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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Sep 04. 2019

1교시 - 해부학

본과의 시작

 골학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거짓말 같이 평온한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날씨가 점점 따뜻해 지더니 어느새 3월 달력을 펼쳐야 할 때가 임박해 있었다. 다른 동기들이 어떻게 방학을 보냈는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으려 했지만 누군 벌써 해부학 공부를 다 했다느니, 편입들은 이미 생리학, 생화학, 조직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무성했다. 이런 말들은 듣지 않으려 해도 어쩜 그렇게 귀에 쏙쏙 박히던지. 분명 우리 뇌에는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반대 쪽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역이 있음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마 두 가지 이유 정도가 있었던 거 같다. 첫째론, 중/고등학생 때와 달리 가시적인 목표가 없었던 것 같다. 젊을(?) 땐 의대를 꼭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지만 해부학 단어 몇 개를 더 외운다고 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성적에 연연하는 학생이 아니라는 일종의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오후 4시쯤에 수강 신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들어야 하는 과목들을 확인했다. 대학교의 꽃은 수강신청이라고 생각하는데 본과 들어오면서 그 스릴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어차피 과에서 지정해준, 우리들만 듣는 수업을 선택하는 매우 형식적인 절차였기 때문이다. 항상 수강신청 전승을 했다고 타과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의과대학은 자체 사이트가 있어, 시간표와 강의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수강신청할 때 주제도 주제지만 강의 시간과 강의 장소를 고려해야 하지만, 우린 9시부터 12시까진 1학년 강의실에, 1시부터 5시까진 실험실에 있는 단조로운 생활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강요받았다. 1학년 1학기 과목은 모두 실습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실습은 보통 2시간이 1학점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35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지만 실제 인정되는 학점은 20학점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의과대학 친구들이랑 만나서 "나 20학점 들어~"하면 나의 끔찍한 삶이 폄하되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정말 숨 막히는 시간표다...


 의과대학에 다닌다고 하면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이 해부학 실습인데, 막 본과에 올라간 나 역시 가장 기대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첫 실습도 해부학 실습이었다. 그런데 시간표에 실습이 아니라 위령제를 한다고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P.S 본과 다니면서 3월에 개강하는건 1학년 때가 유일했다 ㅎㅎ... 그 때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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