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by Dominic Cho

삼성에서의 시간이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원했는지, 원치 않았는지는 지금에 와선 잘 모르겠다. 어차피 퇴사는 정해진 결말이었으니까.

다행인 점은 LSI에서 메모리로의 전배가 뒤통수에 날아든 숙명이었다면, 그래도 퇴사는 앞에서 날아온 운명이었다. 항상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야 했던 회사생활이었지만, 그래도 그 마지막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헛헛했다. 내가 떠나도 부서원들의 시간은 분명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를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끝이라면 굳이 이름을 남겨봐야 무엇할까? 어차피 나는 떠나고 그곳에 없는데. 그럴 바에야 떠날 때 가져갈 추억이라도 쌓고 싶었다. 아팠던 시간들이었을지 몰라도 그나마 그게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었다. 나중에 돌아본다면 즐거웠던 추억들로 기억하고 싶었다.




고과나 승진, 성과에 대한 압박이 사라졌다. 퇴사할 건데 무슨 의미가 있나? 일할 때마다 자꾸 퇴사를 생각하다 보니, 실수로 "아, 퇴사하고 싶다"라고 입 밖으로 뱉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고 나서 엄청 긴장했을 텐데, '뭐, 내가 없는 말 한 것도 아닌데?' 생각이 들며 그냥 편하게 일했다.


신기하게 업무 욕심을 다 포기하고 여행, 음식, 영화 등 놀러 다니는 얘기만 하자 부서원들과도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곧 평생 안 볼 사람들, 기왕 떠날 거 여기 있는 동안 서로 즐거운 대화나 나누자고 생각했더니 상대방도 무의식적으로 편해졌나 보다. 뭐 가끔 여전히 잘 안 맞는 사람들이 있어도 어차피 모두와 잘 지낼 필요도 없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넘어갔다. 마음 맞는 사람들하고만 더 친하게 지내도 부족할 시간이었다.


새로운 일도 하다 보니 재미있었다. ARM 코어 쪽 일이었는데 한 번도 안 해봤던 일이라 '실수 없이 잘 해내야지'라고 마음먹고 달려들 때는 스트레스를 꽤나 받았었다. 하지만, '뭐 이거 문제 되면 그냥 "라"고과 받고 회사 때려쳐'라고 여기니, 오히려 전해 듣기만 했던 분야를 실제로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CL4 기준으로 "라"고과 연속 두 번이면 권고사직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서, '혹시 CL2도 "라" 두 번 맞으면 권고사직받을 수 있으려나'는 묘한 기대감까지 생겼다. 설마 아니겠지만 '위로금도 준다면 얼마나 받으려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하곤 했었다.


꽃놀이패였다. 일정 압박도 있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기간 내에 해내면 잘 된 거고 못해내면 '혹시?'의 가능성이 커지는 거니까. 역시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그 와중에 대충 하고 넘어간 자잘한 실수들이 쌓여 한꺼번에 터지면서 크게 고생하기도 했다. 예전이라면 이런 실수가 고과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걱정했겠지만 다 포기한 지금은 그저 부족한 스스로가 아쉬울 뿐 업무적으로 압박감을 크게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좋아)




"D님은 뭘 그렇게 무겁게 어깨에 다 지고 있어요?"

적다 보니 S님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회식자리에서 거나하게 술에 취해 그동안 속에 담아왔던 "회로 설계 분야에서 한 번 뭔가 이뤄내보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서 나라는 계란 하나 가지고는 택도 없는 건 아닌가 싶다"라고 주절대는 뭣도 모르고 지 멋에 취한 채 살아가는 놈한테 해주셨던 말이다. 좀 내려놓으라고, 내려놓고 편하고 즐겁게 살라고, 그래야 D님도 잘 되는 거라고, 뭘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뭐라 하셨던 기억이 불현듯 스쳐간다.


진짜로 다 놓으니까 잘 됐다. '아 까짓 거 안 되면 때려치고 딴 거 하지 뭐'의 마음가짐이 '하고 싶은 일'에 더해지자 묘한 캐미스트리가 있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하고 싶은 대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니까 길이 생겼다. ARM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오, 나 영어로 업무 메일 주고받다니 좀 멋있는 듯?'이라 느끼기도 하고, 나중에 스웨덴 가서 일하려면 영어 써야 할 텐데 현업에서 미리 연습할 수 있어서 개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메모리 부서에서 얻었던 배움이 고맙다. 그를 통해 자신의 족함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 배웠던 지식은 여기서는 별로 쓸데없었다. 차라리 LSI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하지만, LSI와도 그닥? 비유하자면 지금은 밀키트에 공급되는 토마토소스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파스타 전문점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소스 회사와 비슷하지도 않다. 부서를 옮겨 다니며 배운 지식은 "nice to have"였지만 "must to have"는 결코 아니었다.


시행착오의 경험이 오히려 정말 도움이 됐다. '이때 이렇게 대충 넘어가면 나중에 어디서 반드시 문제 생기더라'나 '이런 건 깊게 파 봐야 별 쓸 데도 없으니 대충 제끼고 딴 거 파자', '요거는 더 깊게 알고 싶었는데 마침 더 알아볼 기회가 생겼네'처럼 일의 중요도를 구분하기 수월했다.

경력 쌓인 이직이라기보단 중고신입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부터 배워가는 게 가능했던 것 같다. 만약 경력이 더 길어졌다면 산업군을 넘나드는 이직은 어려웠으리란 사실에 등골이 서늘하다.




Ericsson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하며 잠시 '즐겁게 하자'는 마음을 까먹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니 '잘 해내야지,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런 욕심이 터널 시야를 불러와 오히려 실수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물론,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자는 태도는 간직 중이다. 삶이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통수 맞을지 모를 일이니까. 그때까지는 Fika에 Bulle와 커피 한 잔 하며 즐겁게 일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일하다 문제가 생기면 예전처럼 꽁꽁 숨기거나 걱정에 달달 떨면서 긴장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옆 자리의 동료들에게 바로 말을 걸거나 메신저로 편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어차피 난 바보다. 바보가 바보짓 한 번 더 했을 뿐이다. 처음부터 "나 아무고도 모르느 바보이에다. 도움!" 컨셉을 잡고 가야 기대 컨트롤도 된다.


즐겁게 함께 일하기가 열심히 혼자 일하기보다 내게 잘 맞는 옷이란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많은 일들이 좀 더 수월했으리란 생각에 아쉽다.

난 그만큼 어리석었고, 당시에는 스스로를 많이 내려놓은 상태라고 여겼지만, 사실은 포기할 것들이 아직 한참 더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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