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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Oct 22. 2023

"신뢰하되 검증하라"

투명한 사회 구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신뢰하시나요? 내뱉은 말을 행동으로 지키는 사람, 그리고 그런 검증을 수 차례 거친 이를 신뢰할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행동으로 사람을 검증한다면, 무엇으로 사회를 검증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사회를 검증하는 조금 색다른 방법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다소 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심약자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lönkollen'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Lön은 급여, Koll은 확인, 접미사 -en은 The이니 '급여확인'정도의 뜻이겠군요.

이 사이트에서는 누구나 'personnumer'라고 불리는 스웨덴식 주민번호를 가진 사람들의 소득을 무기명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돈 39kr, 약 5000 원만 내면요. (단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공인은 제외입니다.) 소득 말고도 전화번호, 생년월일, 성별, 거주지, 소유 차량 등의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돈이 아깝다면 정부기관에 전화해 무료로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기명이지만. 반대로, 누가 내 정보를 열람했는지 또한 전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시를 위해 평범한 이름인 'Sven Svensson'으로 검색한 화면을 함께 보시죠.

사진 1. Sven svensson 검색 결과, 사진 2. Torsten Svensson 씨의 개인정보, 사진 3. Torsten 씨의 주소지.

어떠신가요? 이런 개인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다니 꺼림칙하신가요?

제가 이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을 때, 대부분 너무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 제도는 단점이 많은 제도입니다. 공개된 개인정보들은 실제로 도용, 스토킹, 사기나 스캠 등에 쓰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면 스웨덴은 왜 이런 제도를 운영할까요? 실타래를 차근차근 되감아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저런 개인 정보들은 당연히 국가의 정부기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죠. 그러면 그 정부는 누가 구성하나요?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등부터 공무원까지 이어지는 조직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저런 개인 정보들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있지 않을 뿐이지, 접근 권한을 가진 이들이라면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정보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그런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할만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는 안타깝게도 상당히 낮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저런 정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정보와 운영내역을 모두에게 공개한다면 정부의 정보 독점을 막아 권력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도를 운영해도, 운영하지 않아도 둘 다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합니다. 마치 결국엔 이쪽이나 저쪽으로 떨어지고 마는 외줄 타기와 같습니다.



이런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구현되길 바랐던 지난날의 저를 반성합니다. 아뇨 사실은 원망합니다.

신뢰받는 사회를 바란다면서도 막상 신뢰를 쌓기 위해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저는 바보 멍청이였으니까요.

제도가 구현된 사회에서 와서 살아보니, 어차피 이 사회도 다른 종류의 문제를 안고 있더라고요. 게다가 이 사람들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에는 보수적이고 부정적이기까지 합니다. 결국엔 사회 구성원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더군요.


그래서 요즘엔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려서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옳다고, 좋다고 생각하는 바람을 역설하느라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죠.

믿었던 이상을 좇아 어찌어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그 끝에,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대안이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는 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정답이랍시고 적어낸 답지에 비가 줄줄 내리니까요.

검증한다고 해서 항상 신뢰로 이어지진 않는군요.


이미 받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내 저는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것들에게서 훌훌 떠나왔습니다.

에 든 시큼씁쓸한 커피를 한 모금 털어 넘깁니다.



재미있네요. 궁금했던 점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는 맛이 즐겁습니다. 기대했던 맛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궁금한 점들은 점점 더 늘어갑니다. 이러다 죽기 전까지 결코 전부 해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저 하나씩 정하고 접하고 정리하다 보니, 스스로 불러온 도 놀이가 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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