 맘껏 준다면 사업이 잘 될까? 과연 그럴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장이 부러운 이들에게 묻고 싶은 말!
필자가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쯤 되었을까? 내가 다녔던 대기업에 영업차 방문한 적이 있다. 마침 화장실에서 입사동기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나를 보더니 내가 참 부럽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넌 네 맘대로 사업하잖아? 네 맘대로 돈 벌고 하고 싶어 하는 네가 부러워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자기도 나가서 사업을 할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물었다. ”너, 집에 생활비 얼마씩 들어가냐? 만약 다음 달 월급날에 월급이 안 나온다면 어떡할래? 그리고 다음다음 달에도 안 나온다면? 견딜 수 있겠냐? 애들 학원에도 못 보내고, 쌀이 떨어져 처갓집에 밥 먹으러 가자고 한다면 네 마누라는 어떻게 생각할 것 같냐? 네가 돈 못 벌어오니 마누라에게 나가서 대신 돈 좀 벌어다 줄래?라고 네 마누라에게 말할 수 있어? 네가 지금 주는 월급 꼬박꼬박 나오니 배 부른 소리 하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사실을 네가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와서 사업해라! “ 라며 화장실에서 한 시간 동안 열변을 퍼부었다. 사람들이 있건 없건 상관이 없었다. 내가 겪어 온 일들을 내 겉모습만 보고 사장이 될 거라는 철부지(?) 동기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월급쟁이도 사업자더라. 사장들은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있다. 넌 사장이 투자하는 사업가다. 근데 넌 매달 투자자금을 밀어주면 그 돈을 어떻게 쓰냐? 학원비로, 생활비로 다 날려 버리지? 그러면서 무슨 사업을 하겠다고 그러냐? 누구보다 든든한 투자자가 너를 밀어주고 있는데도 네가 불만이라면, 넌 나와서 사업하면 진짜 개고생 한다. 차라리 월급으로 부동산 투자하고, 주식 투자를 해라. 넌 망해도 네 사장이 투자금 또 밀어주잖아. 그래 보고 자신이 생기면 네가 직접 나와서 회사를 차려 “라고 하자 그제야 수긍하고 난 안 되겠다며 회사 잘 다니겠다며 헤어졌다. 그 친구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회사에 계속 고참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 사실을 창업하고 싶어 하시는 모든 분들께 들려 드리고 싶다.
본서에서 소개되는 사장님들, 특히 실패를 겪고 일어선 사장님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감이 든다. 이 분들이 실패를 겪고 일어설 때까지 어떤 고생을 했을지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사업 실패 시의 고통을 뼈저리게 겪으신 분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책 한 권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영화를 통하여 그분들의 실패 과정을 소개한다 해도 독자들이 이해할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나의 초보 창업 일지
나의 첫 번째 경험은 창업한 지 두 달이 지난 99년 1월경이었다.
당시 나는 유공 울산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유공이라면 울산 어느 주점에 가서도 유공 작업복만 걸치고 있으면 외상으로 맘껏 먹을 수 있을 만큼 좋은 직장이었다. 사택도 제공했다. 정유공장이니 기름값도 적게 들었다. 3년이 지나면 사택도 분양받을 수 있었다. 24시간 공장을 운영하던 때라 삼시 세끼 회사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98년에 과장으로 진급까지 한 터였다. 7년 만에 과장을 달았으니 이만하면 직장생활에 무리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만두고 창업을 선택했다. IMF 시절이라 국내의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이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 대졸 사무직을 제외한 고졸, 전문대졸 대상으로 회사를 분리한다며 명예퇴직을 권고하고 있었다. 공장에 다니던 터라 당시 부서의 50% 이상이 명예퇴직 대상이었다. 회사에서 정한 방침이라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다른 회사 소속이라는 건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신참 과장인 나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새로 생긴 회사로 가야 할 것인지, 아님 지금처럼 남아 있을 것인지 하는 물음이었다. 누가 봐도 뻔한 선택이었다. 모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분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는 대졸자들만 남게 된다.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일도 많을 것이다. 원치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신규 회사는 대부분 같은 처리라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일도 지금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생을 각오하려면 남아 있고 편하게 생활하려면 그 회사로 가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그러던 중 부장님을 보았다. 10년 후 나의 모습. 그리고 내게 물었다. “나는 10년 후 저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부서원들을 이끌게 될 것이다.
과연 나는 저 자리에서 회사의 방침을 거역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부장이라 더더욱 회사 눈치를 보게 될 것이고, 설사 내 마음이 다르다 하더라도 회사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러고는 내 인생을 남들에게 좌지우지 맡기지 않겠다며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했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무모하게 창업을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창업의 결과는 혹독했다.
당시 울산에서 창업을 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처가 식구가 있는 서울로 가자 “로 서울 낙성대 까치고개에 2평짜리 가게에서 컴닥터 119 가맹점으로 시작했다. 정유공장 3,0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의 PC와 공정 시스템, 시스템 개발까지 하던 터라 PC수리점은 무난한 아이템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순식간이었다. 당시 중고 486 컴퓨터 판매를 통해 수익을 벌어야 했지만 팔 재간이 없었다. 결국 자금은 금세 바닥났고, 어쩔 수 없이 손해 보더라도 팔 수밖에 없었다.
두 달여 만에 자금은 바닥났고,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 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어린 두 딸을 하나는 업고, 하나는 손에 잡고 매일 가게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었다. 하지만 집에 쌀이 떨어지자 난 도시락을 그만 싸 달라고 했다. 장모님이 1층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던 터라 1층에 가서 식사해라 하고 난 만날 사람 있으니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도 된다도 얘기했다. 그러곤 며칠간을 화장실의 식수로 끼니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차마 부끄러워 말하지 않고 싶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창업의 결과를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20년 전의 아픈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내가 그토록 준비되지 않은 창업의 결과를 알기에, 나는 창업을 권장하고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결코 권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겪은 아픔 때문이다. 지금도,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말하는 이유도 절대 준비된 창업을 하지 마라는 것이다.
이만큼 말하는데도 그래도 창업하고 싶다면 꼭 준비된 창업을 하라.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투자 기준들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준비된 창업의 요건에도 해당한다. 이들 조건들은 준비된 창업을 위한 요건이자, 투자를 유치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자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위한 요건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장수하는 성장기업의 요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