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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Jan 21. 2020

피는 왜 이렇게 많이 뽑는건가요?

"피 또 뽑아요?"


인턴하면서 하루에 한번은 들었던 질문이다.

본인은 치료 받으러 왔는데 몸에 있는 피 다 뽑아갈까봐 많이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뾰족한 주사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감각을 싫어하기 마련이니.


피 검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정맥혈과 동맥혈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정맥혈이란 산소가 적은피, 동맥혈은 산소가 풍부한 피로 보통 전자는 정맥, 후자는 동맥이라 불리는 혈관에 존재한다. 

정맥이 비교적 피부 표면에 위치해 있고, 압력이 낮아 지혈이 용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채혈은 정맥혈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좋다. 흔히 볼 수 있는 고무줄 같은 것을 팔에 감은 뒤 주사바늘을 찌르는 방법으로 채혈하는 것이 정맥혈 채혈 방식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꽤나 많다. 혈액 성분(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등) 및 전해질(나트륨, 칼륨, 염소 등등), 간 효소 수치, 신장 수치부터 시작하여 혈액형 및 균 동정까지 진행할 수 있다. 보통 수혈을 하기 전에 혈액형 확인을 위해 피 검사가 나가게 되는데 안 그래도 피가 부족한 상황에서 또 피를 뽑는다고 해서 의문을 갖던 환자분들이 특히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균 동정을 위해선 서로 다른 2군데에서 20ml 이상을 채혈해야 하며, 간혹 교수님 연구를 위해 추가 채혈이 생기는 경우 50ml까지도 뽑아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채혈 양이 많아지면 뽑히는 사람, 뽑는 사람 둘 다 참 괴롭기 마련이다.


반면 동맥혈 검사가 진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호흡이 어려워 산소를 투여받고 있는 분들의 경우 몸 속의 산소량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동맥혈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또한, 몸 속의 산성도(pH)를 알아보기 위해서 동맥혈 검사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동맥의 경우 보통 눈으로 보이지 않는 몸 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손으로 맥을 짚어 위치를 가늠한 경우 주사기를 찔러 채혈한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촉각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고급 술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보통 인턴들의 업무로 배정되어 있다. 보통은 손목에서 채취하는데 용이하지 않은 경우 발등 혹은 사타구니에서도 진행될 수 있는데 환자분들의 반응을 보면 이게 정맥혈 채혈보다는 더 아픈 것 같다. 대신 이건 0.5ml 정도만 뽑으면 돼서 혹시나 피가 많이 빠져나갈까 염려되시는 분들에겐 더 좋은 검사 일수도 ^^. 물론 정맥보다 압력이 더 센 곳에서 뽑는 만큼 지혈을 더 열심히 해야하는 번거로운 점이 동반되긴 한다.


보통 오전 중에 환자 상태 파악을 위한 정규 채혈이 진행된다. 주치의가 판단하기에 결과를 매일 확인해야 한다고 보는 환자들은 매일 피를 뽑을 것이고, 2일에 한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빈도가 더 줄 수 있다. 갑자기 열이 나면 균 동정과 염증 수치를 비롯한 혈액 검사를 위한 피 검사가 필요할 수 있고, 특정 시술이나 수술 전에도 피 검사가 필요하여 하루에 2~3번도 피를 뽑아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호흡이 가쁜 분의 경우엔 까다로운 주치의를 만나면 1시간에 1번씩 동맥혈 검사를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피를 많이 뽑으면 빈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350ml짜리 농축 적혈구 수혈 한번 했을 때 빈혈 수치가 1정도 올라간다는 것을 봤을 때 10~20ml 정도의 채혈로 빈혈이 생기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겠다. 


인턴을 하면서 채혈을 진짜 많이 해봤지만 가끔 나도 환자로서 채혈을 당해보면 저절로 눈을 질끈 감게된다. 통증이 있는 이유는 다가오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인데,주사기에 찔리면 아플걸 뻔히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사실이 얼마나 불편한가! 지금까진 여러 검사를 위해 불쾌한 검사과정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앞으론 아프지 않으면서도 검사가 진행될 수 있는 신기술이 발명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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