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다른 작가분들의 이야기를읽으며 그속에담긴삶에 대한다양한시각들을알게됐다. 저마다의 다른 이유들을 접하다 보니 나 또한 내가 살아가는 동기를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어졌다.
이민을 결심한 계기는이렇다. 내가 가졌던 지식에 따르면 스웨덴이란 사회는"현실에서 동작하지 않고 망해야 하는 모델"이다. 매년 최저 25일의 휴가, 재택근무와 자유로운 출퇴근 및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 보육시설부터 대학학자금까지 무료인 나라. 듣기엔 좋다.그러나 사람은 대게 "안락하면 나태해진다"는 특성을 가졌다. 따라서, 스웨덴 사회란 모델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면 처음에는 작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삐걱대다 결국 공산주의 모델처럼 무너졌다. 그런데, 스웨덴이란 국가와 기업들(볼보, 이케아 같은 기업부터 최근의 스포티파이까지)은 어떻게 아직까지 망하지 않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걸까?
이게 내가 살아가는 동기다.이 사회의작동방식에 대해알고 싶다. 왜냐면 나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에게"그냥 되던데요."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왜 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스웨덴에 관한 정보로는 불만족스러워서 직접 부딪히며 배워보고자 일 년 전 이민을 왔다. 그때부터 현지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학교에서 스웨덴어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이 모델의 구조를 이해했다.하지만,스웨덴 모델의 작동방식을 다루기 전 기준으로 삼기 위해 우선 내가 이해한 한국 모델부터 점검해 보자.
난 한국의 반도체 회사에서 3년 반 가량 일했다. 설명을 위해 회사 내부 정보를 자세히 적어가며 예시를 들기에는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될까 봐 쫄리니, 큰 그림만 간단하게 스케치하겠다. 회사는 "가성비"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좀 더 Fancy 하게 말하면 "ROI(Return on Investment)"라는 투자수익률이 기준이었다. 그러면, ROI가 잘 나오는 방법은 뭘까? 간단하다. 투자는 적고 수익은 많으면 된다. 최소한의 사람들을, 최대한 쥐어짜서(근무시간, 업무강도, 내부경쟁 등),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여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한국의 메모리 기업들은 치킨게임을 통해 업계를 평정했고, 비메모리 업계는 유사한 성공공식을 각 부문에 적용하고 있었다.
만약, 스웨덴의글로벌 회사들도 동일한 원리로 동작한다면 이미 경쟁력을 잃고 벌써 망했어야 한다. 최저 25일의 휴가, 재택근무와 자유로운 출퇴근, 저녁이 있는 삶을 직원들에게 투자한다면 그에상응하는 수익증가가 동반되지 않는 한ROI가 떨어진다. 그러면, ROI가 잘 나오는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일례로 휴대폰 산업에서 에릭슨은 스마트폰으로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망했다. 그런데, 네트워크 장비 산업에서 에릭슨은 3G에서 5G에 이르는 변화를 겪는 동안 화웨이보단 낮지만 하지만 삼성전자보단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산업 분야의 스웨덴 회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왜 아직까지 망하지 않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혹시 망해가는 중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리는데? 이런 질문들의 해답을 구하다 보니 어느새 스웨덴 사회 모델이란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여기서일 년 가량 살아보니스웨덴이란 모델에서 개인주의란 톱니바퀴가 정말중요했다.여기서 개인주의란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말이다.예를 들면, 기본적으로 반찬은 함께 먹고 때로는 메인 메뉴나 밥도 다 같이 나눠먹는 우리와 달리, 스웨덴에서는 음식점에서 각자 다른 메뉴를 시켜서 서로 나눠 먹지 않고 자신이 시킨 음식만 먹는다. 너는 네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테니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누가 무엇을 먹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주의라고 해서 차별을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다. 평등은 이 사회의 모델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톱니바퀴다. 다만, 인종이나 배경과 같은 타고난 차이를 줄이려는 대신에 그 차이로 인한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의 평등을 지향한다.그 예시로 계층에 무관하게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비 지원이나 실직지원 등의안전망이 공통적으로제공된다. 또한,남녀 성별 구별 없이 모두 최소 90일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하고, 양성 모두 의무적으로군대에 가야 한다.
스웨덴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주고받는 일반적인 질문인 "무슨 일 하세요?"에서도 이런 개인주의와 평등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 질문은 그 사람의 개성을 알기 위해 묻는 질문이다. 또한, 사회적인 계층을 판별하기 위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직업을 가져도 안정된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되거나 사업을 하면돈을 많이 벌어서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이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에, 고졸로 취업해서 가정을 꾸린다면그만큼 여유롭진 않지만 자녀와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다.
이렇다고 해서 스웨덴이 한국보다 더 나은 사회라거나 이 모델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스웨덴의 인구밀도는 우리의 1/20이다. 이에 더해 지리적인 환경과 국내외의 정치적인환경도 정말 다르다. 농경사회와 수렵사회에 비유하고 싶을 정도로 두 국가는 상당히 차이 난다. 만약, 수렵사회가 농경사회보다 더 낫다거나 농경사회가 수렵사회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주장하며농업혁명이 일어난 후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수렵채집시기보다 악화되었다는 자료를 근거로 든다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국가를 특정 기준으로 비교해내린해결책은 별로 쓸모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스웨덴이란 모델이 현재 우리사회가 마주한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새로운 방안을 떠올리는데 영감을 주길 바란다.오늘날 우리는 농작물을 인공적으로 재배한다는 농업의 개념을 과일과 수산물 등에 옮겨와 과수원과 양식업 등 새로운 산업을 일구어 냈고 이를 통해수렵채집인들보다 더 다양한 음식들을 먹으며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한다. 단, 영감을 위해 스웨덴 모델을 참고하기 전 주의할 점이 있다. 그들의 개인주의와 평등을 우리나라에 무턱대고 도입한다면 오히려 현재 우리가 가진 효율성이나 관계 중심주의와 같은 장점들을 잃을 위험이 있다.농경사회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과수원이나 양식업 같은 새로운 방안을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떠올릴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는 한국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으로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다. 또,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나쁠 것도 없다. 우리가 갈 길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나는 여행이라기보단, 운 좋게 목적지에 도착해도 좋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곳에 도달해도 재미있을 여행이다.
또한,개인주의와 평등이란 두 톱니바퀴로 구성한 스웨덴 모델에는채운 부분보다 채워야 할 부분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한 톱니가 다른 수많은 변수들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그 톱니들이 가진 사소하지만 중요한 특성들은 무엇일지, 이에 기반하여 전반적인 모델이 어떻게 동작하는지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알아가고 싶다.
앞으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스웨덴 회사라는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델의 구성품일 개인주의나 차이가 아닌 영향력을 줄이는 평등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새로운 톱니바퀴들과 그들의 특성은 무엇일지 알게 될 것이다. 일상의 순간순간마다 그럴 기회는 분명 내게 찾아올 것이다. 겸손하게 배우고 곰곰이 생각한 뒤에 농담을 섞어 진솔하게 적어놓자.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무엇보다도 그 과정이 즐거운 일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