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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의 비밀

프레드 프로벤자

by Dominic Cho

총점: 10/10


- 한 줄 서평


음식에서 시작하여 우리 몸, 자연, 나아가 온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양학자의 색다른 시각과 깨달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책.



- 내용 정리


18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할 만한 내공을 갖추지 못했기에 이번 서평에서는 장 별 내용 요약을 생략한다. 단지, 장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책이 너무도 방대한 주제를 연이어 다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장마다 다양한 이론과 사례, 근거, 그리고 작가의 주장이 어우러져 담겼기에 요약이 너무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장 별 제목과 소제목에 이미 내용이 훌륭하게 요약되어 있다.


제1부. 변화의 성찬

1장. 염소, 쥐, 그리고 클라라의 아이들

2장. 손님들의 과제

3장. 같은 것은 둘도 없다


제2부. 몸의 지혜와 함께 춤추며

4장.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5장. 기억은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다

6장. 몸의 지혜를 가로막는 것들

7장. 자연 약국의 처방


제3부. 화가의 팔레트를 음미하다

8장. 색채 속의 기쁨

9장. 영양분 가득한 꽃다발

10장. 당신의 캔버스를 색칠하라

11장. 미각과 대지의 연결


제4부. 불확실성과의 한판 대결

12장. 쥐, 소, 혹은 사람에게 독을 먹이는 방법

13장. 지혜를 짓밟는 권위

14장. 권위를 짓밟는 믿음

15장. 믿음을 짓밟는 이해


제5부. 수수께끼로 사라지다

16장. 자연의 조화

17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8장. 존재의 수수께끼



- 감상


1. 단식이 몸에 좋다는 내용은 이미 "장수의 역설"과 같은 책을 통해 알고 있었다. 또, 움직임과 자연환경, 사회성이 몸에 좋다는 것은 "움직임의 힘"에서 본 내용이다. 그러나, 비타민 보충제와 같은 가공된 영양분 보충에 대해서 의사와는 다른 영양학자의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


2. 책은 다양한 장에서 개인의 노력보다 시스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3. 연구자였지만 이제는 연구자가 아니기에, 저자는 연구의 한계와 약점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석사 과정에서 느꼈던 연구 현실의 한계를 팩트로 때리는 저자의 한 줄, 한 줄이 너무도 아팠다. 하지만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은 특정 문제를 비판한 다음에 저자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해결책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과학자가 변해야 한다.


저자의 통찰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변화와 협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저자의 답에서 오늘날 시대의 요구를 듣는다. 비단 이 책에서만이 아닌 "정의란 무엇인가"의 공동체주의에서도 느꼈었다.


4. 시스템과 변화, 협업을 바탕으로 우리는 실험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책의 서두처럼 삶을 흥미로운 실험이라고 상상해 보자. 그 실험은 "정반합"의 과정이다. 중세시대(신권)->르네상스시대(왕권)->현대시대(자본)로 이어지는 사회의 발전을 정반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특정한 믿음(정)과 그 믿음을 부정하는 믿음(반), 그리고 정과 반 모두의 장점을 취합하는 새로운 믿음(합)을 반복하 과정이 인류의 삶이다. 그렇게 보면 자본주의는 우리의 합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오류가 돼버린 자본주의(정)에 갇혔다. 신이나 왕에 대한 믿음에 갇힌 이들이 과거의 유물(정)이 되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돈을 믿는 내가 과거의 유물이 되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돈보다 더 나은 믿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정명제는 이제 환경과 지구, 그리고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합명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찾은 합명제는 다시 정명제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찾은 답은 자연을 보호한다는 믿음 아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답을 찾아 무엇인가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반복되는 믿음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믿음 말고 사랑이 남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5. 마지막으로 논쟁이 될 수 있는 종교 부분을 짤막하게 다루겠다.


예전에 교회에 잠깐 다니며 읽은 성경책 속의 예수님께서는 "형제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인 그가 왜 다른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를까? 그러면 만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게다가 삼위일체 교리에 따르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우리도 신의 아들이자 신이 되는 것이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 의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답은 "신은 결국 모든 사람이 신이 되시기를 바란다."였다.


나는 이 생각을 나만이 떠올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승천하여 알파와 오메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논문을 쓰면서도 느꼈지만, 내가 처음 떠올렸다고 느껴지는 아이디어는 이미 누군가가 옛날에 떠올렸던 생각이 틀림없다. 그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또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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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원문 작성]

[2025/11/17 편집 후 재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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