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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l 11. 2023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 빌 설리번

총점: 8-> 9 -> 10/10

읽을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매혹적인 책.


- 한 줄 서평

영화 "메멘토"가 생각나는, 초반에 뿌려놓은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며 전율에 휩싸이게 되는 구성이 매력적이다.



- 내용 정리

서평을 적으며 스포일러가 될까 걱정이 든 책은 처음이다. 부디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서평을 읽으시기를 부탁드린다. "메멘토"처럼, 마지막에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돋아 가만히 앉아서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책의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 우선 목차부터 정리한다.

저자는 A->B->C의 삼단구성으로 된 논리를 펼친다. 그런데, B와 C는 일반적인 신념에 반하기에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1장부터 7장에 걸쳐 "자아가 각 장의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A) 유전자, 후성유전학, 미생물총, 환경 등의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 한다.


아주 영리하면서도 소름 돋는 구성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난 여러분이 "자아가 아닌, 유전자, 후성유전학, 미생물총, 환경 등이 자신을 좌우한다"는 저자의 주장(A)에 동의한다면, 뒤이어 나올 소름 돋는 주장 B와 C에도 동의하게 된다. 우선 저자의 주장 A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 서문: 진정한 나와 만나다

결론을 서문에 설명한 수미상관적인 구조를 가진 "아인슈타인의 전쟁"과는 달리 이 책은 초반부에 결론에 어떤 내용을 말할지 깊게 서술하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힌트만 농담과 함께 던져놓는다.


- 1장 나의 창조주와 만나다

유전자가 나의 창조주다.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분이라면, 과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시기에 이후의 서평을 읽는 시간낭비를 하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동의한다면, 우리는 저자가 제시하는 유전자의 한계, 환경의 영향, 미생물의 영향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유전자라는 창조주를 개조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로 나아가게 된다. 정리하면, 1장에서 저자는 "유전자, 후성유전학, 미생물총, 환경 등이 자신을 좌우한다"는 주장(A)을 제시한다.


- 2장 나의 입맛과 만나다

3장 나의 식욕과 만나다

4장 나의 중독과 만나다

5장 나의 기분과 만나다

6장 나의 악마와 만나다

7장 나의 짝과 만나다


욕하면 안 되겠지만, 저자는 미쳤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말은 최고의 극찬이다. 왜 이렇게 욕을 적을 수밖에 없는지는 2~7장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빌드업에 있다.


저자는 8장에서 제시할 주장(B)를 위해서 주장(A)에 대한 근거를 6개 주제에 대해 제시한다. 각 장마다 유전자, 후성유전학, 미생물총, 환경 등이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좌우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들을 마치 독자를 세뇌시키듯 제시한다. 스토리 없이, 너무 많은 과학적 사례들을 제시하기에 중반까지 책을 읽을 때는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 치밀한 구성을 보라. 입맛-식욕-중독-기분-악마-짝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독자가 동의하기 쉬운 주제들에서 어려운 주제들로 나열되었다.

입맛과 식욕이 외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주장은, 왜 그렇게 몸에 나쁜 음식들을 먹게 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에 납득하기 쉽다. 게다가, 피식하는 웃음이 나오는 가벼운 농담들을 섞어놓았기에, 독자로서 매력적인 주장을 거부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저자는, 중독이나 기분이라는 외부 요인보다는 개인이 선택한다고 믿고 싶은 주제로 넘어간다. 그러면서, 각 장의 마무리마다 가벼운 농담만이 아니라,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주장들을 섞어 놓는다.

그러고는 악과 사랑이라는 자아가 좌우한다고 믿어왔던 감정적인 개념을 다룬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도 사실은 외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근거들을 읽다 보면, 저자의 주장(A)에 완전히 동의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저자는 아직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반복해서 밝혀 둔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주장(A)가 우리가 줄에 묶인 꼭두각시 피노키오 신세라는 고정형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어떻게 다룰 지로 나아가자는 성장형 사고방식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8장 나의 정신과 만나다

자 이제 논쟁적인 주장(B)와 만날 차례다. 저자는 "자아란 없다"라고 주장한다.

우선 저자는 뇌와 뇌의 특성을 유전자, 환경 등 앞서 설명한 외부 요인으로 설명한다. 이를 기반으로 '자아'라는 믿음이 환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우리가 의식하기 전에 이미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는 뇌가 이미 결정한 내용을 전달하는 메아리일 뿐이다." (597p)


이 지점에서 나는 주장(B)에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A)가 참이라면, (B)도 참이다. 내 취향과 감정을 내가 아닌 유전자, 후성유전학, 미생물총, 환경 등이 선택한 것이라면, 사실 나라는 자아나 영혼도 마찬가지다. 슬프지만.


- 9장 나의 신념과 만나다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이제 다음 주장(C)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바로, "신념에서 벗어나, 사고로 넘어가자"다. 정치, 종교, 영혼 등 우리의 신념은 사실 그저 믿음이다. 믿음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진리가 아닌 가설로 여기고 생각을 유연하게 유지해야 한다. (중략) 우리가 지금 현재 가용한 증거를 바탕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누구도 그 논리를 흠잡을 수 없다. 증거를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비논리적은 삶은 비난받아 마땅하다."(652p)


나라는 존재라는 신념도 다 환상이다. 공허하지 않은가? 그러나 새로운 씨앗이 자라기 위해선 그 빈자리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온 그 모든 신념을 버린 후에야, 우리는 논리적인 사고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소통과 화합의 전지구적인 서사로 넘어갈 수 있다.


- 10장 나의 미래와 만나다

- 결론: 새로운 나와 만나다

과학을 통해 우리는 영혼과 신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는 유전자, 유전자의 발현, 미생물총, 뇌를 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에고에서 벗어나 우리로 연결되는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자고 책은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일에 헌신해 온 과학자들이 없었다면 이 책에는 아무것도 쓸 것이 없었을 것이다. 당신들과 함께 이 거대한 퍼즐 조각들을 발견하고 맞출 수 있어서 큰 영광이다."(754p)




- 인상 깊게 본 내용: 죽음에 대한 공포 수용.

중학교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면? 그 무한한 공허가 주는 공포를 외면하면서 바쁘게 하루를 살아왔다.


그러나 이 책은 사후 세계를 명확히 설명한다.

"우리 모두는 죽고 난 다음의 느낌이 어떨까 궁금해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느낌과 똑같을 것이다.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661p)


이 문장 덕분에 내 오랜 공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존재 없이 이 우주가 130억 년 이상 존재해 왔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그럴 것이다. 자아는 없다. 영혼은 없다. 그저 내가 믿고 싶었던 환상일 뿐이다.


저자는 알을 깨고 나온 새에게 말한다.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처음에는 충격적이고 우울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암흑 속에 남아 있기보다는 진리의 밝은 빛 속에서 사는 것이 낫다. 더군다나 영혼의 잿더미로부터 좋은 소식이 등장하고 있다. (중략) 폭력, 중독, 우울증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들은 비물질적인 영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뇌 속의 물질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긍정적인 소식이다. 물질적 문제는 고칠 수 있지만, 비물질적인 영혼의 문제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662p)


한계를 인식하면 오히려 그 한계를 이용하여 도약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슬픈 희망이 담겨 있다. 나라는 존재는 없다. 그러나 그 말은 곧, 나라는 개인에 갇힌 존재가 아닌 우주와 연결된 존재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사실 별의 잔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않은가? 우주의 시작부터 이어진 변화의 물결이 퍼져나가며 이루는 찰나의 순간이 나일뿐이다.


"당신의 본질을 포착할 수는 없다. 끊임없이 요동치며 변하기 때문이다."(659p)




- 책에서 얻은 깨달음: 논리적 사고

이 책은 믿음이란 정명제에서 에고라는 반명제를 거쳐 논리적 사고라는 합명제로 나아가게 도와준다. 믿음의 한계를 다뤘던 영양의 비밀의 서평과, 그럼에도 믿음이 지닌 힘을 다뤘던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서평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믿는 대신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뇌는 신념과 결혼해 버렸다. 그래서 신념과의 이별이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반면 결론과의 잠자리는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가벼운 만남에 더 가깝다. 결론을 끌어내는 행위의 아름다움은 새로운 데이터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결론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이다." (670p)

믿음이라는 정명제는 5만 년의 역사동안 인류를 발전으로 이끌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에고라는 반명제에 사로잡혔다. 정치, 종교, 경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믿음은 에고가 되어 양극화된 집단으로 우리를 분열시켰다. 지금까지의 독서를 통해 그에 대한 해답으로, 이미 도래한 전지구적 서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답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에 대해 명확하게 한 줄로 설명하지 못했었다.


이 책은 단언한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나아가자고. 신념과의 결혼은 편안하고 안락하지만, 이별해야 한다고.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흐름이지 않은가?

남녀평등이 이루어질수록, 사실 우리는 여태껏 기대어 왔던 남녀의 역할에 의지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자율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율성이 주어질수록 지시에 따르기만 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주체적인 삶은 멋있어 보이지만, 그 장막 아래에는 고통이 숨겨져 있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신념에서 벗어나 논리적 사고라는 힘이 필요하다.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지시가 주는 안락함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져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리더가 얼마나 무겁고 힘들고 외로운 자리인지, 학창 시절 반장을 몇 번 맡았던 경험으로 인해 안다. 그 자리는 결국 돌멩이를 맞는 자리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61028071000001)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는 편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구성원이 하나의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리더이자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 축구가 발전할수록 수비수에게도 공격 능력이 중요해지고, 공격수에게도 수비 능력이 중요해지는 것처럼, 모두가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 단, 모두가 우리로써 함께 걸어가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신념에서 벗어나 논리적 사고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그 사회가 보고 싶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니체의 말처럼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넘어갈 수 있는지 모른다. 유전자가 우리의 창조주인지도 모르는 낙타에서, 유전자의 제약을 깨닫는 사자의 단계로 넘어왔다. 이를 넘어서 우리는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는 어린이로 넘어가는 단계의 문턱을 밟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출발점에 섰는지 모른다.




- 삶에 적용할 사항: 이기적 이타주의로

전율이 돋는 문장들을 정리하며 이기적 이타주의 혹은 전지구적인 서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그 태도에 관한 내용을 마무리한다. 저자의 명문장을 간추리기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이 훌륭하게 정리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동지애를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 이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로 확장할 수 있다."(618p)

"공평한 세상이라는 사고방식을 깨뜨리면 세상의 불행과 불평등을 고쳐야 할 책임이 그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할 존재에게 돌아간다. 바로 우리다."(665p)

"영혼이라는 개념을 폐기한다고 해서 인생의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생의 의미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667p)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든 요인 중 상당 부분은 우리 소관이 아니었다. 이것이 자신에 대해 겸손하고, 타인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할 이유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그 이유일 수 있을까?"(669p)

"우리는 우리를 돌보지 않는 냉혹한 우주와 싸워야 한다."(671p)

"우리 행동의 밑바탕에 깔린 진리를 아는 것이 그에 대해 무언가 조치를 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679p)

"문제를 초자연적 원인으로 돌리면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팔을 걷어붙여 실험을 하고 증거를 모으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면 진보가 이루어진다."(734p)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나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냐, 헤엄쳐 나올 것이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헤엄쳐 나올 것이냐, 구조받을 것이냐가 되어야 한다. 결국 이것이 더욱 강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736p)


결론: 새로운 나와 만나다

"다 글러먹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유전자를 위해 만들어진 정교한 생존기계라는 것을 안다. (중략) 우리는 생명을 선물 받아 깨어났지만, 자기 몸에 꼭두각시 줄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절망한 피노키오와 비슷한 신세다."(741p)

"하지만 스스로 조종하는 법을 배운 꼭두각시처럼 과학은 우리에게 스스로 진화시킬 능력을 부여했다."(743p)

"자신과의 유전적 등가성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를 향한 궁극의 반란이다. 나만 중시하는 원초적인 욕구에 저항함으로써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극복하고 타고난 본성이 아닌 학습한 본성에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도전 과제라고 생각한다."(7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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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0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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