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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고스 Jul 02. 2022

당신이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없습니다.

'나도 알아요'라는 말습관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일하는(스타트업 식으로 말하면 Onwership이 있는) 직원이라면 직장에서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때로는 한 달 내내 하루에 본업을 하는 시간보다 말을 하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 (나의 직업은 무려 모바일 앱 개발자이다.)


업무는 협상의 연속이다. 모바일 개발자라고 하더라도 서버 개발자와 기획자의 협조를 받아야 하며, 때로는 경영진의 OK를 받아내기 위해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말을 하는데 시간을 쓸 때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분명한 이득일 때만 그렇게 해야 한다. 나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협상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요즘 협상 관련 책을 읽다 보면 부드러운 리더십이나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사학적 표현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하는데, 그 책을 쓴 사람들은 그쪽으로 타고나거나 꾸준히 노력을 해온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이제 하나씩 실천해보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면 분명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모든 이의 말을 경청하지 못할 때도 있으며, 사안의 시급성이 매우 높아 팩트체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말을 뱉어내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 이제 갈등의 시작이다. 여러분은 당신의 상사 또는 동료와 갈등의 골이 깊어져, 서로 과거의 일까지 들추어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의 상사는 스타트업의 대표라 1시간 후에 미팅 3개가 연속으로 잡혀 있어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과연 이 이슈를 세련되게 다루었을까? 모든 것이 통제되고 준비된 상황에서 상대에게 정확히 이해될 수 있는 말을 골라서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당신이 이 기회를 놓치면, 3개월간의 강도 높은 업무 비효율을 감당해야 하며, 당신의 동료들 일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사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는 '나 이렇게 말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하면 퇴사해야 할지도 몰라.' 특히 상대가 권위주의적인 조직에서 오랜 시간 몸을 담았던 사람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지기도 한다.(스타트업에도 이런 성향의 사람이 굉장히 많은 수가 존재한다.)


가끔씩 그런 사람들과 말을 섞다 보면 "나도 알아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래서 나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근거로 들고 싶은 팩트가 있으면 '먼저 상대가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의 지식수준을 파악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상대의 지식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매번 질문을    없는 노릇이고, 일단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려고 계속 질문을 하다 보면, 상대는 즉시 " 사람이 나를 시험해보려고 계속 질문을 하는 건가?" 하는 방어 태세로 전환해버려서 역시 곤란해진다. 혹자는 "아시다시피...(You Know...)" 같은 상대를 높일  있는 추임새로 말을 시작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는데... 가끔은 이것도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는 생각이  때가 있다. 아시다시피 라는 말을 잘못 꺼냈다가 상대가 진짜로 아시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쉽지가 않다. 아시다시피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많을 때만  동작한다.


사회 초년생의 말은 묵살되기 쉽다. 그래서 "아시다시피"로 대변되는 이런 얄팍한 수 만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150퍼센트 노력을 해야 고작 10퍼센트 정도 반영될 수 있는 것이 사회초년생의 말하기다. 가끔은 말을 듣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저 사람이 "자신은 알고 상대는 모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그 많은 지식 중 저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현 상황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전하기 위해서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끔은 "나도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심리로 그렇게 말하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모르는 줄 알고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나?'라는 수치심의 발현일까?  아니면, 네가 하는 말은 이치에 맞지만 나의 이해관계나 이익에 맞추어 생각해보면 받아들일 수 없기에 "나도 알아요"라는 말로 묵살하는 것일까. 둘 중 하나이거나, 복합적인 문제이거나 아니면 둘 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나도 알아요"를 자주 말하는 말하기 습관이 의사소통과 합리적인 결정에 도달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시간이 없다면 차라리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다시 말해요"라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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