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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n 23. 2023

군산 여행 후기

"근현대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란 친구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조선 왕조의 몰락과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현대사는 내게 아프고 답답하고 외면하고 싶은 역사다. 군산은 그런 시기, 일제가 호남 지방의 쌀을 수탈하는 용도로 쓰인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제의 잔재가 진하게 남아있기도 하고, 아직 미군부대가 주둔하는 도시다.

 그렇기에 군산 여행은 내게 유난히 아픈 손가락 같았다. 외할아버지 댁이 있는 도시지만, 그 지역을 여행한 적은 없는 도시. 할아버지라는 분은 계시지만 그 분과의 추억은 없는 내게, 군산은 할아버지 같은 도시였다. 그런 줄 알았었다.


여행사 출장을 통해 방문한 군산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잘 다듬어진 관광지들을 가진 도시로 바뀌어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기억을 지우는 대신 잊지 말아야 할 유산으로 바꾸었다. 이색적인 개화기 느낌이 가득한 거리와 카페들, 선유도의 아름다운 경관, 술안주로 딱이었던 박대구이와 바지락 매운탕 등.

 도시가 앞으로 나아갈 동안 난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다. 비겁하게 잊고 싶어 했던 이는 나뿐이었다. 아픈 시기를 기억하며 도시는 더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과거에 사로잡혀있었듯, 아직 도시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있기도 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국인이라는 개념은 18세기 이후에 생긴 개념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백성을 수탈했던 임진왜란에는 의병이 활발했지만, 왕조만 타격했던 병자호란에는 전국적인 의병활동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이로 인해, 당시 조선인이란 개념보다는 지역이나 마을 단위의 소속감이 더욱 중요했으리란 추측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듯, 이를 넘어서는 개념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전 글에서 적었듯, 오늘날의 문제들은 국가에 한정된 서사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계층갈등, 남녀갈등, 삼성의 상속세 등으로 이어졌다. 보다 평등한 사회 구축이라는 변화에 일부 상류층과 일부 하층민이 반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기득권을 빼앗기는 상류층의 반발은 이해하나, 하층민의 반발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하층민은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기에,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라는 주장에 반발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납득이 갔었다.

 위 논리는 상속세와 남녀갈등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일반인삼성의 상속세를 줄이자는 주장에 찬성하는 이유도, 소외당한 남성들이 남녀평등에 더 심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당장 먹고살기 바쁘기에, 현재의 체제를 위협하는 변화에 더욱 저항할 수도 있다.


사회 갈등이라는 너무 거대한 담론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심리를 따뜻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자세에서 시작하자. 상속세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들에 담긴 걱정과 우려를 이해하자. 남녀평등이란 말에 군대로 답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이해하자. 변화는 그들부터 품어야 한다.

 따뜻한 가슴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역시 이럴 때는 다단계식 사고가 쉽고 편하다. 우선,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3명부터 따뜻하게 대하자. 그리고 그 3명이 또 각각 3명을 따뜻하게 보듬어준다면, 물결처럼 퍼져나가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내 세상은 확실히 바뀐다.

 지금 주어진 순간들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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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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