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다치즈 Sep 06. 2019

1교시 - 해부학

해부학 실습이란

 하얀 천 아래 놓여있는 시신을 외할머니 발인 날 이후로 처음 본것 같았다. 마치 잠을 자고 있는 듯한 평온한 표정, 다만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어두운 색이었다는 정도? 보존액에서 시간의 흐름을 어느 정도 거스르는데 성공했지만, 그에 대한 댓가 같았다. 사실 내가 해부학 실습을 시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었다. 못한다고 중간에 포기하진 않을까, 구역감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진 않을까, 제자리에 주저 앉아버리면 어떡하지. 그런데 예상 외로 담담했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앞으로 해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열정이 오히려 가득했던 것 같다. 실제로도 이탈했던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일단 해부학 실습은 해부학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보통 팔, 다리부터 시작해서 몸통, 마지막에 얼굴 순서대로 이론 학습을 진행하니, 실습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어떻게 접근하는 가를 도와줄 해부학 지침서가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절제하고, 그 때 어떤 구조물을 찾아야 하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는 가가 적혀있었다. 원활한 실습을 위해선 해당 실습에 해당하는 범위를 예습을 해와야 했는데, 그걸 보통 책잡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응해서 칼잡이라는 역할도 있었는데, 책잡이가 지시하는데로 해부를 진행하는 사람을 일컷는 단어였다. 해부학 실습이 진행될수록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칼잡이를 지양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막 학기를 시작한 우리들은 서로 칼을 잡지 못해 안달이었다.

애증의 책

 지침서 외에도 해부학 관련 교과서나, 참고 서적들도 있었다. 보통 동아리 선배들로부터 빌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도 몇권을 얻어서 두꺼운 책 들고 다니는 의대생 놀이를 즐겨했던 것 같다. 정작 많이 보지도 않았으면서...

 

 의과대학은 학기초에 공동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실습 때 필요한 물품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었다. 해부학 실습 때 기억나는 공동구매 물품은 방독면과 눈 보호막이었다. 기본적으로 보존액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물품들인데, 방독면 정도는 돼야 냄새를 막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꽤나 구매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방독면을 착용하면 너무 불편하고, 땀 나서 미끌어져서 나중엔 다들 버렸다는... 결국 그냥 마스크만 쓰고(사실 마스크 써도 냄새 그대로고, 눈도 엄청 따갑다.) 실습을 버텼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1교시 - 해부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