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의 시작
4명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하는 요즘, 수술을 받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정상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수술장은 미지의 공간 그 자체이다. 저 멀리에 있는 피라미드보다 우리 동네 대학병원에 있는 수술장이 더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당연 잘 모르기 때문이고 잘 알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것은 괜한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수술 전에 환자들이 나(=인턴)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잘 부탁한다고 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러면 이제부터 간략하게 수술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참고로 인턴에게 아무리 부탁하셔도 수술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ㅠㅠ)
수술 스케쥴은 주치의가 잡는다. 그날 몇번째 수술인지 여쭤보려면 주치의에게 여쭤봐도 되고, 그냥 간호사에게 여쭤봐도 전산에 올라와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다. 각 수술마다 예상 소요시간이 있고 보통 첫 수술이 8시쯤 시작하기 때문에 내가 대략 몇시쯤에 수술장에 내려가겠다라는 것을 계산할 수 있다. 다만, 수술이라는 것이 같은 이름의 수술이라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이 꼭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특정 과에서 수술할 수 있는 수술방 수가 특정 시간을 넘어서면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만약 산부인과 수술을 받는데 원래 3시로 예정이 되어있었다고 하자. 하지만 만약 앞 수술이 지연되어 5시쯤 시작할 수 있게 되어도 그 수술방에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하면 다른 수술방에 원래 잡혀있던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반대로, 다른 과에서 배정받은 수술방이 일찍 끝나면 그 수술방에서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더 일찍 수술을 할 수도 있게 된다.
수술을 하면 전날 전처치를 하게 된다. 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금식을 해야하며 관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소변 보는 것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차피 수술 전에 소변줄을 꽂기 때문에 그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술 전에 동의서는 필수이다. 모든 의료적 시술은 득과 실이 존재한다. 다만 득이 실보다 크다고 예상되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 뿐이다. 수술도 마찬가지여서 수술 후 후유증이 100% 남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이고, 이것은 꽤나 중요하기 때문에 인턴이 아니라 주치의가 하게 된다. 왜 수술을 받고, 어떤 과정으로 진행이 되며 수술 후 생기는 후유증으로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 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동의서 설명을 들을 때 경청하는 것이 이후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는 것을 막는 길이다.
수술장까진 보통 이송요원께서 이동시켜주신다. 정말 바쁜 경운 인턴이 갈 수도 있긴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하는 과는 많지 않다. 보통 보호자분들과 같이 이동하는데 수술장 입구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분당서울대학교 병원에선 소아 환자들에 한해 멸균복을 입고 보호자가 수술장 안까지 들어올 수 있긴 했던 것 같지만,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장 안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이후 앞 수술이 끝나고 수술장 안에 정돈이 되면 수술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역시 보통 이송요원이 해주시지만, 가끔 인턴이 가는 경우도 있다. 그 전에 환자 확인이 진행된다. 이름과 병록번호를 다 확인하며, 확인이 되면 보통 수술전 항생제를 맡게 된다. 이 때쯤 되면 환자분들 얼굴에 긴장이 서리는 것이 보인다.
이후 수술장 안에 들어오시면 이송카트에서 수술장 안의 침대로 옮겨간다. 이후 수술 중 심전도, 산소포화도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장치를 붙이게 된다. 수술장 안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춥게 하는 경우가 많아 이 때 환자분들이 많이 추워하신다. 시설에 따라 따뜻한 공기를 넣어주는 장치가 있는 곳도 있고, 그것도 없으면 이불을 하나 더 덮여드린다든지, 따뜻한 물을 안게 해드린다든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마취과 선생님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다시 한번 환자 확인을 하고 마취 과정이 진행된다. 마취 방법 역시 수술 방법에 따라 다른데 큰 수술은 전신마취 하는 경우가 많고, 국소마취나 척추마취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마취라는 것이 사람을 다운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안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좋긴 하다.
환자분이 잠드시면 수술에 맞는 자세를 잡고 수술 부위를 소독약으로 닦게 된다. 어떤 소독약으로 닦느냐, 몇번 닦느냐는 과에 따라, 교수님에 따라 많이 다르다. 감염에 특히나 예민한 정형외과 같은 곳은 3번 정도 닦기도 하지만 보통은 2번 정도로 마무리한다. 이후 멸균된 포로 수술 부위 이외의 부분을 다 덮는다. 수술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멸균된 가운을 입는다. 그래서 수술장은 파란색으로 물들여진 세상이 된다. 그것은 곧 수술이 시작되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때쯤 교수님께 연락을 드린다.
교수님 수술 준비 다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