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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Jan 06. 2020

의사가 된 의과대학 학생

인턴으로서 느낀 의사로서의 삶

 입시를 준비하던 8~9년 전에는 수시가 한참 확대되던 때여서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왜 내가 이 과를 들어가고 싶은지를 입학사정관들에게 설득해야 하는 중압감에 의과대학에 진학하려던 몇 친구들은 왜 자신이 선천 질환이 없는가 한탄하기도 했었던 거 같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순수하달까, 옅은 안개와 같은 의과대학의 형상을 어떻게든 나의 글에 잡아 넣으려고 했었다. 뭔가 잘 모르지만 왠지 이런걸 보고 배울 것 같은 그 미지의 공간에 대한 꿈을 꾸며 대학 졸업 후에 이런 의사가 되겠노라 나의 포부를 한자 한자 그 작은 네모칸 안에 적어 나갔다.

 그리고 그 네모칸 안의 글들이 힘을 내어 좀 더 커다란, 네모난 의과대학 건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곳에서 보낸 네모난 삶들.. 4년이라는(예과는 제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사람의 몸에 대해 알아가고, 희망하고, 좌절하고, 웃고, 울었다. 굴곡들을 거쳐 나가면서 앞으로의 의사로서의 상은 조금씩 수정되어 갔고, 졸업할 때 즈음엔 수술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조그마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인턴을 시작한 몇 달 동안에는 병원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와중에 외과를 경험해 보고 싶어 3번 정도 외과턴을 돌게 되었다. 아, 참고로 인턴은 1달에 한번씩 과가 바뀌어서 총 12개의 과를 돌 수 있는데 이 때 다른 사람들과 교환을 하면 돌고 싶은 과를 여러번 돌 수도 있다. 그리고 갑자기 불어닥친 미래에 대한 불확신감과 두려움. 과연 외과 의사로서 나는 환자에 충실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학생 때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기자 심적으로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심지어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단 군대를 가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볼까 고민해보기도 했고, 여러 사람들,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특정 과를 고르게 됐는지 들어보았다.  그 과정에서 나의 의과대학 삶이 어땠을까 하는 것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에  brunch에 글을 쓰기 시작했었고 어찌됐든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지금은 어느 과에 합격하여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미래에 두근거리고 있다.


 병원이라는 곳은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환자, 보호자, 의사, 간호사, 약사, 병리사, 방사선사, 청소부, 운송원... 이들과의 관계가 학생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고 병원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의사란, 특히 환자를 보는 의사란 정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시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어 보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능력하거나 무자비하게 다른 사람의 시간을 강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턴이라는 특성상 특정 과에 속해있지 않아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랬을까, 참 병원이라는 공간에 애정을 붙이기 힘들었다. 모두가 하지 않고 싶어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은 항상 인턴의 업무가 되어, 마치 병원에서의 쓰레기장과 같았고 그걸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 불합리하다고 느껴지지만 외칠 수 없는 나의 처지가 참으로 불쌍하게 여겨졌었다.(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아직 인턴이 끝난게 아니니)


 의사가 병원에서 있는 것이 참으로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병원 밖에서 의사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매우 많다. 정부기관, 기자, 법조인, 제약회사 등등... 하지만 사실 평범한 의사로 남아있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다른 사람이 가는 똑같은 길을 가려고 한다. 물론 그 길도 매우 힘들고 숭고한 길임엔 틀림이 없지만 뭔가 내가 고등학생 때 꿈꿔왔던, 그 옅지만 아름답게 보였던 미래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큰 모험을 하기로 했다. 환자를 보지 않는 의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환자를 보지 않는 의사. 뭔가 팥 없는 찐빵과 같지만 요즘에 팥 없는 찐방이 그래도 꽤 있지 않는가?

가끔은 야채 찐빵을 먹고 싶을 때도 있고, 다른 땐 피자 맛 찐빵을 먹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르지만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 다른 동기들과 다른 길을 가기에 앞으로 나의 모습이 잘 그려지진 않지만, 지금 마치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꿈꾸는 그 대로의 미래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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