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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Aug 30. 2019

골학

골학 시험이란 무엇인가

“본과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2015년 1월 주말을 넘긴 첫 월요일, 160여명이 모여 있는 1학년 강의실에서 들렸던 끔찍한 인사말이었다.     


 우리 의과대학에는 1월 첫 월요일부터 3일 동안 현 본과 1학년이 예비 본과생에게 골학을 가르쳐주는 전통이 있다. 골(骨)학은 말 그대로 뼈의 학문이다. 뼈를 외운다고 하면 일반인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이미 이쪽(?) 세계에 발 들여놓은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공부량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인데, 어렴풋한 기억으론 어렵긴 하겠지만 그깟 뼈 200개 정도 금방 외우지 않을까 이 정도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싶다. 물론 이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아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내 생각에 의과대학을 처음 설립한 사람은 자신의 결정이 후대에 얼마나 많은 학생에게 고통을 줄 것인지 별 생각이 없었을것이다. 그 땐 알려진 것도 별거 없었을테니. 하지만 현재 의학서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Harrison's  Principle of Internal Medicine의 가장 최근 편이 4000페이지가 넘고, 외과계열의 교과서인 Sabiston Text of Surgery도 2000페이지가 넘는다. 매년 새로운 의학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고 교과서에 실린 내용들은 최소 10년 전쯤에야 밝혀진 것들이라고 하니 의학의 길은 얼마나 방대한가! 그리고 이런 의학의 첫 걸음인 골학을 단순 200개의 뼈를 외우는 거라 생각했던 나는 또 얼마나 순진했던가! 골학은 단순히 우리 몸에 있는 200여개의 뼈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뼈에는 여러 가지 돌기와 구멍, 홈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데, 놀랍게도 이 하나하나에 이름이 붙여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는 이 모든 걸 다 외워야 했다.(골학 수업 첫 날 참 놀랄 만한 일들이 많았다.) 처음 이 끔찍한 사실을 접했을 때 왜 이렇게 쓸모없어 보이는 구조물을 다외워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곧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구조물이 있는 이유는 주변에 신경이나 혈관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깐, 그 요상한 구멍이 존재하는 이유는 거기로 특정 혈관이나 신경이 있기 때문이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홈이 있는 이유 역시, 그 위로 혈관이나 신경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anatomynote.com/human-anatomy/head-skull-neck-anatomy/foramen-magnum-hypoglossal-canal-jugular-foramen-anatomy-superior-view-of-the-skull/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진을 하나 준비했다. 위 사진은 머리뼈를 아래에서 위로 본 모습이다. 머리뼈는 14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위 그림에선 굵은 글씨로 표기된 Ethmoid bone, Frontal bone, Sphenoid, Parietal bone, Occipital bone이 보인다. 그리고 사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골학의 전부였다.(이렇게 5개만 외웠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지만 얼핏 보아도 머리에 얼마나 많은 구멍(foramen)과 움푹 들어간 곳(fossa)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굴(canal), 틈(meatus)도 있고 여기에는 없지만 결절(tubercle), 융기(tuberosity), 돌기(process)등도 있다.(튀어 나온 구조물은 다 같이 결절로 통일시키면 안되는 병이라도 걸렸나...)  빨갛게 표시한 Foramen ovale 라는 구멍으론 찾아보니 삼차신경, 혀인두신경, 부경막동맥 등이 지나간다고 한다.(지금 와서 보니깐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역시 의대공부는 외우고, 잊고, 다시 외우는 과정의 연속인가보다.) 정말 정말 중요해서 꼭 외워야겠다는 느낌이 팍팍 들지 않는가! 물론 나중에 신경외과를 전공하게 될 사람들은 알아야 될 수도 있겠지만... 내 20대를 이런걸 외우면서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P.S  구조물의 이름은 보통 생김새나 관련 해부학적 구조물을 이용해 지어지기 때문에 이를 같이 알고 외우면 더 수월하다. 하지만 문제점이 2가지가 있는데, 첫짼 라틴어기 때문에 어차피 생암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두번짼 해부학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골학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본과 1학년의 대부분의 과목이 생암기가 많다는 점에선 골학이 참으로 적당한 준비운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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