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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Jan 19. 2020

인턴이 소개하는 대학병원 이야기

많이 알수록 더 잘 치료받을 수 있다

 의사 자격증을 얻고 인턴으로 근무한지 벌써 11개월째가 되어간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중환자실, 응급실에서 일하고 4개의 병원을 돌면서 학생 때 보고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중에 좋은 기억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지만 어찌 됐든 의사로서 환자와 상대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가장 많이 생각나긴 하는 것 같다. 주치의와 교수님께선 여러 검사(피 검사, 소변 검사, 조직 검사, 영상 결과 등등)를 통한 앞으로 치료 계획 수립 및 수련/연구로 바쁘시기 때문에 환자와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여러가지 일들이 인턴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온갖 질문과 불평불만을 듣는 것도 인턴의 잡(job)이된다.


 환자들의 여러가지 불만 사항을 듣다보니 공통적인 것들이 많았다. 이 검사는 왜 하는건지, 동의서는 왜 받는 건지, 왜 빨리 치료가 안 되는건지 등등. 수많은 환자들에게서 비슷한 내용들을 설명하면서 환자들이 대학병원 시스템과 의사들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된다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대학병원 의료진들이 매우 바쁜 상황이다 보니 환자들을 하나하나 다 챙겨줄 수 없는 환경이 이런 문제점을 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지만 그것이 단시간에 고쳐지기엔 힘들기 때문에 기본적인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환자에게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대학병원 의사들을 분류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교수진이 있다. 교수진은 환자가 특정 병원에 오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긴 하지만 사실 만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정말 정말 바쁘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교수는 내가 본 직업군 중 가장 바쁘기로 1등 아니면 서러울 정도다. 기본적인 대학 교수의 업무를 모두 하는데다가 환자까지 봐야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월급은 의과대학과 병원 두 군데에서 받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내가 3월에 뵀던 흉부외과 교수님은 일주일에 집에 있는 시간이 12시간 정도 된다고 하셨다. 모든 교수들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여튼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쏟기 어려운 환경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환자 입장에선 교수 보러 병원 왔는데 회진 때만 잠깐 얼굴을 비추니 참 야속하긴 하겠지만 상황이 이런걸 어쩌랴..

 두번째론 레지던트가 있다. 보통 주치의라고 지칭되는 의사가 여기에 속한다. 레지던트는 과에 따라서 3년 혹은 4년의 수련을 받는 의사들로 이 때부터 특정 과 소속이 된다. 내과 레지던트, 외과 레지던트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때부터 그 과에서 할 수 있는 고급 술기들을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치의 혹은 수술 보조를 맡는다. 문제는 소위 말하는 유명한 대학병원의 경우 환자가 넘쳐나기 때문에 주치의 한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매우' 많다. 주치의들은 각각 환자의 상태 파악도 해야되며, 필요시 다른 과에 협진 요청도 해야하고 상황에 맞게 오더도 챙겨야 하는 와중에 교수님 회진 준비 자료도 만들어야 한다. 의사를 소제로 하는 드라마를 보면 의사들은 풀 메이크업에 의학적인 토론도 하는, 뭔가 우아한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내가 직접 본 레지던트들은 일단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계속 모니터를 바라보는 쇠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죄수같이 보이기 까지 한다. 주치의란 환자와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하지만 검사 수치로 표현되는 '환자들의 정보'에만 능통할 뿐 환자 그 자체에 가까이 있다고 보긴 힘든 것 같다.(20명을 신경 써야 하니깐... 이해는 간다)

 마지막으로 인턴이 있다. 인턴은 주치의가 낸 오더를 수행하는 역할과 드레싱을 보통 담당한다. 이 환자가 어떤 검사가 필요한 것 같다고 오더를 내면, 그 검사 동의서를 받기도 하고 만약 환자 상태가 나빠져서 동맥혈 검사가 필요하다고 오더를 내면 피를 뽑으러 가기도 한다. 만약 환자가 잘 삼키지 못하면 L-tube를 넣으러 가기도 하고 관장이나 소변줄을 넣으러 가기도 한다. 그 외에 수술이 아닌 상처부위가 있으면 소독하는 것도 인턴이 하는 업무다. 딱 봐도 알 수 있듯이 환자에게 직접적인 컨택이 필요한 일들이 많다. 그래서 난 사실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의사는 인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쓰는 글들은 내가 인턴으로서 병동, 수술방, 중환자실, 응급실, 외래에서 느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쓰여질 것이다. 이런 점들은 환자 혹은 보호자들이 알고 있으면 참 좋을텐데 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내 글들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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