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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Aug 31. 2019

골학

골학 오리엔테이션

 160여명이 모인 1학년 강의실은 맨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선배의 목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겠는 이 공간은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을 앉힌다'는 기능만을 목적으로 디자인된 것 같았다. 사람들간의 간격도 너무 좁아 책을 놓을 공간도 부족했고, 가끔씩 한숨이 나오면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해야했다. 그렇지만 정신 없이 지나가는 페이지 앞에 아무도 불평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선배는 수업 시간에 비해 내용이 너무 많으니 ‘나중에 한 번 보세요.’ 신공을 펼치고 있었고 "여러분 이건 나중에 배울 해부학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 라며 모두의 마음마저 불편하게 먼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대 교수님들이 쓰셨던 말투와 정말 닮았던 것 같다. 역시 보고 배운게 그런 것 밖에 없으니 자기도 모르게 체화(?) 되는가 보다...


 점심 때가 되자 8명씩 한 그룹이 되어 선배 2명과 학교 주변 식당으로 향했다. 매마른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다. 다른게 아니라, 이 1시간 동안은 요상한 뼈 용어를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정규 수업도 아니고 실제 성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건지....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지만, 그 따스한 말들은 마치 물에 섞이길 거부하는 기름과 같이 나의 곁에만 맴돌고 있었다. 남을 편하게 해주는 말들은 왜 정작 가장 필요한 시기엔 효력이 떨어지는지. ‘어차피 나중엔 이걸 다 외워야 된다는 거잖아!’ 분명 내면의 나는 그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점심을 과연 잘 먹을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첫 숟가락이 들어가자 거짓말같이 침샘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쓰려면 포도당을 충분히 섭취해야지! 뭐 그런 이유를 대면서 잘 먹는 나를 설명했던 것 같다. 내가 살이 빠질 수가 없는 이유다.  

  

긴장을 하면 교감신경, 휴식을 취하면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된다. 고로, 긴장을 하면 소화관 운동과 소화액 분비가 억제되기 때문에 입맛이 떨어지는게 맞다... 

출처: http://study.zum.com/book/11743


 오후 몇 강의가 끝나고 진짜 뼈를 보며 배운 내용들을 점검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학교에 뼈 상자가 몇 개 있는데 이번 강의를 위해 미리 빌려두었던 모양이었다. 꽤나 비싸기 때문에 절대 잃어버리거나 파손시키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박스 겉모양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 만큼 뼈도 조금씩 부서져 있어서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어? 왜 이 구조물이 이 뼈에선 보이지 않지? 변형인가?” 그럴 때 마다 각 조에 배정되어 있었던 선배들이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던 것인지, 파손되어 보이지 않는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방학인데도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시는 선배들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나 같으면 여행을 가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거 같은데.

 “형, 형은 왜 저희 가르쳐주는 거에 지원했어요?”

 “너네들 고통스러워 하는거 보려고. 이 순간을 1년동안 기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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