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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n 27. 2023

"대유행병의 시대"를 읽고 나눈 토론에 대한 감상

2020년 9월 13일에 책 "대유행병의 시대" 관련 토론에 참여했다.


토론을 통해 다른 분들의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기에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런 재미있는 토론 뒤에는 언제나 진한 느낌이 뒤따르기에, 이 순간의 감상을 잊지 않기 위한 감상평을 적는다.




토론에서 들었던 느낌은 크게 3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토론에서 논쟁이 되었던 다음 주제와 관련이 있다. 바로,

"의학이나 미생물학의 발전을 대유행병 관리 능력(대응력)의 발전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점은 "착시현상으로 인해 그렇게 보이지만 인류의 대유행병 관리 능력은 발전하지 않았다."이다.


위 주제는 아래 그림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내용을 설명하면 우선 가장 왼쪽에 좌표축이 설명되어 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의학과 미생물학을 나타내는 축이 90도로 교차되고, 그 사이를 45도 각도로 대유행병 축이 지나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다음 순서로 발전이 진행된다.

1. 의학이 "루트 2"만큼 발전한다.

2. 이를 대유행병 축으로 정사영하면 "1"만큼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3. 또, 미생물학이 "루트 2"만큼 발전한다.

4. 이를 정사영하면 대유행병 축에서 "1"만큼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질문을 돌아와서, 우리는 이런 경우를 "대유행병 관리 능력이 "2"만큼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내게는 이 상황이 착시 현상으로 보인다.

위 비유가 너무 수학적인 것 같아 좀 더 물질적인 비유를 들어보겠다.


"올해 임금이 전년 대비 5% 상승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도 5% 발생했다. 이 경우 임금은 올랐을까?"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그렇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임금은 5%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도 5% 상승했기에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다만, 임금이 5% 오른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했다.


인류의 대유행병 관리 능력이 발전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의학이나 미생물학, 통신기술 등의 발전으로 인한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잘 표현해 주는 책 대목은 다음과 같다.

"최근에 발생한 대유행병과 유행병 상황을 보면 가속도가 붙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의학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감염질환의 위협에 있어서는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 (중략) "감염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점점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 86%)


왜 그럴까?

의학이나 미생물학 등이 발전한 것은 분명하나, 우리는 해당 분야에서 얻은 지식을 대유행병 관리라는 분야에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서평에서 정리했던 저자가 정리한 대유행병이 발생할 확률이 증가하는 원인을 살펴보자.


"도시화와 세계화", "기술과 인위적인 환경의 변화", "전 세계의 상호 연결성", "산업화가 환경에 압력으로 작용"


가지고 있는 의학적, 미생물학적 지식을 우리는 그저 전염병이 퍼진 이후의 대응방안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백신이나 치료제,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착시효과를 넘어선 대유행병 관리 능력의 발전을 위해서는, 저자가 주장한 대책들에 기반하여 대유행병의 원인들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하자면,

1. 객관적인 수치 상으로 인류의 대유행병 관리 능력은 상승했다.

2. 그러나, 이는 착시현상으로 실제로는 대유행병에 더 취약해졌다.

3. 그러므로 대유행병 관리 능력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위에서 정리한 토론은 관점의 차이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링크드인 강의 "Effective Listening"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자신의 필터를 통해 상대방의 주장을 바라보거나", "감정이 아닌 객관적인 수치에 주목하는 행위"로 인해 우리는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사실에 주목한 답변보다는 의역을 통해 상대방의 말을 먼저 이해한 후 공감하는 자세로 답변을 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를 통해서 상대방의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토론을 나눌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길었던 첫 번째 감상을 지나 나머지 두 번째 감상을 적는다.


두 번째 감상 주제는 토론에 참여하신 분들이 대부분 교사나 공무원, 대기업 사원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셨다는 점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이다.


순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본 것 같았다.

주말 저녁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읽은 책에 대해서 토론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유가 되는 이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인데, 그게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아,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안정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책을 읽은 후 토론을 나누지 않는 문화가 형성된 사회구나.'라고 생각했다.


다시, 니체의 귀족적 급진주의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그런 엘리트주의가 만연했던 나라의 결말도 떠오른다.

머리가 아득해진다.


최근에, 어느 교수님의 "독서는 힘들게 하는 겁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맞는 말이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업무 하는 직장인에게 독서는 '일'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나는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힘들게 독서하라"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독서가 '일'이어야 한다"는 따끔한 말을 듣고 앞으로도 계속 자기계발에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최소한 내가 받은 몫만큼이라도 사회에 보답하자.


다음 구절이 떠오른다.

"자기 관리는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건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갖고 태어난 재능을 지키는 훌륭한 방법일 뿐이다. - 파커 파머(Parker Palmer)" ("작은 것의 힘", 47/587)




마지막 감상으로, 씽큐 ON을 통해 이런 값진 토론을 나눌 기회를 얻은 것에 정말로 감사하다.


나는 가치관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친구들과 가끔씩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들을 분류해 보면 경험상으로 절반 이상의 경우에는,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성이 너무 달라서 그런 대화를 나눌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사고방식이 너무나 달라서 라포를 형성할 수 없기에, 그런 경우 '이 친구는 이렇게 사는구나' 배우고 넘어간다.


또, 열 번 중 두세 번은 가치관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지만, 서로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다르기에 차이점만 깨닫고 넘어가게 된다. 주로, 대화를 통해 변화하기보다는 본인의 신념을 계속 추구하려는 자세를 지닌 친구들과 소통할 때 이런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열 번 중에 한번 될까 말까 한 경우, 가치관과 방향성이 통하는 대화가 있다. 이런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은 너무나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런 대화들은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희망찬 마음으로 내일을 바라보게 돕는다.


씽큐 ON을 통해서 나눈 토론들도 그런 소중한 소통들이다.

가치관과 방향성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며, 내가 몰랐었던 관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책을 선정해 주시고 출판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독서 모임을 운영해 주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그 커뮤니티에 참여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전하며 예상보다 길어진 토론 감상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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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4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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