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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Sep 09. 2019

1교시 - 해부학

족보와 옵세

 의과대학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로 족보와 옵세가 있다.


 족보는 쉽게 말해서 기출문제이다(야마라고 부르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다). 의과대학 공부량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작년엔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체크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교수님들 시대에서도 암암리에 유통됐다고 하니, 그 역사가 참으로 유고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특정 교수님들께서는 족보 보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족보집을 들키면 안됐는데 동기 인원이 150명이나 되다 보니, 2번 정도 들켰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기출 문제를 공개하고 매번 조금씩 문제를 바꾸는 것이 좋은데 교수님들께서 매번 그러기 귀찮으시니깐 아예 족보를 통제하시려는 느낌이었다. 

 해부학 실습 시험은 땡시 형태로 치뤄졌는데, 이도 마찬가지로 족보가 존재했다. 그래서 해부학 실습 때 그 구조물들만은 찾으려 노력했었다. 기존 족보에서 벗어난 문제를 '탈족'이라고 하는데 해부학 실습 땡시는 탈족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꼭 2문제 정돈 정말 지엽적인 곳에서 나왔는데 그런 것들도 다 맞추려고 발버둥 쳤던 기억이 있다. 꼭 그런거 맞추려다가 쉬운 거 틀리지


 "너 옵세구나"

 옵세의 기원은 정신과 용어인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로부터 기원한다. 한국어로 강박장애라는 뜻으로, 특정 생각이나 행동을 강박적으로 해야 하는 질환이다. 보통 의과대학 학생에게 '옵세'라는 호칭이 붙으면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사소한 것으로도 불안해하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끈질기게 달라붙는 학생. 보통은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불안해하면서 계속 공부해야 하는 쫄보' 같은 느낌이 강한데, 출석에 옵세시브 한 면이 있어 출석부에 자기 이름 쓴 것을 다 찍어 핸드폰에 기록을 남겨둬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었다. 옵세시브한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하기 때문에 별로 가까이 두고 싶지 않는 편이었다. 나중엔 장난으로 '너 옵세구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여튼, 그 공부 벌래들 사이에서도 '옵세'라는 호칭을 받는 것은 대단한 일이긴 했다. 나는... '생각보단 옵세네'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 급으로 되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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