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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n 28. 2023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


시간은 벌써 흘러 어디서나 캐럴이 들려오는 이 시기가 돌아왔다. 길거리엔 선물을 사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고, 토이 샵의 계산대 줄은 이곳에 와서 본 것 중에 가장 길다. 그렇게 준비한 선물들은 방 안 한 구석에 장식된 트리 아래 놓이고, 다시 만난 친척들과 크리스마스 음식들로 가득한 저녁을 먹은 뒤에 다 같이 둘러앉아 서로 선물을 하나씩 풀러 나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어느새 따뜻해지지만 마음 한 편엔 떠나온 조국의 크리스마스가 생각이 난다.


그곳의 크리스마스는 사뭇 달랐다. 가족들과 함께하기보다는 연인과 함께하는 하루다. 길거리는 연인들로 가득하고 분위기 있는 식당과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숙박업소에는 일 년에 보기 드문 대목이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이곳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 때 나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 “한국에선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라는 간단한 질문이지만, 우리의 풍경을 설명할 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그 어색한 ‘진짜로?’ 표정은 몇 번을 마주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한다. 비유하자면, 외국인이 ‘내 나라에선 설날은 커플들이 만나서 데이트하는 날이라서 떡국 대신 무지개떡 놓고 화요랑 반주하는 게 일반적이야’라고 하면 나도 뭔 소리인가 싶겠다.


그럴 때 이민과 ‘이세계물’은 꽤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말이란 점 말고도 같은 대상을 놓고도 다르게 바라본다는 부분에서 말이다. 이 부분이 이세계물을 보는 재미인데, 일본 애니나 판타지 쪽 말고도 최근 방영된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드라마도 비슷하다. 80년대부터 진행되는 한국의 역사를 미리 알고 있는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이라면 내리지 못할 선택들을 통해 차이를 만들어나가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다만 그런 재능 있는 주인공들과 나는 달라서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반대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른다. 예를 들면, 아내와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와 처음 만나 인사할 때, 그녀가 포옹하려고 하자 ‘좀 어색하지 않나?’는 생각에 한 걸음 물러선 적이 있다. 저쪽은 거절당해 어색하고 나는 ‘포옹할 사이까진 아니지 않나’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아내가 여기서는 포옹도 만나서 반갑다는 뜻의 인사라며 가르쳐줬다. 다른 예로는, 그렇게 배운 뒤에 아내의 또 다른 친구와 만나서 포옹하려고 하자 그쪽에서 어색해하며 물러선 적도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이 쪽은 중학교 시절 반 친구라고 소개하며 서로 악수하라고 알려줬다. 그 친구와 헤어진 뒤, 저 친구 하고는 알고 지내던 친구라서 포옹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여기도 친한 정도에 따라서 인사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이 치고 나가는 것만큼 나도 치고 나갈 수 있는데 다만 방향이 반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선 주위의 도움이 절실한데 아내와 가족들, 친구들과 어쩌다 만난 사람들도 친절하게 알려줘서 정말 고맙다. 산타할아버지 덕분에 매년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호의 덕분에 스웨덴어를 못해도 배달을 받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물론 호의가 아니라 그저 ‘돈 벌자’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뭐가 중요할까? 중요한 것은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받았고 배달도 받았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 것처럼 사람들의 호의가 배달을 주었다고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든 연인과 보내든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두 방식 모두 즐거운 하루를 보낼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뭉뚱그려서 넘어가면 무언가 놓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크리스마스에 받는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주시기 때문이야말로 더 따뜻해진다. 그 선물에 담긴 깊은 사랑을 맛볼 때에야 비로소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가 된다. 배달도 사람들의 호의가 담겨있기 때문에 더 값지다. 그 배달에 담긴 깊은 호의를 맛볼 때에야 비로소 순간에 온전할 수 있다.


믿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그를 온전히 느끼는 것에 하나도 중요치 않다는, 일견 맹목적으로 보이는 문장이 현실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민을 와서 순간마다 새롭게 깨닫는다. 크리스마스에 '한국'이라는 이세계를 떠올리며 적는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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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6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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