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과면담 기간이 돌아왔다. 상위고과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라"고과를 예상하며 면담을 시작했다. 퇴사하기로결심한 다음부터는 야근을 단 1시간도 하지 않았고, 매번 주어진 업무만 턱걸이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LSI에선 매주 52시간 풀야근에 가끔은 제외시간을 넣기도 할 정도로 많이 일했었는데도 "다"고과만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설렁설렁하면 "라"를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만약 정말 하위고과를 받는다면 일 년 더 다니면서 권고사직까지 노려봐야겠다는 나름 야무진 계획도 있었다.
"D님은 올해... "다"고과예요."
예상과 다른 말에 순간적으로 벙쪘다. ㅎ파트장 님은 그 반응을 보고 실망했다고 착각하셨던 듯하다.
"올해는 전배 와서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이기도 했고, 앞으로 배워나가면 되는 일이니까..."
"아뇨아뇨"
황급히 그의 말을 끊으며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확인했다.
"그러니까 제가 "다"고과라고요?"
"네"
'허, 이럼 나가린데~'
예상과 다른 평가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렇게 되면 내후년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으니 퇴사일을 앞당길 수 있었다. 하지만, 스웨덴 거주허가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딱 날짜를 확정하기 애매해졌다.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제 버릇 개 못 주고 또 안 해도 될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사실 "라" 받을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LSI에 있을 때 고과에 비율이 정해져 있어서 누군가는 "라"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파트장 님이 답했다.
"우리 부서에 "라"고과는 없어요."
확신을 담은 그 답에 만감이 교차했다.
자녀가 있어도 회사에 함께 남아 일하시고, 집에 가서도 더 일하시면서 성과도 많이 내셨음에도 번번이 고과에서 밀리셨다던 전 부서의 ㅂ님이 생각났다. 그런 사람이 평고과를 받는데 나도 평고과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는 최저근무시간만 마쳐도 평고과를 받는단다. 이게 "슈퍼사이클"의 힘인가? 하긴, 역대급 실적을 낸 부서에서 하위고과를 줘야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불합리하다.
그렇다고 집에서까지 논문을 읽으며 회사에 헌신한 직원이 사업부가 적자라는 이유 때문에 평고과를 받는 게 합리적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세상이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무언가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면 참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매번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결국 되는 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회사가 잘 되면 직원도 잘 되고, 회사가 잘 안 되면 직원도 잘 안 되었다. 따라서열심히 노력하여 큰 보상을 얻고 싶다면 대기업보단 스타트업이 좀 더 잘 맞을 것이고, 적당히 일하면서 적당한 대가를 바란다면 대기업이 잘 맞겠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를지, 또는 좋을지 나쁠지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기준이 없다.
정답을 찾으라고, 열심히 배워서 성장하라고, 하다못해 최선을 다하라고, 그렇게 정의된 성공을 미덕으로 삼아왔지만, 지나고 보니 내게 그런 건 다 허상이었다.
삼성 그리고 한국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한 지금, 주어졌던 것들과 또 주어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성과는 내 몫이 아니었더라도, 전배 와서 적응한 경험이면 족했다. 거기에 나중에 레퍼런스가 되어줄 동료들이면 넘치고도 남았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하다.
그런데 정말 감사할 일들일까?
달리 생각하면 주어진, 주어지지 않은 것들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 나섰거나 그러지 않은 것들이다. 원했거나 바랐기에 내게로 와닿을 수 있었다. 닿지 못했던 바람들이 훨씬 더 많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진짜 의지의 결과일까?
스웨덴 이민을 가능하게 한 아내와의 만남은 사실 엄청난 우연이다. 그리고그전과 후에도 내게 다방면으로 영향을 끼쳤던 인연들이 많다.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책, 음악, 영화, 음식 등등 정말 많은 우연들이 겹쳐있다.
그럼 감사와 의지, 우연으로 충분할까?
만약 우리나라의 제도와 문화가 달랐더라면 아내와 같은 대학에 다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수능이란 시험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면, 혹은 초중고 교육과정이 달랐더라면 결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