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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n 21. 2023

기생충 후기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가를 주제로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나는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이 있다."라고 주장했고.

아내는 "오늘날에는 영화나 소셜 미디어 같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얻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 대화 후, 생각을 돌이켜 보았다. 확실히, 스토리텔링을 통한 공감을 느끼는 경험은 독서의 그것보다 영화가 압도적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책은 문자를 통한 상상에 기반한다. 하지만 영화는 시각과 청각은 물론, 4DX와 같은 촉각까지도 제공하기에 그 경험의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플롯으로써 영화 속에서 숨 쉰다. 그렇게에 명작은 반드시 좋은 플롯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생충은 10년 뒤 국어 교과서에 대본으로 나와도 손색없는 고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운수 좋은 날처럼, 기생충의 장면 장면은 2010년대의 사회의 모습과 시대의 인간상을 문학 작품으로 표현했다. 대만 카스텔라를 폐업했던 기택과 근세, 정말 많은 직업을 거쳤지만 모두 실패한 뒤, 무계획이 계획이 돼버린 번아웃 증후군 같은 기택의 모습, 마약 좀 달라는 연교에게 이거나 빨으라는 동익 등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단면들이 캐릭터들에 반영되어 있다.



이 명작에 대한 라이너님의 기생충 리뷰(https://www.youtube.com/watch?v=DFvFGLomqeg)처럼 훌륭한 리뷰들이 많기에, 부족할 리뷰보다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던 사소한 두 장면에 대한 감상을 적어 보겠다.


 첫 장면은 그 유명한 남궁현자 님조차 빚쟁이들에게 쫓길 것이 두려워 지하실을 만들었다는 부분이다.

훌륭한 작품의 인물들이 가진 동기는 정말 그럴 듯 한 설득력을 지녔으면서도, 그 일면에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냉혹한 진실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이 그렇다. 모든 인간은 가슴속에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기생충은 그 어둠에 스며든다. 남궁현자 님의 두려움에 문광과 근세가족이, 그리고 기택이 기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음 장면은 한낱 몽상에 불과한 기우의 상상이 끝나고 반지하 방으로 침잠하는 엔딩이다.

돈을 벌겠다는 풋내기 같은 결심이 대저택을 구매했다는 결말로 이어지며 마무리되는 줄 알고, 용두사미 엔딩이 될까 노심초사했던 첫 번째 영화관 감상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끝낸다고?" 되뇌던 두 번째 감상 때, 앞 줄에 앉았던 학생의 말도 떠오른다.


 봉준호 감독님의 전작들은 뚜렷한 계층 간의 대립을 다루고 있었다는 어떤 유튜브의 리뷰가 생각난다. 설국열차, 옥자, 괴물 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 속에서 못 가진 자를 지지하는 듯한 플롯이 많았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그런 주제의식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는 요지의 리뷰였다.


 사회의 부조리함에 분노하던 어렸을 때의 나도, 가진 자보다는 못 가진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저 똑같은 사람인데, 가졌기 때문에 좀 더 본성을 드러낼 수 있고, 못 가졌기 때문에 억눌려서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통계적으로 생각해 보면, 가진 사람이 악한 사람일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주목이 많이 되는 가진 사람들이 악한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나는 부자들이 기부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었지만, 사실 부유한 사람들이 더 기부를 많이 하는 것처럼.

http://repository.kihasa.re.kr/bitstream/201002/10469/1/%eb%b3%b4%ea%b1%b4%ec%82%ac%ed%9a%8c%ec%97%b0%ea%b5%ac.2013.V033.N02_14.pdf 

 그렇기에 봉준호 감독님의 이번 작품은 명작이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은 인간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사는 우리 내면의 인간상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일어날 수 없는 몽상을 꿈꾸기만 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과거의 내 모습들처럼, 그저 돈을 벌겠다는 결심만으론 대저택을 살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그 텁텁한 엔딩이 내 가슴에 화룡점정으로 다가왔고, 아직 뜨거운 가슴을 품고 있을 학생에게는 실망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명작이다. 이러한 명작을, 자막 없이,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2019년을 살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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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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