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36조 원 규모 미국 투자 결정이 자동차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월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기술자 300명 구금 사태로 현대차의 미국 전략에 차질이 예상됐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 한국산 자동차 관세 15% 인하 확정, 125조 원 규모의 역대 최대 투자 발표까지 이어지며 정의선 회장의 미국행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36조 원 규모 미국 투자 결정이 자동차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월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기술자 300명 구금 사태로 현대차의 미국 전략에 차질이 예상됐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 한국산 자동차 관세 15% 인하 확정, 125조 원 규모의 역대 최대 투자 발표까지 이어지며 정의선 회장의 미국행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는 조지아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다. 11조 원이 투자된 이 공장은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전기차를 연간 30만 대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생산 기지다. 이미 작년 10월부터 아이오닉 5 생산을 시작했으며, 2028년까지 생산 능력을 연 50만 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조지아주는 이 공장 유치를 위해 1,100억 원을 투입, 전용 공항 건설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9월 초,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메타플랜트와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하며 한국인 기술자 300여 명이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수갑을 찬 직원들이 연행되는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됐고, 공장 준공이 최소 3개월 이상 지연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15년간 공들여온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전략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의선 회장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9월 중순, 조지아 공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10월에는 플로리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 “한국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며,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APEC 정상회의 참석을 독려했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260억 달러(약 3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전략은 주효했다. 11월 14일, 한미 양국 정부는 무역 및 안보 협력 공동 팩트시트를 발표하며 한국산 자동차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2월 1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 조치를 11월 1일부터 소급 적용한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관세 인하로 현대차와 기아가 연간 4조 4,0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세 부담 완화로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3만 달러 차량에 부과되던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관세가 4,500달러로 줄어들면서 가격 경쟁력이 향상됐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 메타플랜트와 앨라배마 공장의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로 위축된 전기차 판매를 하이브리드 모델로 보완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11월 16일, 현대차그룹은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 직후,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125조 2,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직전 5년 투자액인 89조 1,000억 원보다 36조 원 증가한 사상 최대 규모다. 로봇 완제품 제조 및 파운드리 공장 건설, 서남권 1GW 규모 수소 플랜트 건설 등의 계획이 포함됐다. 정의선 회장은 “AI 및 로봇 산업, 그린 에너지 생태계 발전을 통해 미래 기술 발전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현대차그룹은 1차 협력사 240곳이 올해 부담한 대미 관세를 전액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협력사들이 조지아·앨라배마 공장에 부품을 공급할 때 발생하는 관세를 현대차그룹이 매입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는 구금 사태로 악화된 현지 여론을 진정시키고, 국내 협력사와의 상생 의지를 보여주는 행보로 풀이된다.
신한투자증권 박광래 연구원은 “환율 상승, 관세 인하, 고수익 차종 믹스 개선으로 현대차그룹의 이익 체력이 강화되고 있다”며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는 캐즘 현상 속에서 하이브리드 라인을 보유한 현대차·기아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나증권 역시 “11월 미국 자동차 시장 둔화는 아쉽지만, 현대차·기아가 하이브리드차 위주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점은 주가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4~5년 안에 전기차 캐즘은 끝나고 전기차가 주도하는 시장이 도래할 것”이라며 “2029~2030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은 이 시기에 대비해 조지아 메타플랜트 생산 능력을 2028년까지 연 50만 대로 확충하고, 하이브리드 모델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는 투 트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의선 회장의 미국행은 단순한 구금 사태 수습을 넘어선 전략적인 행보였다. 관세 협상 타결,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강화, 미국 시장 내 현대차그룹의 입지 확고화가 궁극적인 목표였다. 조지아 사태는 위기가 아닌 미국 전략을 재점검하고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36조 원 투자의 진정한 결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