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흐름을 먼저 잡는다. 생명의 경계 지대를 다룬 서문으로 시작해 1부에선 생명의 시작과 끝을 다룬다. 2부에서는 생명의 특징 6가지(대사, 지능, 항상성, 생식, 진화)를 다룬다. 3부에서는 생명을 정의하려는 실패의 역사를 증식, 자극감수성, 유기물, 원형질, 미시세계, DNA를 주제로 다룬다. 그런 뒤 4부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생명을 바라본다. 바이러스와 같은 하프라이프, 최초의 생명, 모호성, 새로운 이론들을 다룬다. 이를 통해 저자는 생명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으나 그 특성을 통해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꾼다.
자칫 모호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으나, 이 책에서는 곱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지는 밥과 같은 그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기 적절한 지점은 아마 책에서 제시한 물 비유라고 생각한다. 물 분자는 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지만 물 그 자체에 대한 정의가 아니다. 분자 하나로는 물의 특성을 나타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단위를 찾아도, 우리가 생각하는 생명의 특성을 나타내지 않으리라. 다만, 물을 바라보던 관점이 시대를 흐르며 바뀌었듯, 우리의 생명에 대한 관점도 바뀔 것이다.
생각하다 보니 왠지 익숙한 흐름이 아닌가? 자연스레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서 다룬 거시경제가 떠오른다. 경제는 분명 자본가와 노동자, 기업이나 국가와 같은 세부 요소들로 구성되나 이를 합한 거시경제는 다른 특성을 갖기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돈도 그렇다. 돈의 기본 단위는 분명 우리 눈에 보이는 지폐나 동전일 것이나, 돈의 특성은 단순한 그 단위의 합이 아니다. 그렇다면 돈도 다르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관점을 바꿔주는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내 관점도 새롭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생명의 정의라는 답을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었으나, 생명의 특성을 알려주면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기 전 품었던 기대를 벗어났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좋았던 "생명의 경계"에 대한 내용 정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관점의 변화를 주제로 2가지 감상을 이어서 적는다.
(+ 책 중간중간 사회의 모습을 짚는 날카로우면서도 유머 감각 넘치는 문장들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돈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타인의 친절"을 읽은 뒤부터 가지게 된 돈에 대한 내 관점은 '이기심과 이타심이 모두 담긴 매개체'였다. 이유는 심플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분명 돈을 지불하고 그 손에 들린 전자제품을 구매했을 것이다. 이기심에 기반해 당신은 돈을 지불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상품을 얻었다. 반대로 당신에게 그 상품을 판 사람은, 당신의 이기심을 돕는 이타적인 행위를 하면서 그 대가로 돈을 벌었다. 즉, 돈은 나의 이기심과 상대방의 이타심을 변환시켜 주는 매개체다.
"생명의 경계"를 읽는 기간 동안, 이 생각을 한 회사 동료와 나누었다. 그리고 아직 내 생각을 나누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므로, 우선 말보다는 행동으로 내 삶을 좀 더 채워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차를 함께 마시며 돈이 이기심과 이타심의 매개라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는, 자신의 돈에 대한 관념을 말해주었다. 요지는 자신은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말이었다. 돈이 주는 편안함, 안정감, 인정, 풍요로움 등을 위해 그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 말속에서,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그이기에, 간접적으로 내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또 한 번 다른 이의 관점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나는 왜 이 사람을 설득하지 못할까? 왜냐하면 내가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경력도 짧은 일개 엔지니어에 불과하고, 박사 학위나 높은 직급이 있는 것도 아니며,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못하다. 즉, 이 사람의 신뢰를 얻을 만한 권위가 없다. 또한, 그가 이미 가지고 있는 논리는 나의 논리와 다르기에 논리로 그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 논리의 차이로 인해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익숙한 그의 호감을 얻기도 어려우므로, 내가 그를 설득할 방법은 멀고도 험하다.
돈에 대한 그런 관점은 비단 그만이 가진 생각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기심의 관점으로 돈을 바라본다. 물론 그런 관점이 사람들을 좀 더 노력하게 돕고 성장하게 만들며, 이를 통해 사회가 더 발전해 왔다. 그러나, 물극필반이라는 말처럼 오늘날 빈번하게 들리는 몇 백억 단위의 횡령, 사기, 비리 등의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이기심만으로 돈을 바라보는 이런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주식이나 코인에 지나치게 투자하는 경향에도 이 관점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관점도 바꾸지 못하는 나는 사회의 관점을 바꾸기에는 너무 미약하다. 이렇게 고작 몇 시간 만에 적는 글은 나약하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만한 힘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행동을 우선 바꾸어야 한다. 나를 바꾸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만한 접근법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대로 이 사회에 남는다면 사회를 바꾸기보다는 내가 먼저 바뀔 것임을 직감한다. 그렇기에 난 이곳을 떠나, 우선 나를 바꾸어 다른 이들도 바꿀 기회를 엿보고 싶다.
사랑하는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 그 곁을 떠나야 한다. 아이러니하다. 아마 내가 그 존재를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내 욕심이, 편하고 익숙한 삶에서 낯설고 힘든 삶으로 나를 이끈다. 가시밭길임음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택한다면 내가 나일 수 없기에 그저 걸으려 한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하다 보니 내가 이 사람들을, 사회를, 문화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절감한다. 상실의 순간에서야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 이 어리석음이 안타까운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노래 "Let Her Go"가 있어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
2. 역지사지
아내가 먼저 떠나고 비교와 정답을 찾는 이들에 둘러싸여 홀로 남겨진 나는 불안에 떨었다. 오늘 내가 한 행동이 맞는지, 실수는 아닌지, 더 좋은 답은 없을지 생각하느라 잠들기 전까지 쉬지 못하고 고민했다. 그러던 늦은 밤, 다행히도 마음 챙김에서 배운 인식과 호기심을 통해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었다. 그 명상을 통해 이제까지는 내가 불안해질 때면, 아내가 내게 스스로의 길을 찾도록 안심시켜 주었음을 자각했다. 지금은 혼자이지만, 아내가 내게 해주던 말들과 행동들을 떠올리며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좋은 일을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내 마음을 달랬고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이 날 밤의 불안을 통해 사람들을, 정답을 찾길 원하고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좋고 나쁨을 구분하려는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불안한 세상 속 의지할 답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마찬가지의 흐름을 독서 모임의 몇몇 이들에게서도 느꼈다. 자신의 무지나 실수를 인식하고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닌, 기존 믿음을 재확인하기 위해 책을 읽는 이들이 있었다. 여태까지는 그들의 편협함이 답답했고 짜증 났다. 그러나, 아내가 떠난 뒤 혼자 남겨진 이 며칠 동안의 경험으로, 오랜 시간 동안 홀로 불안감과 싸워왔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게 되었다.
정리하면, 나는 또 한 번 겉 넘으며 내 관점에서 남의 행동을 판단해 왔으나, 불안한 상황에 홀로 남겨진 경험에 책과 토론, 마음 챙김에서 배운 내용들을 적용하여 익히는 과정을 통해 남을 이해하고 내 편견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책이라는 타인의 친절 덕분에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고마움을 어떤 식으로든 되갚고 싶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에 당장 갚아나갈 순 없겠지만, 그 방법을 찾아나간다면 분명 그날은 오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