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Review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nic Cho Jun 26. 2023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총점: 9.5/10

  

- 궁금한 점 (토론 거리)

1.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전지구적인 서사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종교, 과학 등 기존의 서사를 넘어서 "섞물리는" 모두를 아우르는 서사로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2. 과거로의 복귀에 초점을 맞춘 문명은 새로운 서사를 지향하는 문명에 뒤집니다.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게을리하는 문명 또한 뒤처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서사는 무엇이고, 생산성 향상에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한 줄 서평

5만 년의 인류사를 환경, 도구, 언어라는 세 조건에 기반한 맥락을 고려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설명한다.


- 내용 정리

6부 31장으로 구성되어, 시간순으로 인류사 전반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이 책과 다른 역사책들("모기", "유러피언" 등)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자가 아주 독특한 문체로, 맛있게, 맥락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이다. 문명마다 각기 다른 환경, 도구, 언어라는 조건이 발전에 어떤 과정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시간순적인 서술에 머무르지 않고, 저자의 관점을 유쾌한 비유로 설명하기에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인상적인 문장들

"'꼭', '그렇다', '않다' 같은 단어는 꼭 그렇지는 않다.(65p)"

: 킬링 포인트


"신용은 현금보다 먼저 생겼다.(233p)"


"왕이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금은 언제나 왕의 금고로 다시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235p)"

: 오늘날의 국가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돌고 돌아 원래 자리로 오는데,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생산된다는 점이 돈의 매력일까?


"그는 상식을 깼다.(242p)"

: 상식을 깨야 키루스 대제처럼 위대함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


"페르시아 제국 같은 제국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페르시아 제국이 탄생하는 데는 키루스라는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그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탁월한 인물은 생각보다 희귀하지 않다.(255p)"

: "그랬다."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강조하는 저자 특유의 문체와, "탁월한 인물은 생각보다 희귀하지 않다."는 통념을 깨는 저자의 깊은 통찰이 느껴지는 맛있는 문장들이다.


"그들의 정체성에는 페르시아인이 아니라는 점이 한 가지 특징으로 포함되었다.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덧붙이자면, 그리스인들은 중국인도 아니었지만, 중국인이 아니라는 점은 그들의 정체성에 포함되지 않았다.(258p)"

: 이보다 더 모순적인 유머로 정체성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읽는 순간 머릿속 전구에 불이 켜지는 문장이다.


"미트라는 동짓날쯤인 12월 25일경에 태어났다. 지상에 머무는 동안 미트라 옆에는 황도 12궁에 해당하는 열두 명의 제자가 따라다녔다. 처녀 강탄[降誕], 인류의 구원자, 12월 25일, 열두 명의 제자. 혹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322p)"


"(물론 외부자만 밀교의 상투성을 간파할 수 있었고, 모든 밀교집단은 너나없이 독특한 집단으로 자부했다).(340p)"

: 저자의 위트.


"기독교는 두 가지 서사의 주제를 취사선택한 일종의 종합명제에 해당했다.(346p)"

: 정명제, 반명제, 합명제에 빗대어 기독교의 발생을 설명하는 저자의 내공에 감탄했다.


"하나의 서사가 다른 서사에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수단은 물리적 무기가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내는 솜씨다.(353p)"

: 책 전반에 걸쳐서 저자는 서사의 특성을 설명한다.


"하지만 발명품들은 유럽에 전파된 뒤 새롭게 거듭나는 경우가 많았다.(575p)"

: 창발


"따라서 돈이 필요할 때 영국의 왕들은 평소 높은 이자로 폭리를 취하는 행위에 대한 벌금을 매긴다는 구실로 (유대인) 대금업자들에게서 돈을 강탈하다시피 했다. 사실상 영국 국왕들은 유대인 대금업자들을 일종의 간접 과세 도구로 활용했다.(624p)"

: 명석함을 통해 부를 지배한다고 생각했던 유대인이 과거에는 일종의 바지사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나오는 성당기사단 부분(772p, 일루미나티 암시)과 엮어서 생각해 보면, 오늘날에도 유대인은 바지사장인 것은 아닐까?


"서사의 생명력은 정확성이 아니라, 적합성이 의심받는 순간부터 약해지기 시작한다.(705p)"


"여러 세기에 걸쳐 내려온 성 역할을 복원하고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제한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968p)"



- 감상

1. 문명을 별자리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등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사와, "그렇다."를 사용하여 내용을 강조하는 등의 참신한 서술들로 가득한, 맛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덤으로 단어의 어원도 알게 된다.

 또한, 다양한 문명을 우열의 관점이 아닌, 맥락을 고려한 다양성의 관점에서 서술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2. 사소한 문장들마다 저자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거대 서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틀을 흔드는 관념과 정보를 거부하고, 그 틀을 북돋고 뒷받침하는 관념과 정보를 환영한다."는 문장은 확증편향을 말한다.

 "아, '종교'라는 용어를 쓰기가 망설여지므로 신념 체계로 표현하겠다."는 문장에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문제가 될 요소를 피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말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의 해답은 맥락 속에 있다."는 문장에서 저자는 맥락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문명 속에 담긴 맥락을 이해한 다음, 이렇게 맛있는 표현으로 책을 썼는지 질투가 느껴지고 짜증이 날 정도다.



3.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상상력일 것이다.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개념을 상상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 상상력을 기반으로 언어가 탄생하고 사회, 경제, 문화 등 인류사의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했다. 그렇게 발명한 요소들을 통해 인류는 당시에 마주쳤던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에 당면한 문제들, 지구 온난화, 빈부격차, 환경오염 등이 해결 불가능할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의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4. "영양의 비밀"의 저자 프레드 프로벤자는 믿음을 넘어서는 사랑의 힘을 강조했었다. 종교나 과학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 즉, 우주라는 계 안의 이론(믿음)으로 우주(세계)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말했었다. 결국 믿음의 끝에는 사랑만이 남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부분을 고민해 보다 의문이 생겼다. 믿음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할지라도, 믿음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 것은 사실이다. 종교가 그 이전의 세상을 바꿨고, 뒤이어 과학이 그 세상을 좀 더 인간이 번영할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꿨다. 따라서, 믿음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

 유토피아의 꿈이 좌절될 수밖에 없더라도, 우리는 유토피아의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밈 안사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다. 믿음 대신 사랑을 말하는 프로벤자와 달리 그는 종교가, 과학이, 경제가, 이념이, 국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서술한다. 그러한 것은 진리가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 낸 믿음일 뿐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그는 책의 말미에 요구한다.


인류는 이제 어떤 믿음을 상상해야 할 것인가?



5. 책 초반부의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서 문명 별로 어떠한 특성을 가졌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일품이다. 나일 강의 특성과 고립된 지리적 특성이 이집트 문명에 미친 영향에서 황하 강이 중국 문명에 미친 영향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때, 나는 저자의 깊은 통찰에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책이 진행되며 4대 문명에서 시작되어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간 다양한 문명들이 서로 어떤 역학관계를 맺게 되는지 설명해 나갈 때는 마치 "문명"이란 게임을 플레이한 후, 해당 게임을 시간순으로 되돌아보는 것처럼 그 모습들이 눈에 그려졌다.


 책의 마무리로 이어지며 저자는 현시대의 문제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고수다. 왜냐하면 그 문제점의 해답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진 않지만, 인류사를 서술하며 이미 다양한 해답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해답을 제안했는지를 중요한 요소로 평가한다. 이 책은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진 않지만, 제시했다. 그렇다. 청중을 쥐락펴락하는 재치 있는 이야기꾼처럼, 답과 질문의 순서를 바꿔놓았다. 너무나도 재미있고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가 제시한 문제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세계 문화 즉,

 "모두가 '우리'고 누구도 '저들'이 아닌 세계 공동체를 건설(1131p)"하는 서사를 어떻게 만들까?이다.


 다양한 답들 중 내 마음에 드는 답은 이거다.

 "그러나 '같은 편'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하나의 '다른 편'이 있어야 했다. 같은 편과 다른 편이 뚜렷이 구별될수록 유럽인들의 정체성은 더 굳건해졌다.(618p)"

 우주 관광을 넘어 화성에서의 테라포밍이 논의되는 시대다.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 살아가는 우주시대에 도달하면, 지구인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구인이라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답에는 SF적인 상상력이 가득하기에,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으로 내 가슴이 끌린다.



6. 책 "니체의 삶"에서 니체는 사도 바울을 그리스도의 말을 세속으로 끌어내린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바울은 수많은 반역자 중 하나였던 예수에 대한 믿음을 대중화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도 바울이 이끈 예수의 신봉자들은 서약 당사자에 대한 내용을 손질했다.(342p)"

 "바울에 따르면, 예수가 제시한 것은 하느님과 특정 부족 간의 서약이 아니라, 하느님과 모든 인류 간의 서약이었다.(343p)"


 니체 또한 여동생 엘리자베스에 의해 세속으로 끌어내려졌고, 이후 더욱 유명해진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7. 환경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정말로 공감한다. 나도 회사 밖의 아파트를 바라보면서(환경)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22층 회의실에서 10층 정도의 아파트를 내려다보면 하찮게 보일 정도로 낮아 보인다. 그리고 그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모두 보인다.

 그러나 1층에서 아파트를 올려다보면 너무나 높고 거대해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따라서,


 1. 위에 있다고 해서 남들을 우습게 보지 말고, 아래에 있다고 해서 위축되지도 말자.

 2. 마음의 거리를 나쁜 일은 멀리 두고 좋은 일은 가까이 두자. 좋은 일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나쁜 일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8. 기존 관념과 대립되는 새로운 관념은 기득권의 반발을 유도한다. 하지만, 기존에 없었던 관념에 대해서 기득권은 무관심하다. 설령, 새로운 관념이 기존 관념의 서사를 무너뜨리는 관념일지라도.


 "이성이 신의 속성을 반영한다는 전제를 수용하는 것이 세속적 주제로 향하는 문을 여는 행위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성을 통해 신의 피조물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파해칠 수 있다는 점과,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도 몰랐다.(604p)"

 "교부들은 신 이외의 대상을 논하는 것이 결국 신 이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라는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612p)"


 그렇다면, 기득권의 반발 없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념과 대립되는 관념이 아닌, 기존 서사를 포함하는 새로운 서사를 제안해야 하는 것일까?



9.  몽골의 침입 이후, 과거로 회귀하기를 원했던 중국과 이슬람 문명은 유럽 문명의 상승세에 밀려 가라앉게 된다.

 중국은 과거시험에 매달렸다. 상업과 공업은 천시하고 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환관 정치는 실용적이지 못했다. 혁신은 호응을 얻지 못하는 폐쇄적인 사회로 나아갔다.

 이슬람 영역은 샤리아를 통한 종교 복원에 매달렸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샤리아 과업은 결코 완수될 수 없었다.(682p)"에서 나오듯 실용적이지 못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슬람의 사회적 유대는 능력주의가 아닌 학연, 지연, 혈연 등 인맥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유럽은 진보의 서사를 걸었다. 가톨릭에서 벗어났다. 토지라는 봉건적 서사에서 벗어나 유한책임회사, 중앙은행이라는 경제의 서사로 이동했다.


 공무원 시험, 부패한 정치, 종교의 범람, 타파되지 못한 학연/지연/혈연 등의 모습에서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 너희가 미래라니."라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 임원 분의 말이 생각난다.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로 브런치스토리로 이전]

[2020/07/26 원문 작성]

매거진의 이전글 테크 심리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