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쟈스 크라이스트" 첫눈을 사로잡는 것은 천공에 매달린 그의 모습이다. 신의 아들이자 자신을 희생해 모든 이의 죄를 사하신 구세주(혹은 그렇다고 전해지는 이). 1000년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과 놀라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이 받았을 감동을 오늘에 대입해 보자. 어느 날 세계 1위 부자인 일론 머스크가 미국의 모든 가난한 이들의 부채를 대신 지시어,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 일부를 갚으시고, 나머지를 갚기 위해 고통을 겪으시다 결국 본인의 신체마저 희생하시매, 이로 인한 죽음으로써 모든 부채를 탕감하신다. 이에 다음가는 열두 부자와 나머지 부자들도 그의 뒤를 따라 가난한 이들을 도와, 마침내 모두가 풍족한 사회가 미국에 임했다는 복음이 우리나라에 전해진다면, 그때 느껴질 충격과 놀라움이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아가던 바이킹이 느꼈을 감정이리라.
11세기, 스웨덴이 스웨덴이 되기 이전 시기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씀이 한 줄기 빛이 되었을 것이다. 춥고 척박한 북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아가던 바이킹에게는 복음과 함께 전해진 철제 농기구와 같은 기술들이 실제로 그들의 삶을 바꿔나갔을 것이다. 낮은 곳에 임하는 은혜를 실현하시려 일신을 희생한 선교사와 그를 받아들여 변화한 사람들 덕분에 사회는 점점 더 부유해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혼돈은 그런 발전의 순간에 잉태된다.
*쉬어가기
그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아래의 돌림판에선 '수녀의 삶을 피할 수 있었을지?', '기독교가 여성의 위치를 바꾸었는지?', '농노 하나의 값은 소 7마리인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일상의 조각을 엿볼 수 있다.
12세기, 사회는 혼란하다. 부유해진 사람들은 더 부유해지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판다. (그때도 출산율은 0.8보다는 높았다.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하는 겁니까 우리는?) 한 줄기 빛이던 기독교는, 그 완전한 이상은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구현되므로, 이런 혼돈을 멸하기보다는 오히려 몇몇 주교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하는데 앞장선다. 주교들은 난립하고 권력을 위한 투쟁은 반복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들은, 사랑하는 이웃을 노예로 만듦으로써 실천했나 보다.
결국 역사는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외줄 타기다. 힘을 합쳐 결실을 거둬도, 그 몫을 나누기는 싫은 법이다. 그러한 분열의 시대에는 우리를 이끌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13세기, 기사도의 시대다. 관대하고 자비로우며 용감한 기사와 이들이 충성하는 미덕의 현신인 왕의 시대. '기사도'란 서사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이상향을 꿈꾼다. 강력한 왕은 왕국을 하나로 통일한다. 세금제도와 성문법이 등장하고 도시와 성이 생기며 무역도 활발하다. 그에 따라 독일에서 이민자가 유입되며 새로운 관습과 언어가 더해진다. 하지만 이상은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법. 군주를 따르지 않은 오래된 지역 족장들은 사라진다.
역사는 반복되고 기사도 또한 돈이란 이상으로 지금도 반복되는 중일까? 사람은 윤택한 삶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로 인해 점차 모든 물건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보기 드문 시대다. 군주를 따르지 않은 족장들과 마찬가지로, 돈으로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미덕들은 퇴색되는 중이다. 출산도 그렇다. 나도 여유롭게 살고 싶으니 아이는 일단 미루자. 그런 비싼 선택은 우선 안정된 기반을 갖춘 다음에.
*쉬어가기
오늘날에도 낭만적으로 그려지곤 하는 기사도의 미덕은 아직도 유효한가? 아래 사진에서는 고귀한 출생이나 배우자에 대한 순종, 관대함과 같은 기사도의 이상과 자격 중에서, 성별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화살표로 선택하여 각자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14세기, 흑사병이 도래한다. 이로 인해 50~75%의 사람들이 죽고 기독교와 기사도를 추구하는 사회가 충격에 휩싸인다. 우리로 치면 최소 김이박최 씨들이 모두 죽고 최대 정강조윤장임한오서신권황안송 씨들까지 죽은 것이다. 대충 아는 사람들은 다 죽은 꼴인데, 고관들은 그 손해를 메우기 위해 오히려 사람들을 쥐어짜거나 약탈을 위한 전쟁을 벌인다. 지옥이다. 그러나 발전의 순간에 혼돈이 잉태되듯, 역설적이게도 혼돈의 순간 또한 발전이 잉태된다.
100년 뒤에는 코로나19를 시대를 구분하는 충격으로 부를까?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은 붕괴되고 공급망 다변화가 촉진되었다. 또한, 리쇼어링과 같은 각자의 경제 블록 안에서 생산을 지향하는 흐름으로도 바뀌었다. 흑사병이 그랬던 것처럼 팬데믹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흥미로운 포인트다.
*쉬어가기 오랫동안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을 재조명하는 국립역사박물관은 이 암울한 시대를 밝힌 두 여성에게 주목한다. 종교에선 성녀 비르지타와 국가에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 동맹인 칼마르 동맹의 통치자인 마르그레테 여왕이다. 두 여성은 각자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암흑기를 헤쳐나갔다.
15세기, 피지배층의 붕괴는 지배층의 분열을 가져온다. 줄어든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서 지배층에게는 농부들의 힘이 절실했다. 마치 10년 전만 해도 청년들의 실업난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권력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 것이므로, 농부들은 국회에 자신들의 대표자를 보내는 식으로 권리를 손에 넣었다. 역사적으로 드문 경우(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는 저출산 최고다. 근로자인 내게 구직난보다는 구인난이 백배는 낫다.)
직면한 구인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떤 정책들을 선택할까? 그 길이 어떨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농부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취한 것처럼 근로자도 그 과정에서 더 큰 권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런 권리를 취하게 될까? 혹은 취하지 못할까? 내가 죽을 즈음에는 그 결과를 볼 수 있겠지.
지금까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웨덴의 역사를 다루고, 그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상황과 엮어보기도 했다. 이 흐름을 한 줄로 요약하면, 종교와 군주라는 두 축과 그를 덮친 흑사병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16세기부터 18세기를 다룬 뒤 마지막 글에서 19, 20세기를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